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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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문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휴고상을 수상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어 넷플릭스 오리지날 드라마로 제작이 확정된 중국 작가 류츠 신의 《삼체》라는 소설이 있다. 다양한 과학적 이론을 활용하여 방대한 우주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중국 작가임에도 문화혁명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통해 인간의 추악한 면을 서술한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보다도 더 크게 관심을 가진 부분은 작가가 3부작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진 하나의 질문이었다. 정해진 미래에 인류에게 확실한 위기가 온다면 인류는 집단적으로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가? 책에서의 인류는 허술한 계획을 세우다 실패하여 절망하기도 하고 포기도 하며 한때는 위기를 극복했다는 오판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필자는 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한국의 저출산 위기가 떠올랐다.

오늘날 한국이 쇠퇴의 길로 간다면 아마도 가장 확실한 위기는 북한 문제나 경제위기, 국제질서의 변동이 아닌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와 노령화가 아닐까. 다른 위기들은 예측이 어렵고 우리에게 오히려 위기가 아닌 기회로 다가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저출산은 수치로 예측이 가능하며 수많은 국가의 사례를 통해 어떠한 상황을 야기할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현재 이 문제를 마치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나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인류 보편적인 사회적 이슈인데도 마치 20대나 30대가 정신만 차리면 해결될 문제라거나 더 좋은 복지정책이 만들어지면, 더 정확하게 말하면 더 좋은 정당이나 대통령을 뽑으면 해결된다고 오판하는 것이다. 이미 우수한 복지정책과 성평등 의식을 가지고 있는 핀란드조차 저출산에는 백약이 무효임을 인정하며 오히려 이를 대비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저출산 국가들보다 더 심각한 인구분포도를 보이고 있으며 우수한 인적자원을 기반으로 한 경쟁력이 전부인 우리에게 인구문제는 국가의 총체적 위기를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의 지리적 환경은 한시도 약소국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사방이 강국이나 적대국가에 둘러싸여 있는 현 상황에서 국가가 경쟁력을 잃게 되면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강국들의 속국이 되어 사실상 망국의 비극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역사가 언제나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비정한 현실이다. 아무리 길어도 겨우 20-30년밖에 남지 않은 위기에 대해 단지 정부 차원만이 아닌 국민 전체가 새로운 시각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우선 우리가 처음 인식해야 하는 것은 저출산은 원인이 아닌 결과, 혹은 증상라는 것이다. 혼인율, 출산율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세대차이이다. 간혹 ‘나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라고 젊은 세대들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소위 “꼰대문화”가 있다. 재밌게도 이러한 사회현상은 인류문명과 함께 해왔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 하는 메소포타미아의 비석에서는 아들이 공부를 게을리하여 미래를 망칠 것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기록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의 문서에서도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글이 남아 있다. 현대에는 일본의 “니트족”, 중국의 “탕핑족” 과 같이 극단적으로 사회적 지위 향상에 소극적인 이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라고 볼 수 없다. 이를 단순히 현세대가 나약하거나 의지나 열정이 부족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너무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류 역사의 패턴인데 이에 더해 도시화가 출산을 축복이 아닌 부담으로 만들면서 저출산이 더 가속화하였다.

과거에는 젊은 세대들이 너무 편하게 살아서 힘든 것을 몰라 그렇다고 했지만 과학이 발달한 지금은 이에 대해 더 구체적인 설명이 가능해졌다. 모든 포유류의 의욕, 또는 의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뇌 내의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인데 이 도파민은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분비량이 적어진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이미 어렸을 때부터 도파민이 자주 분비되는 환경에 노출되었다면 그 이상의 보상이 없다면 의지를 내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과거의 세대가 열심히 살아서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준다면 그 아이들이 이전 세대와 같은 출발점에서 의욕을 낼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 자식들을 자신의 과거와 같은 환경으로 살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유일한 해결법은 새로운 세대가 자신들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인 존재임을 인식하고 새로운 세대에 맞춰 교육, 복지, 기업환경 등 많은 것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너무도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에 더 극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국민 전체의 공감대와 해결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이를 깨닫지 못했다. 단순히 젊은 세대를 문제의 원인으로 보고 변화를 거부하다 보니 문제에 대한 원인과 대책이 항상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었고 그것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게 되었다. 미국은 과거에 주류인 백인들이 중산층에서 밀려나는 원인을 이민자 문제로 보고 많은 인종차별 문제를 만들게 됐고 현재는 백인 남성들이 자신들의 남성성을 진보가 훼손하여 자신들이 무기력해졌다고 여겨 새로운 극단적인 보수층을 만들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실책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제는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촉발된 저출산 문제를 한 세대의 문제로 둘 수 없다. 우리 전체의 미래가 어떻게 이 문제를 대처하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