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화비축기지 T4 및 야외무대 T2에서 창작집단 더 그레잇 커미션이 7월 15일 다원예술 퍼포먼스 <밤의 찬가(L’Heure Bleue)>를 무대에 올렸다.

<밤의 찬가>는 18세기 독일 낭만주의 시인 노발리스가 경험했던 연인의 죽음과 그로 인한 슬픔, 그리고 회복의 메시지가 담긴 산문시 「밤의 찬가」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다원예술 퍼포먼스다. 시인이 연인을 향한 그리움의 목소리를 빌려 당시 종교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유럽 사회의 정서적 회복을 노래했듯, <밤의 찬가>는 팬데믹이 가져다 준 기나긴 밤과 같은 고립의 시간으로부터 일상적 감각이 회복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하였다.

'밤의 찬가'포스터. [이미지 더 그레잇 커미션]
'밤의 찬가'포스터. [이미지 더 그레잇 커미션]

 

공연의 부제 “L'Heure Bleue(개와 늑대의 시간)”는 낮에서 밤으로 가는 ‘사이 시간’으로, 해가 지기 직전부터 어둠에 이르는 시간을 일컫는 표현이다. 어둠 속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는 것처럼, 작품 속에서 밤은 보이지 않는 영원 너머의 시간을 상상하고 감각하며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간으로써 관객에게 다가간다.

<밤의 찬가>을 연출한 전민경 창작집단 더 그레잇 커미션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퍼포먼스극 <밤의 찬가>는 보편적이고 동시에 근원적인 인간 고통의 속성에서 출발, 이후 노발리스의 시 언어를 통해 그가 직접 경험한 회복의 증언에 따라 고통의 목적을 모색했다.

실례로 이번 작업을 준비하며 참고했던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주인공들은 극 속에서 아직 발화되지 않은 타자의 목소리에 일일이 반응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축조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점은 개인의 근원적 고통의 회복을 위해 상대와 함께 공존하며 이를 깨달아가는 일련의 시간이 지닌 잠재적인 힘이다. 그것은 하나의 완결된 사건으로 결과하는 것이 아닌 ‘시 속의 거대한 대화 (bol’shoj dialog)’로서, 움직이고 있는 동적현상으로 무엇을 혹은 어딘가를 지향할 수 있기를 바랐다.”

공연과 전시, 두 형식의 경험을 제공하는 이 작품에서 T4 공간은 빈 무대인 동시에 다른 형식의 예술 장르를 하나의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이 공간’이다. 약 45분간 진행되는 공연은 슬픔에서 회복에 이르는 주제가 6장의 극으로 구성되며, ‘밤’, ‘빛’, ‘새벽’ 세 존재가 대립과 갈등을 거쳐 연합해 가는 과정을 주 골자로 한다. ‘밤’, ‘빛’, ‘새벽’은 각각 인간의 시점인 말(배우)과 신의 시점인 몸(무용수)이 서로 연결되어 교차하며 다층적인 감각을 만들어낸다. 송철호, 이가은, 장찬호 배우가 각각 ‘밤’, ‘빛’, ‘새벽’을 맡아 연기하며 강성룡, 박서란, 고소천 무용수가 세 신의 움직임을 무용으로 선보인다.

관객들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원형 탱크 전시장인 T4에서 야외무대 T2로 이동하여 이어지는 공연을 감상하게 된다. 실내 공연장에서 야외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작품 구성은 공연장 간의 이동이라는 공간 경험의 확장을 통해 상실에서 회복으로 나아가는 심리적 성숙 과정을 체험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번 공연 역시 더 그레잇 커미션이 그간 스튜디오 씨어터 프로젝트를 통해 시도해왔던 감각의 확장과 새로운 극장 경험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7월 15일 첫 공연을 한 <밤의 찬가>는 7월 16일, 17일, 23일, 24일, 8월 5일, 6일, 7일을 마지막 공연으로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며 공연이 진행되지 않는 주중에는 T4공간에서 홍승혜 작가의 조형 작품을 전시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