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은 성균관 진사 출신이었고, 강직한 선비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관리들의 악행과 행패에 대하여 분하게 여겼고, 분을 삭힐 수 없어서 술로 날을 보냈다. 무절제한 생활의 결과 병을 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리에 눕고 말았다. 

안중근의 아버지가 안악읍安岳邑에 살고 있는 안중근의 친구인 이창순李敞淳의 집에 와서 신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머무르고 있었다. 안태훈은 이창순의 아버지와 친구 사이였고, 안중근은 이창순과 친구 사이였다. 
 
안중근은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안악에 있는 친구의 집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안중근은 그날 이창순의 집에 머물렀다가 집으로 가기로 하였다. 
 
안중근의 아버지가 급히 집으로 돌아간 데엔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 안악읍에 청국의 한의원 서가가 개업의로 일하고 있었다. 용한 의원으로 소문이 난 자였다. 안태훈은 먼저 서가의 한의원에 찾아가 진찰을 받았다. 그날 그들은 술상을 벌였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안태훈이 든 마음의 병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선이 일본과 청국의 눈치나 살피며 살아가고 있으니, 이 나라 백성으로서 어찌 마음의 병이 생기지 않겠소.”
 
안태훈이 탄식하며 말했다. 서가는 서가대로 청국이 날로 일본 앞에서 몰락해 가는 것을 속상해하였다. 
 
“조선이 청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말인가?”
 
서가가 물었다.
 
“그렇소.”
 
안태훈이 대답했다. 서가는 돌연히 성을 내며 안태훈의 가슴과 배를 걷어찼다. 약소국 백성의 말을 그는 그냥 들어 넘기지 않았다. 술상은 엎어지고 방 안의 공기가 험악해졌다, 하인들이 서가를 두들겨 패려고 달려들었다. 
 
“진정하라.”
 
안태훈이 하인들을 달랬다. 
 
“오늘 여기에 온 것은 나의 병을 치료하려고 온 것인데, 만일 의사를 때린다면 남의 웃음거리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인들은 수그러들었다. 안중근은 이창순의 말을 듣자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 
 
“내 아버지께서는 대인의 마음으로 참으셨지만 나는 자식이 된 도리로서 어찌 참겠는가. 잘잘못을 알아본 후에 사법에 호소하여 그같이 행패하는 버릇을 고쳐놓아야 하겠다.”
 
안중근의 말에 이창순이 동의했다. 그들은 이창순의 집을 나와서 서가가 있는 한의원으로 갔다. 그는 자기가 찾아온 연유를 말하고 나서, 
 
“그대는 안태훈이라는 사람을 행패한 적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청국인은 돌연히 벌떡 일어나 칼을 빼 들고 내리쳤다. 안중근은 급히 일어나 왼손으로 서가가 내리치는 손을 막고,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있는 단총을 찾아 쥐고, 서가의 가슴팍에 대고 쏘려는 것처럼 위협했다.
 
“함부로 칼을 휘두르고 죽고 싶은가?”
 
안중근의 눈에서 불이 튀고 있었다. 서가는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었다. 이창순도 반사적으로 몸에서 단총을 뽑아들고 천정을 향하여 2방을 쏘았다. 서가는 총소리에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이창순이 느닷없이 총을 쏘는 바람에 안중근도 놀랐다. 이창순이 서가에게 달려들어 칼을 빼앗아 분질러 한쪽을 안중근에게 주고 다른 한쪽은 자기가 가졌다. 두 사람은 동시에 칼 조각을 서가의 발밑에 내동댕이쳤다. 서가는 놀래어 바닥에 거꾸러졌다. 
 
두 사람은 유유히 서가의 한의원을 나섰다. 그들은 그길로 안악읍으로 갔다. 읍의 법관 앞에서 서가를 처벌해 달라고 신고했다. 법관은 의사가 청국 사람이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직접 서가를 처벌해야 하겠네.”
 
