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은주)은 2023년 해외소장품 걸작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를 4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서소문본관에서 개최한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예술성과 대중성을 갖춘 세계적 명화들을 소개하는 해외소장품 걸작전의 일환으로 기획하였다. 이 전시는 2019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이 협의를 시작하여 공동 기획한 전시이다.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전 생애에 걸친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등 작품 160여 점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Sanborn Hopper Archive)의 자료 110여 점을 7개 섹션으로 나누어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충실히 조망한다.

애드워드 호퍼는 20세기 초 현대인이 마주한 일상과 정서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화폭에 담아낸 대표적인 현대미술가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성을 지닌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미술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사진 오른쪽)와 킴 코나티(Kim Conaty)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가 4월 19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서울시립미술관 2023 해외소장품 걸작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 전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 김경아 기자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사진 오른쪽)와 킴 코나티(Kim Conaty)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가 4월 19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서울시립미술관 2023 해외소장품 걸작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 전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 김경아 기자

개막에 앞서 19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뉴욕 휘트니미술관 아담 와인버그 앨리스 프랫 브라운 관장은 “뉴욕 휘트니 미술관이 보유한 에드워드 호퍼의 가장 중요한 회화, 유화, 판화, 드로잉 등 컬렉션 일부를 산본 호퍼 아카이브의 자료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해외소장품 걸작전의 일환으로 소개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면서 “휘트니 미술관은 세계 최대의 에드워드 호퍼 작품과 아카이브를 소장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매체를 합쳐 3100여 점을 보유하고 있고 또 휘트니가 소장하고 있는 한 작가의 작품으로 봐도 호퍼의 작품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아담 와인버그 앨리스 프랫 브라운 관장은 “금번 전시는 호퍼가 뉴욕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부터 확장을 해서 그가 방문했던 장소들 중 그의 작품에 대한 접근 방식에 영감을 주었던 의미 있고 중요한 장소들을 따라가게 된다. 그중에는 파리,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등이 있다”라면서 “호퍼는 어디에서나 관찰자의 역할을 했다. 뉴욕의 고가 전차를 타거나 어두운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파리의 샌 강변을 산책하거나 메인주 오건킷의 바람 부는 해안을 거닐거나 조세핀 호퍼가 케이프코드에서 스케치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호퍼는 그만의 독보적인 시각적 화법과 내면의 인상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뉴욕 휘트니미술관 아담 와인버그 앨리스 프랫 브라운 관장(사진 왼쪽)이 킴 코나티 큐레이터와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경아 기자
뉴욕 휘트니미술관 아담 와인버그 앨리스 프랫 브라운 관장(사진 왼쪽)이 킴 코나티 큐레이터와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경아 기자

휘트니미술관은 1968년에 조세핀 니비슨 호퍼(1883~1968)에게 작고한 남편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2,500여 점과 작품 관련된 정보를 꼼꼼히 기록한 장부를 기증받았다. 또한 휘트니미술관은 2017년에 아서 R. 산본 호퍼 컬렉션 트러스트가 보유한 4,000여 점의 아카이브를 이어받아, 에드워드 호퍼와 관련된 독보적인 연구 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등 작가가 선호한 장소를 따라, 도시의 일상에서 자연으로 회귀를 거듭하며 작품의 지평을 넓혀간 호퍼의 65년에 이르는 화업을 돌아본다.

전시는 그의 전 생애에 걸친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등 작품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Sanborn Hopper Archive)의 자료 270여 점을 7개 섹션으로 나누어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충실히 조망한다. ‘에드워드 호퍼’,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조세핀 호퍼’, ‘호퍼의 삶과 업’의 7개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전시 제목 ‘길 위에서’는 호퍼가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지역, 케이프코드로 향하는 길이자, 그곳에서 호퍼가 독자적인 예술을 성숙시켜 가는 여정, 나아가 그 길 위에서 우리가 호퍼를 만나는 순간을 상징한다.

1882년 뉴욕주 나이액에서 태어난 호퍼는 그림과 문학을 즐기며 성장한다. 부모의 권유로 1899년 실용미술 위주의 뉴욕일러스트레이팅학교에 진학하나, 이듬해 뉴욕예술학교로 편입하여 20세기 전반 미국 사실주의 화단을 이끈 로버트 헨라이 등의 수업을 들으며 예술가의 꿈을 이어간다.

1906년 뉴욕에서 삽화가로 일을 시작한 호퍼는 예술가의 꿈을 안고 당대 예술의 수도로 여겼던 파리로 향한다. 도시화로 인해 끝없는 개발이 반복되는 뉴욕과 달리 옛 모습을 간직한 파리의 매력에 빠진 호퍼는 1906년에서 1910년 사이 3회에 걸쳐 파리에 체류한다. 세 번의 유럽 방문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뉴욕에 정착한 호퍼는 미국적 풍경을 담기 위한 시도를 거듭한다.

