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국립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기획, 김명희 김석웅 김종곤 김형주 유해정 유제헌  이재인  진영은 지음 신간 《5·18 다시 쓰기》(오월의봄, 2022)는 부제 「인권의 관점에서 본 5·18 집단트라우마와 사회적 치유」에서 알 수 있듯이 인권의 시각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망한다.

이 책의 제목이 '다시' 쓰기인 이유는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 5·18을 사건사적으로만 접근했던 방식과 다르게 인권의 관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동정과 시혜 나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 광범위한 시민 피해자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5·18을 다시 쓴다.

"5.18 다시 쓰기" 표지 [사진 오월의봄]
"5.18 다시 쓰기" 표지 [사진 오월의봄]

《5·18 다시 쓰기》에서는 5·18이 국가가 자행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자, 동시에 중대한 인권침해에 저항한 시민들의 직접행동임을 명시하고 인권의 관점에서 5·18의 집단트라우마를 분석한다. 기존 5·18 연구는 사건사적 진실이나 저항의 측면에서 논의를 진행했지만, 이 책은 5·18과 함께 살아가야 했던 수많은 사람의 고통의 현재성과 생애사적 진실을 담는다. 이제까지 국가가 규정하고 인정해온 협소한 ‘피해자’ 범주를 벗어나 생애사적 사건으로서 5·18을 다룬다. 이 책에 등장하는 50명의 연구참여자의 삶의 지평에서 5·18이 어떻게 고통과 침묵의 언어로 재생산되고 나아가 이들이 기존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했는지를 추적한다.

이전에는 5·18의 피해자가 사망자·행방불명자·부상자·유가족 등에 국한되었다면 《5·18 다시 쓰기》의 연구자들은 인권법적·의학적 근거를 토대로 '피해자 유형학'을 새로 쓴다.

“무엇보다 5·18 피해의 실상 자체가 직접적·물리적 폭력의 당사자·가족만이 아니라 무차별 살상·죽음을 목격하고 가두방송과 유언비어 등을 청취함으로써 집합적 공포와 무력감·죄책감, 집단적 오명의 상징적·문화적 폭력을 겪었던 목격자와 지역사회 거주자의 범위에 중층적이고 동심원적으로 걸쳐 있다는 점을 직시한다면, 직접적 피해자 중심의 협의의 피해자 담론에서 벗어나 좀 더 광의의 집단적 시민 피해자 범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5·18 집단트라우마와 피해자의 재유형화 작업은 이러한 인권법적·의학적 근거를 참조하여 시작된다.”

새로 쓰인 피해자 유형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직접적 피해자: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피해입은 당사자(부상자, 고문·가혹행위 피해자, 구속자, 성폭력 피해자 등)

②유가족 1세대 및 2세대: 직접 피해자의 가족 및 자녀

③일선대응인: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투입되거나 충격이 큰 외상 사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의료인, 시신 수습자, 구급대원 등

④목격자 : 1)참여적 목격자: 무력시위 등에 적극 참여한 잠재적인 피해생존자

2)우연적 목격자: 적극 동조는 하지 않았으나 우연히 학살과 군대의 만행을 목격한 사람들

3)현장(광주) 거주자: 광주 지역에 거주하며 시위 항쟁을 목격하거나 가두방송을 청취한 사람들

⑤사후노출자: 5·18항쟁 이후 역사적 진실을 대면하며 광주항쟁을 추체험한 사람들

5·18항쟁을 '국가폭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세월호 참사나 최근 일어난 10·29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5·18 직접적 피해자들에게 금전 보상을 중심으로 진행된 제도적 과거청산 시도로 인해 피해자들을 특권화된 집단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시선이 만들어져 강화되었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 기반을 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일어난 10·29 참사에서도 금전적 보상이 '논란'이 되었는데, 다른 사건이지만 허울 좋은 보상을 진행한 결과 같은 반응을 초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18 다시 쓰기》는 국민적인 참사나 폭력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런 허울뿐인 보상 이외에 어떤 관점으로 피해자를 설정해야 하고 어떤 사회적인 치유가 필요한지 잘 짚어준다.

저자들은 또한 트라우마 관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문제를 제기한다. 트라우마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국가적 사태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라는 의학적 진단으로만 결과를 정의한다면 사건 이후에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인권침해로 인해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의 연속성을 설명할 수 없고, 진실의 왜곡/부인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인권에 기반한 트라우마 접근은 5·18을 넘어 여타 중대한 과거사와 사회적 참사에도 적용 가능하다. 일제강점기, 분단체제, 한국전쟁, 군사독재 그리고 민주화 이행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서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국가범죄와 국가폭력이 발생해왔다. 또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참혹한 사회적 참사도 발생했다. 이런 중대한 사건의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에 어떻게 접근하고 이를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5·18 집단트라우마 연구방법론의 모색과 성찰은 국가폭력 트라우마 연구와 치유, 그리고 과거청산의 과학화를 위한 사회과학방법론 논쟁을 본격화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