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미국의 뉴욕에 와 있다. 30대부터 늘 꿈꾸던 미술 유학을 70세가 되어서야 온 것이다. 40일간의 단기 유학이지만 그럴수록 많이 배우고 익혀 돌아가야 한다. 비록 짧다고는 하지만 이역만리, 말 안 되는 남의 나라에서 끼니, 빨래, 교통, 언어 등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

시차도 크고 하루에 7시간 이상은 작업을 해야 하는 강행군의 일정이다. 파김치가 아니라 비몽사몽 중에 움직이는 듯하다.

열흘이 지나니 숙소에서 학교까지 걷고, 기차 타고 지하철로 바꿔 타면서 무사히 등하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뉴욕은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허드슨 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주변을 따라 아름답고 의미 있는 볼 것도 많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뉴욕시의 중심인 맨해튼에 있기에 유서 깊고 웅장한 건물들도 많다. 몇해 전 일지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께서 깨달음의 음악회를 공연한 유명한 라디오시티 건물을 조금 지나면 전 세계 음악인들의 꿈인 카네기홀도 나타난다.

누가 "카네기홀은 어떻게 갑니까?" 라고 길을 물었더니 "연습, 또 연습뿐입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는 음악당이다.

▲ 미국 맨해튼의 9.11테러 희생자 추모공원. <사진=원암 장영주>

그곳에서 7분 정도 걸으면 '맨해튼의 허파'라고 하는 센트럴파크의 녹색 잔디와 울창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휴식과 조깅을 하고 마차, 자전거 투어를 한다.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 두 손을 맞잡고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가 즐비한 회색 빌딩 숲의 도심에서 초록빛은 마치 에메랄드 카펫처럼 빛나고 있다.

미국 시민은 북한의 핵실험과 우리나라를 위시한 동북아시아의 정세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US 오픈 대회와 세력이 다시 커진 특급 허리케인 lrma와 9.11 추모일을 맞아 삼엄한 경비 등, 자신들의 이슈에 집중하고 있다.

벌써 16년이 지난 일이 되어버린 9.11테러는 그러나 아직도 세계인들에게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미국이 처음으로 본토 공격을 받았고 상황이 스포츠 경기처럼 CNN에 의해 고스란히 생방송으로 중계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100층 높이에서 화마를 피해 뛰어내린 수많은 사람을 지켜본 지인과 함께 현장을 방문하였다. 한쪽에는 새롭게 크고 웅장한 건물이 들어서고 한쪽은 추모공원이 조성되어있다. 커다란 웅덩이 같은 구조물로 물들이 쏟아져 내리는 기념건축물이다. 사방에서 하염없이 지하로 쏟아져 들어가는 폭포 같은 물들이 마치 높은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명과 눈물, 지켜보는 사람들의 통곡 소리처럼 느껴진다.

이런 감동 또한 불멸의 걸작이 지닌 예술의 힘이다. 많은 미국시민이 혹은 꽃을 바치고, 혹은 묵념을 하면서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었다.

내가 어렵게 유학을 온 목적 또한 인류의 평화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는 화가로 거듭나기 위함이다. 고개 숙여 간절하게 기도드린다.

"민족통일 ㅡ 인류평화"

어디든 지구별ㅡ내 고향이고, 누구든 지구인ㅡ내 고향사람 아니랴.

원암 장영주, 화가, 국학원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