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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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로마제국이 주변 국가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문화, 경제, 군사력으로 끝없는 시간 동안 존재할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허무하게도 멸망했다. 또한 해가 절대 뜨지 않는 나라라 불리던 영국도 2차 대전 이후 서서히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현재 미국은 소련의 붕괴 이후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세계정세를 좌지우지하며,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경제적인 순환 구조를 만들어 막대한 부를 창출하면서 안정적인 물가와 더불어 이상적인 "골디락스"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최근의 정세는 이러한 미국이 만든 질서에 균열을 가져오며 영원할 것 같았던 미국의 전성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3월에 중국에서 이루어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 관계 정상화 합의는 미국 외교계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유력 성직자에 대한 사형 집행을 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이란 시위대가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을 습격하며 두 나라가 외교 관계를 끊었고, 이후 중동에서 벌어졌던 대리전쟁은 국제적인 관점에서는 중동 내부의 지역적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이 배후에는 천년이 넘는 전쟁과 학살로 점철된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원한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중국의 중재가 이 갈등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상호 이해를 이루어 과거의 원한을 뒤로하고 이슬람권 내부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커진 것이다. 둘째, 중동국가들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번 합의를 통해 중국이 대체가능한 외교적 선택지로 대두되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미국의 중동 내 영향력 약화를 의미한다. 중동의 맹주들이라 할 수 있는 두 국가의 합의에서 배제된 것은 이후 중동에서 벌어질 여러 사건에 대해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이 점차 약해진다는 것과 좋든 싫든 미국을 필요로 했던 중동의 인식이 이제는 미국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미국이 중동과의 관계를 원점에서 다시 바라봐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외교적, 경제적 파트너인 유럽연합에서도 균열 음이 들리고 있다. 이미 과거 트럼프 행정부와의 갈등으로 인해 독일과 같은 유럽 내 강국이 유럽이 과거처럼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당시 트럼프의 대유럽 정책에 반발하는 하나의 외교적 해프닝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 방문 중 언급한 “유럽은 미국이나 중국의 수하가 되선 안 된다”는 발언은 무슨 일에서든 자국의 영향력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프랑스의 외교적 성향을 고려하고서라도 매우 충격적이다. 그가 유럽인들이 대만 문제에서 미국의 정책을 맹목적으로 따르면 안 된다고 한 말에서, 미국의 정책에 큰 반발 없이 협조해 왔던 유럽 역시 기존의 관계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야심으로 인한 미중 갈등이 매체들의 자주 다루는 이슈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많은 국가가 미국 독자체제의 국제질서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며, 더 이상 미국이 세계의 질서 유지와 발전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2차 대전 이후 마셜플랜을 통한 대규모 경제지원 정책과 케네디 대통령 시대 미국인들의 적극적인 해외 봉사활동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 등 외교적으로 여러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세계의 안보를 지키는 경찰국가로 인정받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의 자국우선주의로 인한 여러 국가와의 갈등은 국제적으로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에 대한 가장 큰 혜택을 중국이 받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서, 최후의 승자가 미국인지 다른 국가인지는 아무도 확답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존에 유지되어왔던 국제질서가 끝났다는 점이다. 한국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미국이 만든 글로벌리제이션 덕분에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국가 중 하나가 한국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준 기반과도 같은 기존의 세계정세가 뿌리채 흔들리는 현 상황에서, 우리는 이 위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지 빨리 알아채야 한다. 더 이상 현 정치실태를 마치 한편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역사적으로 어떤 나라든 내부가 분열한 상태에서 국가위기를 극복한 사례는 없다. 이념에 따른 갈등을 극복하고 실리를 기반으로 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정치인이 국민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인을 이끌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가지는 유일한 권력은 투표권이다. 이 권리가 분산되면 국민은 정치인들로부터 힘을 잃게 된다.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우리 국민은 여러 차례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이제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변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기적을 창조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