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부인 유골을 국내에 봉환하기 위한 대국민 모금운동을 펼친다고 7월 21일 밝혔다. 

이들은 '연해주 항일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의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1952년 작고) 여사의 유해를 이번 광복절 전에 국내로 봉환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키르기스스탄 공화국의 수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방치된 최재형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묘. 사진 서경덕
키르기스스탄 공화국의 수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방치된 최재형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묘. 사진 서경덕

최재형 선생이 1920년 일제에 의해 연해주에서 총살당해 순국한 이후 최 여사는 70여 년 동안 키르기스스탄 공화국의 수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방치되어 있었다.

최재형 선생은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 러시아 군대 군납상인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조국 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모든 재산을 바치는 등 사회지도층으로서 도덕적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독립운동가이다.

1904년 러일 전쟁 이후에는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어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1909년에는 대동공보(大東共報)를 인수하여 재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사를 게재하여 해외와 국내에 배부하였다.

191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블라디보스톡에 독립단을 조직하고 단장으로서 무력 항쟁을 주도하다가 1920년 4월 일본군의 총격을 받고 순국하였으나, 지금까지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재형 선생은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묘가 조성(1970년)되었다가, 이른바‘가짜 유족 사건’으로 현재 묘가 없다. 게다가 최재형 선생 유해를 찾을 수 없어 위패로 모시고 있다 보니 유족들은 묘 복원을 희망해왔다.

최재형 선생(사진 오른쪽)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 사진 서경덕
최재형 선생(사진 오른쪽)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 사진 서경덕

 

정부는 최재형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몇 년 전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묘소를 파악한 사업회는 국가보훈부와 함께 최 여사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운동가묘역 108번(원래 최재형의 묘터)에 합장하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최 여사는 공식적인 서훈이 없다 보니 현행법으로는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문영숙 이사장은 "최재형을 도와 평생을 내조하고 아들과 사위까지 일제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데, 단지 서훈이 없다는 이유로 유골을 모셔 오는 모든 비용을 민간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경덕 교수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전해 듣고 누리꾼과 함께 모금을 통해 최 여사를 모셔 온다면 오히려 더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 모금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모금운동은 '십시일반 프로젝트'로 1인당, 1만원씩, 1만명의 동참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사업회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기부금 영수증도 발급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