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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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내 거주 외국인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방송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다른 인종을 보기 쉬워졌다. 하지만 우리가 인종차별을 한다거나 타인종들과 어떠한 갈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종차별은 다민족, 혹은 다인종 국가로서 항상 서로 간에 크고 작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만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최근만 해도 미국 내 대학이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법원이 위헌 결정을 하면서 다시 인종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는 유색인종 중 하나인 동아시아인이 소수 인종 우대 반대를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 혜택이 흑인과 히스패닉에게 더 유리하게 적용되면서 미국 내 전 인종 중 상대적으로 가장 성적이 높은 동아시아인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면 인종차별은 오직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선민의식을 잊지 못한 백인들의 악행으로만 보이기 쉽다. 유색인종은 오로지 피해자이며 백인들이 타민족을 이해하고 배려하면 해결될 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인종차별이란 백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최근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아시아인 혐오 관련 폭력의 상당수 가해자가 흑인이었다는 것도 하나의 사례이다. 미국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도 백인이 58%가량으로 많아 백인 문제인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킬 뿐, 인종 간의 차별은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서로 비슷한 장소에서 거주하게 되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보일 정도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타인종, 또는 타민족에 대한 고정관념이라 할 수 있다. 마치 과거 유행했던 혈액형 성격 테스트처럼 아예 상관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기준을 근거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아는 초능력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인종차별의 가장 큰 이유이다. 누군가가 흑인이라고 했을 때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그냥 그 사람은 운동 잘하고 노래 잘하며 성격이 다혈질일 것라고 미리 판단해 버리는 것처럼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이 타인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평가한다. 하지만 거꾸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것 단 하나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더욱 가속화되는 국제화 시대에서 우리에게 매우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국과의 마찰에서 생기는 문제를 바로 타민족이나 인종에 관한 문제로 결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중국과의 외교 마찰이 발생하면 심지어 언론조차 마치 그 국가의 국민이 기질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한 정치인이 한국에 대해 비하 발언하면 그 한 사람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일본인이 그렇게 한 것처럼 몰아가기도 한다. 심지어 그 사람이 그러한 말을 한 이유를 깊이 분석하려 하는 것보다 그냥 그가 일본인이기 때문이라고 쉽게 판단한다. 이게 심각한 이유는 이러한 상황이 우리만이 아니라 주변국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정관념을 가지고 일종의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상대 국가에 대한 인식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는 국제적인 교류가 많아지고 다양해지면서 이것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큰 숙제임이 명백해졌다. 과거 역사가 어쨌든 현재의 우리와 미래를 살아가게 될 후손에게 한·중·일의 평화와 협력은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타국에 대한 고정관념은 정치인들의 해로운 행위를 용인하거나 방관하게 한다. 정치인들로서는 타국에 대한 악감정을 이용해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는 것이 부작용이 없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이를 악용함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사상의 배경에는 과거 우리의 주 활동무대였던 만주벌판에 매우 다양한 민족이 서로 교류하고 충돌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던 현실이 있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도 고치기 어려운데 타민족의 고정관념을 바꾼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리 선조들이 낸 해답은 ‘홍익’, 즉 서로가 서로에게 이로운 존재라는 인식을 만드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서로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증오를 극복하는 해답임을 우리 선조들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백범 김구 선생이 자신의 꿈은 우리가 누구보다 강한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닌 문화의 힘을 가지는 것이라고 언급했듯이 일본과 가장 사이가 좋고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는 드라마 ‘겨울연가’ 등 한류가 크게 유행했고 2001년 이수현이라는 청년이 일본에서 취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실이 널리 알려졌을 때이다. 결국 외교적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적대심이나 불신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이로운 존재임을 믿는, 홍익이 실현됐을 때임을 우리도 느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