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국학의 선각자이자 독립운동가 홍암 나철(1863~1916)
독립운동가이자 근대국학의 선각자인 홍암(弘巖) 나철(羅喆·1863~1916)의 조천(朝天)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 
 
대종교총본사는 오는 10일 오후 1시부터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1층 예인홀에서 ‘홍암 나철 대종사 순명 조천 제100주기 추모 학술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나철은 1863년 전남 보성군 출신으로 유학자로 살았다. 1905년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에 대해 “매국노를 죽이면 국정을 바로 잡을 수 있다”라며 이듬해 실행에 옮기려던 우국지사였다. 그는 1909년 대종교를 중광했다. 그는 유학자가 아니라 단군신앙을 통한 국학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활발한 활동으로 30만여 명의 신도가 생긴다. 이에 따라 일제의 탄압은 거세진다. 그는 1916년 8월 15일 구월산 삼성사에서 선도의 수행법인 폐식법(廢息法)으로 조천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날 ‘홍암 나철의 고유신교 전승’을 주제로 열리는 학술회의에서 최윤수 대종교 삼일원장은 ‘나철 대종사의 고유의 도의 계승과 도학’을 발표한다.
 
최 원장은 “단군 시대부터 그 연원을 두고 계승되어온 한국 고유의 도를 나철은 적통으로 계승 받았다”라며 “나라가 망하는 국난의 시대에 나철은 고유의 도를 지키면 언젠가는 다시 살아난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 도를 보존하기 위해서 대종교를 중광했다”라고 말했다.
 
▲ 홍암 나철(앞줄 왼쪽 두 번째)이 구월산 삼성사 가는 길 사리원 사진관에서 시자들과 함께 찍은 것이다. 그는 1916년 8월 15일(음력) 이곳에서 조천했다(사진=대종교 제공)
 
그는 대종교의 도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졌고 세상의 모든 종교의 교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그 도가 하느님의 비호 아래 보존될 것임을 확신했고 그 도를 따라 순교할 때까지 수도하면서 살았으며 후배에게 도통을 승계했다는 것이다.
 
특히 나철은 수도의 성과로 여러 차례의 묵계를 받았고 하느님께 기도하여 비가 내리고 환자를 고치는 이적을 행하였다고 한다. 
 
최 원장은 “그의 순교도 하나의 도의 실천이었으며 장례식을 매우 검소하게 하라고 한 그의 유지도 수도자다운 모습을 보였다”라며 “순교는 일제의 가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하는 최대의 수단이 되었다. 장례식 및 추도식에서 많은 애국지사의 추도가 있었으며 이들을 한 마음으로 규합시키는 역할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삼종사 성지순례단 순례보고에 이어 개회식, 학술회의 발표와 종합토론으로 진행된다. 
 
최 원장 외에 ‘홍암 나철의 대종교 중광과 종교사적 의의’(박광수 교수), ‘홍암 나철과 하느님 신앙’(최경주 교화사), ‘<신리대전>에 나타난 신인합일 가능성’(김정철 연구원), ‘인류는 멸종할 것인가 홍익인간 할 것인가?’(김상일 교수)가 발표된다.
 
홍수철 대종교 총전교는 “우리 겨레에 전승되어온 훌륭한 가르침을 확인하고 대종사의 종교사상이 글로벌 시대에 적합한 사상임을 뛰어넘어 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사상임을 알리고자 한다”라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문의 02-394-89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