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영화 ‘명량’에 이어 올해는 대하사극 ‘징비록’이 애국심에 불을 지핀다. 400년 전 조일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학습효과가 아닐까 싶다. 광복 70년을 앞두고 있지만 마냥 태극기를 흔들 수 없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신밀월, 중국의 부상, 북한의 도발 등 주변국과의 관계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전쟁과 식민의 역사가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난 26일 방송된 ‘징비록’ 48화는 수군을 이끈 원균(이일재)이 칠천량에서 대패했다. 원균은 부하들의 만류에도 선조의 명을 어길 수가 없었다. 기세를 얻은 일본군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까지 파죽지세로 북상한다. 이들은 조선 백성들의 코를 참혹하게 전리품으로 베어간다. 조선군과 합세한 명나라 장수는 남원성 전투에서 성이 함락되기 전에 탈출한다. 위기에 처한 선조는 장수와 백성을 애도하고 스스로 책임진다는 생각이 없다. 그나마 백의종군으로 파직한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다. 영화 ‘명량’에서도 나왔던 12척 배로 왜(일본)군과 전쟁을 준비한다. 수군이 괴멸당했으니 육군으로 편입하라는 선조의 명을 또 어기는 셈이다. 이후 전쟁에서 이겼으니, 어명을 받들고 죽은 원균과 달리 이순신이 나라를 구하는 것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순신은 수군이 괴멸당했다는 소식으로 절망하는 부하들에게  “이놈들, 나라를 잃기라도 했느냐. 어서 일어나라”라며 “내가 있고 너희들이 있는데 어떻게 우리 수군이 괴멸됐다고 하느냐? 싸울 의지가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우리 수군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이 부하들에게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명의 적도 떨게 할 수 있다”라는 명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무책임한 선조와 나라를 구한 이순신 그리고 전쟁의 교훈을 후세에 남기고자 했던 류성룡. 이들은 과거의 영웅이다.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에서 최선의 선택으로 역사의 평가를 받고 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나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백성이다. 이들의 삶은 지도층의 리더십에 따라서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코를 잃은 장애인이 됐다. 일본에 노예로 끌려가서 포르투갈 등에 당시 돈 2원을 받고 팔렸다. 이러한 비극은 개인의 운세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후 병자호란으로 반복됐다.
 
역사는 이들을 기록하지 않았다. 무명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성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이 됐다. 관군과 연합해서 왜(일본)군을 무찔렀으니, 이러한 사례는 세계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노예로 사느니 자유민으로 살다가 죽겠다”는 어느 의병의 말이 이들의 정신을 대변한다.(F.A.맥켄지, 『한국의 독립운동(Korea's Fight for Freedom)』 1920)
 
최근 영화 ‘암살’도 조국을 구하기 위한 무명 독립군을 다뤘다. 이들은 이봉창도 윤봉길도 아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나라를 위해 몸을 던졌을 뿐이다. 특히 암살단 리더로 활약하는 안옥윤(전지현)은 여성독립운동가라는 점이 주목된다. 지난 5월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여성투사 안경신 의사를 떠올리게 한다.
 
안 의사는 평양 삼일운동에 참여했고 임시정부 군자금을 전달하는 교통부원으로 활동했다. 이어 대한광복군 제2대에 소속되어 폭탄을 직접 소지하고 평양으로 잠입했다. 당시 34살의 안 의사는 단독으로 감행한 평남도청(8월 3일)폭탄 투척에 이어 다른 동지들과 신의주 철도호텔(8월 5일), 의천경찰서(9월 1일)에 폭탄을 던졌다. 1932년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보다 12년 앞선 일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접하면 제2, 제3의 안경신이 당시에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가 있다. 유관순 열사만 기억할 것이 아니다. 의병과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이 더 필요한 이유다. 또 이름 없는 독립군의 사진에서 ‘암살’의 이야기를 구상했다는 최동훈 감독과 같은 창작자가 중요하다. 
 
국학원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는 회원의 성금으로 무명 독립군 용사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전국 17개 시도에 모두 세워지면 어떨까? 아니면 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 등이 매달 선정하는 독립운동가로 소개해도 좋을 것이다. 광복회 자료에 따르면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300만 명에 달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중 전사하거나 옥사·병사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는 15만 명이다. 이들을 기리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그래야 100년 뒤 후손들이 우리를 평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