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은행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최근 미국에서 2022년 기준 미국 은행 순의 16위었던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을 시작으로 미국 정부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저번 주에는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미국 내 은행 중 최고의 시가총액을 보유한 JP모건체이스 등 11개의 대형은행이 약 39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유럽에서는 세계 상위권의 투자은행이었던 크레디트스위스가 파산 위기 속에서 스위스의 USB에게 헐값으로 인수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구제 조치에도 은행들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평가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 은행들뿐 아니라 한국도 현재의 금융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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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는 현재 상황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비교하고 있지만 사실 원칙적으로 보면 이것은 극소수의 은행, 특히 가상화폐나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기업 등 위험요소가 큰 사업들과 거래를 한 곳들만의 문제여야 했다. 하지만 이것이 중소은행들 전체의 문제로 확산된 이유는 은행 자체보다 시대의 변화로 봐야 한다. 과거부터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크게 고민해 보지 않은 상식 아닌 상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의 운영방식은 그 어떤 은행도 입금된 자금 전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은행의 수익은 기본적으로 타인이나 기업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방식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예금된 자금의 상당 부분이 대출에 사용된다.

이러한 운영방식에서의 위험성은 은행이 가지고 있는 자금은 예금주가 장기간 돈을 입금하겠다는 계약을 하지 않은 이상 언제든 돌려줘야 하지만 은행이 대출해주는 자금은 대부분 상환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은행이 당장 가지고 있는 예치금보다 더 많은 돈을 예금주에게 돌려줘야 할 경우 바로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일반적인 경우 은행은 안전하며 최악의 경우에도 정부가 해결을 해줄 것이라고 믿고 자산의 대부분을 은행에 맡겨놓기 때문에 한순간에 대량이 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기 때문이다.

이 매우 오래된 상식은 오랫동안 절대 불변하는 진리로 통했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만 해도 전체 예금액의 7%의 지급준비율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대부분의 경제 강국들은 이보다 낮은 비율의 예금을 의무적으로 중앙은행에 적립하고 있다. 이론상 갑자기 경제 불황이 생기거나 은행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대량의 예금인출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은행이 이를 견뎌내기 매우 어려울 수 있다는 이른바 “뱅크런”이라는 상상에나 존재할 최악의 시나리오가 점점 가능한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이것이 진정한 위기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이러한 상황이 거의 불가능했는데 갑자기 가능해진 가장 큰 이유는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정보의 전달 속도는 매우 빨라졌으며 특히 유튜브나 SNS 등으로 인해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정보에 대한 해석과 평가까지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닌 타인이 해주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매우 빠른 집단행동이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온라인에 떠도는 정보로도 갑자기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은행이 예전처럼 안전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과거 문명이 발전하면 사람들의 지성이 높아지며 모든 이들이 깨달은 사회가 될 것이라 상상한 이들이 있다. 하지만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궁금한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된 지금 과연 우리가 과거보다 현명해졌는지는 의문이다. 정보의 전달, 분석, 이해가 너무 단편적이고 빠르다 보니 상황판단을 논리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하고 있다. 상황에 대한 편파적인 이해로 행동이 분노와 욕심, 공포 등의 감정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과연 은행만이 위기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IT의 발전이 사람을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IT의 발전으로 사람이 더 지혜롭고 현명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정한 국학연구소 소장 luminapierce202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