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1877 ~ 1953) 회고전 《더현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전 : 뒤피, 행복의 멜로디》가 5월 17일부터 더현대 서울 6층 ALT.1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백화점, 지엔씨미디어가 주최하고,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공식 후원하며 라울 뒤피의 판화, 데생, 태피스트리, 도자 등 130여 점을 선보인다.

라울 뒤피의 최고 권위자인 전시 총감독 크리스티앙 브리앙 수석 큐레이터(사진 왼쪽)가 5월 16일 더현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전시회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김경아 기자
라울 뒤피의 최고 권위자인 전시 총감독 크리스티앙 브리앙 수석 큐레이터(사진 왼쪽)가 5월 16일 더현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전시회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김경아 기자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프랑스 3대 미술관 중 하나이자 120,000여 점의 방대한 근현대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문화 기관이다. 미술관이 있는 퐁피두센터는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하여 1977년 개관하였다. 라울 뒤피 사망 후 그의 부인 ‘에밀리엔 뒤피’는 작가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자신의 아틀리에에 보관하였던 작품 전체를 국가에 기증하면서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이 ‘라울 뒤피’의 최대 소장처가 되었다.

더현대 서울 2주년 기념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라울 뒤피의 전천후 예술가적인 면모를 ‘행복의 멜로디’라는 대주제 하에 총 12개의 세부 주제로 나누어 소개하며, 하나의 주요 멜로디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방식으로 완성되어 한 편의 교향곡을 감상하는 듯한 예술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의 모든 작품은 라울 뒤피의 최대 컬렉션인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작가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애착을 가지고 자신의 아틀리에에 소장했던 최고의 작품들로 구성되었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라울 뒤피의 최고 권위자인 전시 총감독 크리스티앙 브리앙 수석 큐레이터는 5월 16일 더현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1,500여 점에 달하는 라울 뒤피의 소장품 중 남다른 독창성을 보여주는 중요 작품들을 엄선하여, 미술사적으로 매우 수준 높은 구성의 회고전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크리스티앙 브리앙 수석 큐레이터는 “소장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작가가 직접 소장한, 스스로에게도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가졌던 소중한 컬렉션을 총망라하여 선보이는 훌륭한 전시이다”고 말했다.

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1877 ~ 1953) 회고전 "더현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전 : 뒤피, 행복의 멜로디"가 5월 17일부터 더현대 서울 6층 ALT.1에서 열린다. 사진 김경아 기자
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1877 ~ 1953) 회고전 "더현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전 : 뒤피, 행복의 멜로디"가 5월 17일부터 더현대 서울 6층 ALT.1에서 열린다. 사진 김경아 기자

또한 ‘행복의 멜로디’라는 부제는 ‘행복의 멜로디’라는 프랑스어로 번역된 미국영화 제목을 보고 음악가 가정에 태어나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라울 뒤피에 어올린다고 생각하여 가져왔다. 마지막 섹션에 음악 관련 내용이 있는데, ‘기쁨과 행복’이 라울 뒤피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섹션 1 : 인상주의로부터 L’Héritage impressionniste

프랑스 북서부 지역 노르망디에 있는 산업 항구 도시 르아브르Le Havre에서 태어난 라울 뒤피는 초기에는 인상파의 후예로서 재능 있는 풍경 화가로 먼저 알려지게 되었다. 르아브르는 클로드 모네의 고향이기도 하며 인상파의 요람과 같은 지역이다. 1900년 초기의 라울 뒤피의 회화 작품의 주된 모티브는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항구와 도시, 농촌 등 풍경이었다.

라울 뒤피,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 1908. 캔버스 유채, 81ⅹ55cm, 파리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라울 뒤피,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 1908. 캔버스 유채, 81ⅹ55cm, 파리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섹션 2 : 야수파 뒤피 Dufy fauve 

라울 뒤피는 1905년 살롱 도톤에 출품된 마티스의 <사치, 평온, 쾌락>에 깊은 감명을 받고 인상파에서 야수파로 향했다. 1906년부터 그는 전통을 거부하고 혁명을 지향했던 야수파의 주요한 화가 중 한 명으로 되었다. 그를 비롯한 야수파 화가들은 강렬한 색상과 가벼운 붓질을 활용하여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렸다.  훗날 그의 배우자가 되는 에밀리엔느의 모습을 담은 작품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을 보면 빈센트 반 고흐의 영향을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섹션 3 : 입체파 시기 Une saison cubiste

뒤피는 1907년 파리에서 열린 폴 세잔의 대규모 회고전에 영향을 받아 1908년 입체파(Cubism)로 화풍을 바꾸었고 그의 친구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 기법을 시도했으며,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Marseilles 근처 에스타크 Estaque의 풍경을 다양한 시각으로 그려냈다.

