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극에서는 인물이 아닌 시공간이 등장했다 퇴장하고, 한 배우가 다역을 연기하여 정체성을 축적하는 등 새로운 작법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연극 장르의 형식에 대한 도전이다. 3월 4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학로대극장에서 극단 그린피그가 공연하는 신작 <엑스트라 연대기>(작 전성현 연출 윤한솔) 이야기이다.

"엑스트라 연대기" 포스터 극단 그린피그
"엑스트라 연대기" 포스터 극단 그린피그

 

작품은 극작 단계부터 현실 세계를 신에 의해 연출된 무대에 빗대어 표현한 명제 ‘Theatrum Mundi(테아트럼 문디, 세상은 극장이다)’를 바탕으로 한다.

무대는 시공간이 등장했다 퇴장하고, 한 배우가 다역을 연기하여 정체성을 축적하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초점을 작품 바깥으로 확장하기 위한 희곡의 역설적 시도이다.

윤한솔 연출은 “이 작품은 연극 장르의 형식에 대한 도전이다. 엑스트라를 무대에 올렸더니 주인공처럼 보인다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이들이 엑스트라로 온전히 남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희곡이 탐구하는 메시지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전성현 작가는 “주어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플롯을 거부하고 “술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극작의 개념을 탐구한다. 특정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일련의 사건을 나열하여 동시대적 사유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연극적 실험은 2020년 발표작 <동시대인>에서 신작 <엑스트라 연대기>로 이어진다.

<동시대인>이 여러 공간을 평면적으로 펼쳐 동시대성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했다. 이번 <엑스트라 연대기>는 ‘점거’를 키워드로 구성한 추상적인 공간에서 장면을 다층적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범시대적인 연대를 구체화한다. 1930년 나무 전주 꼭대기를 점거한 독립군의 외침을 시작으로 탄약고를 점거한 병장, 고해실을 점거한 신자, 공장 지붕에 모인 노동자들 등 100여 년의 시간과 400km의 공간적 배경 속에서 반복되는 점거 투쟁을 다룬다. 이렇게 <엑스트라 연대기>는 하나의 주인공이나 서사가 아닌 점거 공간을 둘러싼 무명 인물들의 짧은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극단 그린피그는 ‘불온한 상상력’을 토대로 동시대 관객을 향해 끝없는 의심과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이번 신작은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노동풍경1:실업>, <철수연대기> 등 연극을 통해 노동, 환경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다뤄 온 이들이 그리는 지극히 평범한 연대기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되었다.

출연 배우는 강마로, 김수웅, 김용희, 김원태, 박기원, 박수빈, 박유진, 이동영, 이승훈, 이지원, 정양아, 정연종, 최지현.

극단 그린피크는 <엑스트라 연대기>를 3월 12일(일)까지 아르코 대학로대극장에서 공연한다. 공연시간은 화-금요일 오후 7시 30분, 토-일요일 오후 3시(월요일은 공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