요즘 축구 팬이라면 기분 좋은 일밖에는 없을 것 같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이후 그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최근 경기에서 놀랄만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전력이 낮다고 평가된 튀니지나 베트남과의 친선경기지만 세계 명문의 축구 클럽들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 많은 선수가 보여준 뛰어난 경기력은 그 수준이 이전의 수준을 넘어선 가히 유럽 급이라고 평가될 정도의 기량을 보여줬다.

또한 각 선수가 자신들이 소속한 클럽에서 존재감 역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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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선수 중 특히 국가대표팀 주장인 손흥민 같은 경우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최근 141년 역사에서 비유럽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주장으로 선임된 이후 위기에 빠져있던 팀이 영국 프리미어 리그 1위에 등극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영국 축구계가 손흥민이 가지고 있는 선수로서의 능력보다도 그의 인품과 리더십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유럽 축구에서 보았던 주장의 리더십은 권위적이고 독단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모두를 포용하고 자신의 역할에 책임지며 팀원들을 다 함께 같은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료로서 인정해 주고 소통하는 모습은 많은 축구 관계자와 팬들을 감동하게 했고 토트넘을 뭔가 1퍼센트 부족한 것 같은 팀에서 당당히 최고를 겨루는, 많은 젊은 스타들이 가고 싶어 하는 팀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손흥민이 인격적으로 뛰어난 것이 이유지만 영국은 그가 활동하기 한 세대 전의 또 한 명의 한국 출신 축구 스타인 박지성을 회상하며 성실하고 모범이 되며, 스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만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와 유사점을 찾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영국 축구 무대에서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다. 세계가 특이할 정도로 성실하고 겸손하며 인격적으로 전혀 결점이 없어 보이는 한류 스타들을 보며 점점 공통점을 느끼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는 BTS의 전 세계적 인기도 청소년들에게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아이들이 팬이 되어도 부모가 안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국제무대에서는 보기 쉬운, 거의 갑질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들의 일탈을 한국 스타들에게는 보기 힘들다고 거론되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공인으로 보이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수준이 매우 높다. 아무리 인기가 높다고 해도 자신의 재력이나 권력을 남용한 사건이 한 번이라도 생긴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연예계에서 매장당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부도덕하거나 비상식적인 행위를 하는 이들에게 국민이 보여주는 공분은 단지 표현을 넘어 실력행사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대단한 위치에 있다고 해도 결국 자신도 한 공동체의 일원이며 넘지 못하는 선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한국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자식을 편법으로 명문대에 입학시키는 것을 많은 선진국에서조차 비합리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한국에서는 정치생명을 마감시킬 정도로 사회적 금기이다.

이렇게 인기이든 권력이든 특권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에 더욱 엄격하게 잣대를 대는 한국의 특이한 정서를 예전에는 시기 질투가 많고 남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한국의 못된 근성이라고 깎아내린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일본에서 잡은 꽃게는 한 마리라도 탈출할 수 있게 서로 협력하는데 한국에서 잡은 꽃게는 탈출할 것 같으면 서로 끌어내려서 결국 다 죽는다는, 마치 한국인은 민족 자체가 서로 시기하고 협조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내려온 자학적인 스테레오타입으로 이러한 현상을 바라본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현상을 제대로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유사 이래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관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이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일반 서민들의 삶에서도 두레나 품앗이, 계 등 서로가 상부상조하는 공생(公生) 가치를 중요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면이 근대사회에서 새마을운동이라는 마을 구성원 전체가 참여해야 했던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생을 가치를 가장 크게 훼손하는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행동과 권력남용을 크게 경계하고 서로의 결속을 다지는 포용성과 배려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알 수 있다.

성공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사회에서 한국의 가치관은 나만 혼자 잘 사는 사회가 아니라 다 함께 잘 사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이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강력한 경쟁자들 속에서 팀의 분위기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손흥민의 토트넘처럼 한류는 성공이라는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가치관에 새로운 방향성을 부여하고 세계는 이를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협력과 공생보다는 분열과 반목에 빠져있는 것 같다. 단지 잘 나가는 한류를 응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류 속에 있는 우리의 가치를 보고 다시금 우리의 DNA에 각인된 삶의 방식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