1911년 라울 뒤피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동물시집 혹은 오르페우스의 행렬Le Bestiaire ou Cortège d' Orphée'의 삽화를 목판화로 그려내는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 사진 김경아 기자
1911년 라울 뒤피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동물시집 혹은 오르페우스의 행렬Le Bestiaire ou Cortège d' Orphée'의 삽화를 목판화로 그려내는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 사진 김경아 기자

섹션 4 : 대중 예술의 혁신 Une Rénovation d’art populaire

라울 뒤피는 1905년 가을 살롱전에서 고갱의 목판화를 본 후 판화를 시작하였다. 프랑스 중세 목판화의 전통을 살리기 위해 여인의 누드를 소재로 작업을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1911년, 대중 예술에 열정을 갖게 된 34세의 라울 뒤피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동물시집 혹은 오르페우스의 행렬Le Bestiaire ou Cortège d' Orphée>의 삽화를 목판화로 그려내는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 목판화는 동물과 식품 모티브로 된 26개와 오르페우스를 묘사한 전면삽화인 4장으로 이루어졌다.

암사슴, 새 그리고 나비. 1910.
암사슴, 새 그리고 나비. 1910.

섹션 5 : 패션 La Mode

리옹의 유명 직물 제조업체와 협업하게 된 그는 수많은 견본을 그려냈고,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 Paul Poiret와도 함께 일했다.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는 뒤피가 제작한 아폴리네르의 목판화를 보고 그의 판화를 이용해 직물디자인을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라울 뒤피는 장식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활용해 1924년부터 도예가 로렌스 아르티가스 Llorens Artigas와 함께 수많은 도자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사진 김경아 기자
라울 뒤피는 장식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활용해 1924년부터 도예가 로렌스 아르티가스 Llorens Artigas와 함께 수많은 도자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사진 김경아 기자

섹션 6 : 장식 예술 Arts décoratifs

이 시기에 뒤피는 자연스러움, 선명하고 투명한 색상을 기반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그림체를 만들어 냈다. 또한, 장식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활용해 1924년부터 도예가 로렌스 아르티가스 Llorens Artigas와 함께 수많은 도자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섹션 7 : 바다와 말 Mer et chevaux

라울 뒤피는 작은 말들로 가득한 해안가 도시의 환상적인 이미지로부터 회화적 영감을 받아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섹션 8 : 여행자의 시선 Le regard voyageur

세계 곳곳을 여행했던 라울 뒤피는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그리고 미국을 여행하면서 각 나라의 풍경을 자유롭게 그려냈다.

나무 아래 기수들, 1931-1932년, 캔버스에 유채, 213 x 260cm © Centre Pompidou, MNAM-CCI/Jean-François Tomasian/Dist. RMN-GP. 사진 김경아 기자
나무 아래 기수들, 1931-1932년, 캔버스에 유채, 213 x 260cm © Centre Pompidou, MNAM-CCI/Jean-François Tomasian/Dist. RMN-GP. 사진 김경아 기자

섹션 9 : 초상화 Portraits

라울 뒤피는 초상화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초기부터 그는 아내 에밀리엔느 뒤피를 모델로 삼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종 유명 인사들을 그리기도 했다. '나무 아래 기수들'은 영국의 케슬러 가문이 1930년에 의뢰한 기념비적 가족 초상화는 뒤피가 남긴 걸작 중 하나이다.

섹션 10 : 대형 장식 벽화 Grands décors

1930년대는 라울 뒤피가 대형 장식 벽화에 전념한 기간이었다. 1937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에서 전시된 전기 요정La Fée Électricité 또한 그의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직접 과슈로 채색하여 완성된 현존하는 유일한 전기 요정La Fée Électricité 석판화 연작을 만날 수 있다. 6미터가 넘는 연작에 절반은 본연 그대로 보존된 자연의 풍경을, 또 다른 절반은 산업적인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러한 과도기적 시대의 풍경 속에 전기의 발명과 관련 있는 수많은 지식인을 배치했다.

빨간 바이올린, 1948년경, 캔버스에 유채, 38.5 x 46cm  © Centre Pompidou, MNAM-CCI/Hélène Mauri/Dist. RMN-GP. 사진 김경아 기자
빨간 바이올린, 1948년경, 캔버스에 유채, 38.5 x 46cm © Centre Pompidou, MNAM-CCI/Hélène Mauri/Dist. RMN-GP. 사진 김경아 기자

 

섹션 11 : 아틀리에 Ateliers

라울 뒤피가 다루었던 독창적인 주제들 중 하나는 바로 작가 자신의 아틀리에, 특히 파리 몽마르트 언덕 아래에 있는 겔마 스튜디오였다. 뒤피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만큼 작가 자신 또한 훌륭한 아마추어 음악가였으며, 이 주제는 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교회 성가대를 지휘한 아버지, 음악가로 성공한 동생 못지 않게 뒤피는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가를 존경했다. 

섹션 12 : 검은빛 Lumière noire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서는 ‘검은 화물선들’을 다룬다. 작가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거의 완전히 파괴된 고향 항구를 묘사하기 위해 검정색 단일 색조를 사용했다. 이러한 표현법은 작품이 햇빛의 방향에 따라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검은 화물선 연작은 단순히 광학 현상만을 표현한 작품이라기보다 화가가 남기는 유언이라는 가슴 시린 의미를 담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검은 색이, 역설적이게도 평생 색을 찬미하며 그림을 그려온 화가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어주기 때문이다. 

라울 뒤피는 1953년 코펜하겐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3월 23일 심장 발작으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76세. 니스의 시미에수도원 묘지에 안장됐다. 

《더현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전 : 뒤피, 행복의 멜로디》는 9월 6일까지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