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Laura Gabriela]

그리스인들에게 그들의 전통, 문화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야기할 것이다. 이집트인, 이란인에게 같은 질문을 해도 그들은 그들의 기원이라고 생각하는 고대부터 설명하기 시작할 것이다. 한국인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시대 이야기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이상한 일 아닌가? 반만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며 굳이 고조선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삼국시대는 확실히 한국의 역사로 인식을 하고 있는데 마치 조선시대 이외에는 아무런 것도 없었던 것처럼 국가 전체가 기억상실에 빠져있다.

역사의 기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제기차기나 널뛰기 같은 놀이문화나 관혼상제 등의 가례, 우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크고 작은 전통이나 문화들에 대해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가 완전히 빠져있는 것은 우리가 한 번쯤은 이상하다고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마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한국식 문화혁명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상황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실제로 문화혁명이 일어난 중국조차도 청나라를 넘어 아늑히 이전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 시대 풍속의 고증에 많은 인력과 자금을 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 상황을 너무도 당연시하고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이 조선시대에 한정되어 있다면 중국이 고구려, 더 나아가 고려까지 중국의 역사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당연히 우리의 전통과 문화인 것이 분명한 과거에 대해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으며 관심조차 없다. 고려시대의 문화만 보더라도 자유연애가 가능했으며 여성의 권한이 동시대 어느 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상대적으로 높았고 친가와 외가를 똑같이 중시했다고 한다. 제사나 혼례를 볼 때 되도록 간소하게 치렀고 제사의 부담을 장남에게만 지우지 않고 돌아가면서 지냈다고 하는데 역사로 봐도 고려시대가 더 오래된 우리의 전통문화라 할 수 있음에도 마치 조선시대만 우리 역사인 것처럼 조선시대의 전통만 고집하고 있는 것은 과연 왜일까?

더욱이 고려의 문화라고 하면 대부분은 고려장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고려장이 역사에 실존했던 사건인지 아닌지를 논하기 전에 이러한 이야기를 마치 풍습인 것처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괴이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런 것을 풍습으로 친다면 문명국가들을 포함 수많은 국가들의 경우 식인행위가 그들의 풍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해 극단적으로 피폐하고 굶주린 상황에서 일어난 일련의 비극을 마치 모든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한 일처럼 날조한다면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일제 강점기 동안 당한 역사왜곡에 이어 이제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국의 정체성을 왜곡시키고 있다. 아무리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국이 아닌 중국 내 조선족들을 중국 민족으로 동화시키기 위함이라 해도 우리까지 영향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대항하는 데 있어 최고로 중요한 것이 역사기록에 대한 교육은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어느 유튜브에서 한 인플루언서가 역사교육을 하나의 음모론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봤다. 그는 현재는 엄연히 한국이고 그 이전의 역사는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정부가 국민들에게 국뽕을 심어 현혹하여 정작 중요한 경제문제나 민생 문제로부터 국민의 눈을 돌리려 한다고 했다. 그의 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하나는 분명히 진실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학교의 교육이 과거의 전통과 문화를 개인의 정체성과 관련 없고 완전히 동떨어진 것처럼 교육을 해온 것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역사, 전통과 문화에 대한 교육은 단순히 기록 교육이지 전혀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으며 어떠한 공감대도 형성할 수 없다.

기원전 1700년 전 수메르 문명의 비석에 나온 내용에서 아들이 학교를 빠지고 공부를 게을리하는 모습에 아버지가 이러한 한탄을 한다.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땔감을 잘라오게 했느냐?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쟁기질을 하고 나를 부양하라고 했느냐? 도대체 왜 글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냐? 글을 열심히 배워야 서기관의 직업을 물려받을 수 있다.” 마치 현재 많은 아버지들의 질책처럼 느껴지는 이 말이 우리나라 역사로는 고조선 시대 누군가가 한 말이다.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며 전통과 문화는 이러한 감정과 마음을 가진 조상들이 자신들 입장에서 더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며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다. 인간으로서의 입장을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나가며 과거의 조상들의 삶을 단지 기록이 아닌 인간사로 조명할 때 우리는 조선시대를 넘어 그 이전의 과거까지 우리의 역사로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과거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다양한 유튜브나 웹툰 등에서 조선, 고려, 삼국시대 등을 기존의 방식이 아닌 마치 일상의 삶들을 다루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푸는 것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의 문화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들이 현재 시각에 이해될 수 있도록 재조명되며 더 상세히 기록이 되어있는 조선시대에서는 홀몸으로 자식들을 키운 현감이 직접 장을 담가 자식들에게 보내고 답변이 없자 섭섭해하는 좀 더 인간적인 내용들이 다뤄지고 있다.

마치 오래된 상처가 자연적으로 아무는 것과 같은 이러한 시도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의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대중적인 트렌드로 발전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 또한 정부나 학계 차원에서도 최소한 고려 시대 전통과 문화에 대한 발굴과 해석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로 인한 결과물들이 우리 고유의 전통과 문화로 바르게 인식될 때 비로소 조선시대밖에 없는 것 같은 문화적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