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일관계는 우리 현대 역사에 없었을 정도로 가까워진 것 같다. 이미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었지만 현 정부는 이전의 냉랭한 한일관계를 청산하고 외교와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더욱 긴밀한 협력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올해 8월 18일에는 한미일 3국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3국의 확대된 안보협력 강화와 공동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캠프 데이비드 정신’ 두 문건을 채택했다. 코로나 이전 일본의 경제보복과 이에 따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검토가 마치 수십 년 전의 일인 것처럼 분위기가 크게 반전된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에 대해서도 중국은 일본산 수산물 전면 수입 금지를 발표했을 정도로 예민하게 대처하고 있지만 현 정부는 괴담으로 인한 억측을 배재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어 모니터링하겠다고 한다. 이 정도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혈맹’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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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동시에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언급조차 기피되고 있는 것이 있다. 위안부 피해자 관련 일본 정부의 공식적 대처,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배상 문제 등 생존자가 아직도 정신적 고통을 받는 현안들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다시 터부시되는 듯하다. 오히려 이를 거론하는 사람들은 이미 끝난 일을 굳이 언급하여 한일관계를 망치는 시대착오적 망상에 빠진 이들처럼 취급받는 듯하다. 물론 끊임없이 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것이 현실이고 상황에 따라 유연한 외교력을 가지는 것은 그 어떤 정부가 되었든 국가의 안녕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당연히 국민도 이러한 현실을 직면하고 국제관계에서 감정보다 실리가 우선돼야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보수와 진보로 양극화된 한국의 정치는 더 중요한 외교 원칙을 망가트리고 있다는 데 문제가 심각하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 있더라도 양국 간에 맺은 원칙이나 신뢰를 저버리면 이후의 관계를 설정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주변국들과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부득이하게 서로 간의 협의를 파기하거나 외교관계에 변화를 줄 때 주변에서 납득할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신뢰가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기보다 서로가 어떠한 행동을 할지 예측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관계에서의 신뢰란 결국 상대방이 특정 이슈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여러 현안에 대해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인지 예측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간의 경쟁에서 자기 행동을 예측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 있지만 외교에서는 거꾸로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자국이 어떻게 행동할지 상대방이 생각하고 예측하게 만들어 역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실력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민이 가지는 역사적 인식은 지속성을 유지하는 필요하다. 양국의 관계를 해치는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적 정서가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보수정권이 설 때마다 과거 역사는 잊어버리거나 우리 윗세대가 받은 상처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며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 데 급급하다 진보정권으로 바뀌면 갑자기 마취에서 깬 것처럼 과거 악행에 대한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일제 군국주의의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이러한 처사가 일본 정부뿐 아니라 일본 국민까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는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나라이며 모든 한국인은 속으로는 일본인을 뼛속 깊이 증오하고 어떻게든 일본을 몰락시킬 궁리만 하는 민족이라는 일본 극우들의 선동을 도와주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의 국민 정서가 그러한 선동에 넘어가면 일본 정치가가 한국에 어떠한 부당한 행위를 해도 그들에게 용인이 되며 우리에게도 일본은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진보와 보수 모두 과거사를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선동의 도구로 쓰기 때문이다. 과거 민족의 상처를 건드려 분노를 일으키고 이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결집하는 행위는 너무도 많이 반복해 왔다. 이러한 방법으로 너무나 많은 이득을 챙겨왔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 둘 다 이것을 그만둘 생각이 없으며 이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의 자각과 합심이다. 이제는 과거의 일들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 냉철한 판단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한 때이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자신들이 연관된 특정 역사에 대해 우리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식이 바뀐다면 그들은 한국인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노력하기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정권을 세우는 데 급급해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원하며 또한 우호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를 원한다면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역사 인식과 국민 정서가 정치 성향으로 나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이스라엘과 독일이 단순히 우호적인 관계를 넘어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독일 정부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독일도 과거부터 소수라 할지라도 일본의 극우 못지않은 나치 신봉자들이나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 있었고 상황에 따라 그들도 극우가 정권을 잡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일 국민의 대부분은 과거를 부정하는 언행이 외교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줄지 명확히 이해하며 보수든 진보든 절대 지지를 얻기 위해 과거의 오류를 미화하지 않는다. 이러한 결과가 유대인들이 외교관계에서 오랫동안 일관된 태도를 유지해 왔기 때문임을 알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