생계를 위해 선택한 삽화가로서의 현실 속에서 예술가의 꿈을 놓지 않았던 호퍼는 선이 강조되는 판화 기법 에칭을 1915년 시도한다. 그는 1916년 에칭프레스를 구입한 뒤로 1928년까지 당대 뉴욕의 면면을 담은 약 70점의 판화를 제작한다.

뉴욕은 호퍼가 가장 잘 알고 좋아하는 미국의 도시였다. 호퍼는 1908년부터 1967년까지 평생을 뉴욕에 거처했으며, 그에게 뉴욕의 풍경과 뉴요커들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관찰의 대상이자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 1929. 캔버스에 유채, 74.5×122.2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96. 사진 김경아 기자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 1929. 캔버스에 유채, 74.5×122.2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96. 사진 김경아 기자

호퍼는 미국에서 청교도들의 첫 번째 정착지였던 뉴잉글랜드의 북동부 6개 주 중 하나인 메인주에서 몇 번의 여름을 보낸다. 1912년 호퍼는 뉴잉글랜드의 해안선을 따라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를 여행하고, 야외 작업을 시작한다. 그 후 그는 버몬트와 뉴햄프셔의 산과 농장을 지나 매사추세츠주와 메인주의 다른 해안 지역으로 돌아온다.

1914년과 1915년에 호퍼는 3마일에 이르는 모래 해안으로 둘러싸인 작은 어촌인 메인주의 오건킷을, 1916년부터 1919년 사이에는 메인주의 해안선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바다 절벽으로 둘러싸인 몬헤건섬을 네 차례 방문한다. 몬헤건섬에서 그는 소지가 간편한 작은 크기의 패널을 지니고 암석 해안을 걸어 다니며 스케치를 하거나 밑그림 없이 즉흥적인 작업을 한다. 1923년 여름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에서 그는 동문이자 작가인 조세핀 버스틸 니비슨과 교제를 시작했고, 1924년 결혼했다. 그는 조세핀의 영향으로 야외 수채화 작업을 시작했고, 곧이어 그녀의 소개로 브루클린 미술관 전시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 작업한 호퍼의 수채화는 화단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판매로까지 이어지며 전업 화가로 진입하는 본격적인 기회가 열렸다. 이처럼 뉴잉글랜드 여행은 그에게 도시와 다른 환경을 접하여 영감을 얻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뉴잉글랜드 지역의 매력에 빠진 호퍼 부부는 1930년 6월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트루로에 방문하여, 여름휴가를 보냈다. 주민이 500명 남짓한 작은 마을로 번잡한 뉴욕에서 벗어나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완벽하게 고요한 장소였다. 1934년 트루로에 스튜디오 겸 집을 마련한 부부는 매년 여름과 초가을을 케이프코드에서 보내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한다.

1930년대 말 이후 호퍼는 작업에 기억과 상상력이 결합된 이미지를 불어넣기 시작한다. 이 시기 작품에는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호퍼의 자전적 경험이 내면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현실과 환상, 자연과 인공물의 대비를 통해 나날이 원숙해진다.

에드워드 호퍼와 조세핀 호퍼는 1924년 부부가 된 둘은 성격 차로 다툼이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문학, 영화, 연극, 프랑스에 대한 애정 등의 취향을 공유하고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으로 여행을 떠나 함께 야외 작업을 즐겼다.

무엇보다 조세핀은 호퍼의 훌륭한 조력자였다. 과묵한 남편과 달리 활달한 성격으로 예술 딜러, 컬렉터, 큐레이터 및 기자들과 교류하며 작품을 홍보하는 역할을 한 그녀는 호퍼의 오랜 뮤즈이기도 했다. 그녀는 1915년 극단 워싱턴 스퀘어 플레이어스(Washington Square Players)에서 활동한 경력을 살려 다양한 포즈를 남편에게 제안하였으며, 그 흔적은 작가의 수많은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세핀은 그의 전시 이력, 작품 판매 등 상세한 정보가 적힌 장부 관리를 30년 이상 지속하는 등 매니저의 역할도 수행했으며, 남편의 사망 이후 거의 2,500여 점에 달하는 호퍼의 작품과 자료 일체를 휘트니미술관에 기증했다. 말수가 적은 편이던 호퍼가 언급하지 않았던 작품의 세부 사항들을 조세핀이 세세하게 기록한 덕분에 장부는 그의 작품 생애에 관한 핵심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최은주 관장은 “2023년 새봄을 맞아 서울시립미술관이 준비한 이번 전시가 에드워드 호퍼라 하면 떠오르는 현대인의 고독을 그린 작품뿐 아니라 호퍼가 평생 쏟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노력, 그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본 전시는 유료이며 관객의 안전과 쾌적한 관람을 위해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