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년 전의 미국은 네오콘, 혹은 신보수주의 세력들이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시기였다. 이들은 닉슨이 강한 미국을 표방하던 시기에 싹을 틔웠으며 레이건 대통령의 보수정권을 거쳐 구소련의 붕괴 이후 크게 힘을 키워 나갔다. 하지만 절대적인 권력을 잡은 이후 이들의 행보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쇠퇴를 가져왔다. 미국 역사의 큰 비극과 충격이었던 911테러 사건 이후 그들은 매우 큰 오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가치관, 혹은 미국 보수의 가치관을 세계에 강요하면서 자국의 이권을 중심으로 세계질서를 재개편하고자 하였다. 이전에 미국 자신이 앞장서서 이룩한 국제질서를 무시하며 타국에 강압적인 태도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고자 하였다. 고문이나 대규모 살상무기 남용 등 독재국가에서나 허용될 폭력을 행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경제, 문화, 군사력 등이 유일무이하게 압도적인 차이를 보일 때나 가능한 제국적인 팽창이 현대에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그들의 오판은 결국 여러 방면에서 미국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미국의 보수는 트럼피즘이라 불리는, 마치 1차 세계 대전 이전의 철저한 고립주의와 자국 이기주의로 후퇴했다.

이미지 픽사베이
이미지 픽사베이

 

냉전 종식 이후 진정한 세계의 리더이자 중재자가 될 수 있던 미국이 빠진 이 함정을 결국 중국도 피해갈 수 없게 된 듯하다. 2002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전 세계가 경제위기에 놓일 때 중국은 자국의 생산력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를 장기불황에서 구출해 냈다. 이로 인해 당시 단 몇 년 전만 해도 단지 저가제품의 생산기지로서만 역할을 했던 중국은 급속도로 글로벌 리더로서의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빠른 성공은 마치 냉전 이후의 미국과 같이 중국에게 오만함이라는 저주를 걸었고 미국을 능가하는 패권국가가 되고자 하는 환상을 가지게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시진핑 주석이 독단적인 판단으로 중국을 이러한 상황에 빠지게 만들었다고도 하지만 오히려 이는 중국 권력자들의 욕망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제국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의 강력한 권력이 필요했고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지만 최소한 중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효율적이었던 1당 독재체제를 1인 독제체제로 바꾸는 것을 용인했다. 그 결과는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이후의 미국만큼, 혹은 그보다 더 처참하다. 단기간 동안 제국 놀이를 하는데 중국은 천문학적인 빚을 지게 되었으며 마치 1980년대의 한국처럼 급속한 경제성장의 부작용을 해결하고 안전적인 성장의 해법을 찾아야 하는 시기에 많은 에너지를 외교 분쟁에 낭비하였다. 결국 수많은 내적 문제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때까지 방치됐고 주변 국가를 비롯하여 많은 국가가 중국을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중국은 한동안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은 이제 완전히 중국을 자신의 패권을 위협하는 국가로 인식하게 되었고 미국과의 협업으로 얻어진 많은 이점이 사라지고 있다. 중국의 민간기업 통제와 ‘전랑 외교’는 해외 투자자들이 중국을 기피하게 만들고 중진국의 한계에 직면한 지금의 경제를 활성화할 동력을 잃게 만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빨리 이빨을 드러내어 중국 중심의 아시아지역 경제블록 구축의 꿈이 더욱 멀어졌다는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진정한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자국 중심의 경제망 구축인데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낀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중국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 세계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매력을 느끼며 중국이 전랑외교를 포기하고 서로에게 득이 되는 거래를 제안할 경우 한국을 포함해 이를 마다할 나라는 많지 않다. 이미 몇 년간을 원수처럼 다퉜던 호주조차도 중국의 화해 제스처를 반기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도 아직 중국과의 교류를 완전히 단절하기에는 감내해야 할 충격이 너무 큰 상황이라 정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기회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중국을 감정적으로 대하기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이 한한령이나 한국 역사 왜곡과 같은 문제로 국내 반중 정서를 키웠지만 중국이 세계 최강국의 환상이라는 함정에 빠져 위기를 겪는 상황을 통쾌하게만 바라볼 때는 아니다. 세계정세의 변화는 항상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줬고 이번 역시 우리 미래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중요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의 위기가 한때의 일이지 그들의 몰락이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현 상황에서 우리가 이를 어떻게 기회로 삼을지 잘 판단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