안중근이 말했다. 그들은 다시 서가에게로 갔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만류하여 그만두고 말았다. 안중근은 안악읍을 떠났다. 그로부터 5, 6일 후에 이창순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나는 바깥방에서 자고 있었소. 아버지의 고함소리, 여러 사람의 떠드는 소리, 사람을 두들겨 패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마당으로 나가 보니, 웬 화적떼 같은 놈들이 나의 부친을 앞세워 집을 나서고 있었소. 나는 웬 놈이냐고 소리 지르며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하여 쫓아갔소. 그러자 화적떼가 나를 향하여 마구 총질을 해대는 것이었소. 나는 물러서지 않고 응사하며 그들을 추격했소. 밤이라 어두워서 그런지 총은 맞지 않았소. 나는 놈들에게 바짝 다가가서 공격했소. 놈들이 나의 기세에 눌리어 부친을 버리고 도망쳤소. 나는 부친을 구출한 후에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소. 내가 화적떼로 보았던 자들은 청국 순사 2명과 한국 순검 2명이었소. 서가가 전날 청국 영사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해서 안중근을 잡아가려고 출동했으나 안중근이 없어서 대신으로 나의 부친을 잡아가려 했던 것이요.”
 
안중근은 편지를 읽자 즉시 길을 떠나 청국 영사관이 있는 진남포로 갔다. 영사에게 확인해 보니, 서가로부터 안중근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를 받았다고 하였다. 청국 영사는 서가의 신고를 받자, 한성에 있는 공사에게 이 사건을 보고했다. 청국 공사가 한국 외부에 통보하여 조치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건이 청국 영사의 손을 떠났으므로 청국 공사와 한국 외부 사이에 해결해야 할 일이 되어 있었다. 안중근은 한성으로 가서, 자기의 부친이 서가에게 행패당한 것을 신고하고 이번 일을 처리해 달라고 청원하였다. 외부에서는 진남포 재판소에서 판결을 받도록 조치해 주었다. 안중근은 진남포 재판소에서 소환장을 받고 출두하였다. 서가도 출두하였다. 쌍방이 서로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재판은 신중하게 진행되었다. 더구나 대국백성과 소국백성의 재판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서가의 행패와 무고가 입증되어 안중근이 무죄한 것으로 판결이 났다. 후에 서가를 아는 어느 청국 사람의 주선으로 안중근은 서가와 만났다. 그들은 서로 사과하고 껄끄러운 관계를 풀었다. 서가와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에 안중근은 홍 신부와 크게 다툰 적이 있었다. 홍 신부가 성격이 과격하고 신도들을 억압으로 대함으로 안중근이 주동이 되어 따지기로 한 것이다. 신자들이 모였다. 
 
“만약에 홍 신부님의 태도를 시정해 주지 않는다면 한성에 가서 민 주교님에게 청원하고, 만일 민 주교님이 들어주지 않으면 로마부 교황님에게 가서 품해서라도 기어이 이러한 폐습은 막도록 해야 합니다.”
 
안중근은 홍 신부가 신도들에게 잘못하는 점을 지적하였다. 신자들이 안중근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였다. 홍 신부가 교인들이 뭉쳐서 자기에게 항의하려 한다는 말을 듣자, 흥분하여 안중근을 불러 세웠다. 
 
“그대가 신부를 업신여기는구나.”
“우리는 오직 신부님이 신자를 과격하게 다루지 않도록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존심이 상하여 소리 지르며 안중근을 무수히 치고 때렸다. 안중근은 분하고 치욕스러웠으나 그가 신부이므로 마주 대하지 않고 참았다. 안중근을 싫건 때린 홍 신부는 화가 가라앉은 다음에 안중근 앞에 나타났다. 
 
“잠시 성을 낸 것은 육정肉情으로 한 것이니 서로 용서하는 것이 어떤가?”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리하여 서로 감정을 풀었다. 나는 거기까지 읽었다. 읽는 동안 기분이 초를 친 듯 엉망이었다. 내가 책상 위에 놓인 인형을 바라보니 인형도 나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인형을 주물러 기분을 풀어 주었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