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월) 오전 10시, 순국 103년만에 최재형 선생(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과 부인 최 엘레나 여사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 부부합장으로 모셨다.

이미지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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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합장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이종찬 광복회 회장,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독립 관련 보훈단체장, 회원, 최재형 선생의 유족 등이 참석했다.

최재형 선생의 묘는 1970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조성되었으나, 이른바‘가짜 유족 사건’으로 멸실되어 현재까지도 빈터로 남아있다.

이후 유족들은 멸실된 묘의 복원을 지속적으로 희망해왔음에도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하도록 규정한 국립묘지법에 따라 묘를 복원할 수 없었다.

이에 국가보훈부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의 유골을 함께 묘에 합장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최재형 선생을 부인 최 엘레나 여사와 함께 국립묘지에 합장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다.

최재형 선생 부부 합장식은 “백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 주제로 봉송식과 안장식으로 나뉘어 거행됐다.

봉송식은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30분간 거행되며 국기에 대한 경례, 영현에 대한 묵념, 최재형 선생 공적 영상 상영, 헌화 및 분향, 추모사, 부부사진 증정, 추모공연, 영현 봉송과 전송의 순으로 진행됐다.

봉송식에는 8월 7일(월) 국내로 모신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와 최재형 선생의 순국 추정지인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 선생 기념관(구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해 13일(일) 동해항을 통해 반입한 흙을 위패,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한 부부의 영정사진과 함께 모셨다.

러시아 등 각국에서 입국한 유족 15명을 대표해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 파벨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이 최재형 선생의 5대손 최 일리야에게 최재형 선생 부부의 사진을 증정했다.

최재형 선생 부부는 금슬이 좋았으나 안타깝게도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103년만에 만나는 의미를 담아 부부 사진을 특별 제작하였다.

이어 안장식은 김수삼 국립서울현충원장 주관으로 애국지사 묘역 108번자리에서 하관, 허토 등 식순으로 40분간 진행되며 안장식을 끝으로 최재형 선생 순국 103년 만에 부부의 묘가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에 마련된다.

9세 때 부모를 따라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최재형 선생은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조국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국외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고,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는 8명의 자녀를 낳고, 선생의 독립운동을 내조하였으나, 1920년 4월 최재형 선생이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이후에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다 1952년 사망해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편, 국가보훈부는 8월 12일(토), 13일(일) 양일간 서울현충원 현충관에 국민추모공간을 마련하였으며 최재형 선생을 추모하고 메시지를 남기는 국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