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미국 경제 호황기 때 생긴 ‘골디락스 경제’라는 용어가 있다. 평상시라면 한 국가가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면 자연스럽게 물가상승이 일어나야 하는데 당시에는 이상하게도 물가상승이 일어나지 않았다. 돈을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좋은 그때의 상황을 미국 시민들뿐만 아니라 경제학자들까지 너무 긍정적으로만 생각했다. 그들은 이렇게 경제가 좋은 이유가 뛰어난 경제학 이론을 기반으로 정부와 금융당국이 현명하게 시장을 통제해서 그리하며 더는 불황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을 정도였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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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꿈같은 호황의 뒷면에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진실이 숨어져 있었다. 단지 이것은 누군가가 물가를 떨어트리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미국은 대외적으로는 공격적인 아웃소싱 전략으로 중국 등에 공장을 지어 매우 낮은 임금으로 제품을 만들었다. 내적으로는 중남미에서 몰려오는 이민자들이 저임금의 노동력을 해결해 주었다. 이 때문에 수년간 4퍼센트가 넘는 고성장을 달성했음에도 낮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상태를 유지하는 기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정부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성 추문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처했으면서도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퇴임 지지율을 기록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이러한 정책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었다. 저임금 노동을 담당하던 기존의 노동자층은 경제 호황기에 삶이 좋아지기보다 오히려 아웃소싱과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생존이 위협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현재 러스트 벨트(Rust Belt)라 불리는 미국 제조업 공업지대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냉전 시대 이후 근대 미국의 정치문화를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당시에 나온 가장 큰 이슈는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복지, 엄격한 이민정책을 기반으로 한 저임금 직업의 보호였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이를 기반으로 공약을 내걸었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남쪽 국경지대에 마치 만리장성과 같이 엄청난 벽을 쌓겠다고 선언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이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맞물려 코로나로 인해 인구 유입이 멈추다시피 하면서 남미 이민자들이 주로 했던 직업들의 노동력이 부족해졌고 이에 따라 인건비가 오르게 되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기존의 중산층이 선호하던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의 화이트칼라 직종, 혹은 사무직들은 인공지능 등의 등장으로 생계를 위협받게 되었지만, 허드렛일이라 생각되었던 기계공이나 핸디 맨, 정원사 등의 일은 이제 대체가 안 되는 필수직으로 되면서 기존 서민층이었던 중남미 이민자들의 실질 소득이 증가하게 되어 점점 중산층이 되는 점이다.

이제 미국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민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개방적 이민정책을 외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오지 않거나 매우 늦었을 때나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시민들의 정치 관념이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민을 막았던 미국 보수 위정자들이 이 상황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국경을 개방하자고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을 언급하면 자신들의 재선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아직 미국의 많은 국민은 이민자들이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일거리를 빼앗아 간다는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개방적인 이민정책에 목소리를 높였던 중남미 이민자들은 조용한 상태다. 이들이 이러한 상황의 최대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엄격한 이민법은 불법으로 이민을 와서 가족을 위해 모국에 송금해야 하는 사람들보다 이미 가족 전원이 미국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율을 높여 놓았고 이들에게는 지금처럼 좋을 때가 없을 정도로 임금 높아지고 생활 수준이 향상된 것이다. 이제 이들은 이민을 오고자 하는 사람들의 편에 설 이유가 없어졌다. 오랫동안 중남미 이민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민주당조차 이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욕까지 먹어가면서 이민 개방정책에 적극적일 필요 역시 없어졌다.

미국의 물가안정과 노동력 강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세상의 흐름을 인식하고 기존의 태도를 180도 선회하여야 하지만 그들은 국가의 안정보다 기존의 유권자 확보에 더 집중하고 있다.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하려는 노력이 없이 코로나 이전의 선동을 반복할 뿐이다.

최근 한국도 소수의 정치가를 시작으로 기존의 정치 프레임이 현재를 반영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요즘 세상은 매년 급격하게 변한다. 미국만큼의 국력을 지니지도 못한 우리가 미국의 실수를 따라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