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권은 없었다. 회사의 식당에서 나오는 대로 먹었다. 어느 날은 돼지고기가 나오고 어느 날은 닭고기가 나왔다. 전국의 많은 학생도 마찬가지다. 급식소에서 차려준 대로 먹어야 한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지 않을까? 

지난 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우리가 먹는 돼지와 닭이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현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전국을 뒤흔들었던 구제역과 AI로 도살처분된 돼지와 닭 등이 작품이 만들어진 계기다. 살처분 작업에 동원됐던 공무원이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를 진술한 장면도 나온다. 이들의 상처는 미술치료로 회복되는 데 그림들이 충격적이다. 숨을 쉬고 소리를 지르는 생명체를 제 손으로 죽여야 하는 일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이 작품이 주목되는 것은 단순히 공장식 사육의 현장을 고발하는 데 있지 않는 점이다. 대안으로 제시한 산골농장이 있다. 마치 야생에서 키우는 토종닭처럼, 돼지 또한 자연식으로 기른다. 하지만 이러한 농장을 찾기는 어렵다. 수많은 패스트푸드와 음식점의 고기를 공급하려면 공장식 돈사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대안으로 ‘밥상 실험’이다. 주연으로 출연한 황윤 감독은 육식의 메커니즘을 알고 나서 채식을 선언한다. 이후 가족들과 함께 먹는 밥상은 채식으로 차린다.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과의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남편과의 대화이다. 해법은 인간의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기자 또한 공감하는 대목이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이 이 영화를 추천했다고 한다. 『우리는 왜 개를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의 저자 멜라니 조이 미국 보스턴 매사추세츠대학 교수도 추천했다. 그런데 동물보호와 환경운동의 이론은 대부분 서양에서 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서양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부터 조선은 생명존중의 나라였다는 점이다. 

농부는 콩을 심을 때 세 개씩 심는다. 하나는 새의 몫이고 다른 하나는 땅속의 벌레 몫이고 나머지 하나는 사람이 먹기 위해서라는 것. 수챗구멍에 허드렛물을 버릴 때 뜨거운 물은 식혀서 버렸다. 그곳에 사는 미생물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다. 이처럼 우리의 조상은 자연과 공존하며 살았다. 이러한 삶은 한민족의 가르침을 담은 『천부경』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있다’는 천지인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만물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단군조선의 홍익인간 철학으로 나왔다. 그러니 서양의 가르침에만 귀 기울일 것이 아니라 국학(國學)에서 생명존중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은 『붓그림 명상』에서 “공기를 통해 우리의 코로 하늘이 들어오고 음식을 통해 우리의 입으로 땅이 들어온다. 우리는 하늘과 땅에 뿌리를 박고 피어난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현대 도시인의 삶으로 비유하면 ‘미세먼지를 코로 마시고, 라면·햄버거와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면서 생명력이 사라져가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2년 전까지 회사의 식당에서 주는 대로 먹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하면서 살고 있다. 소식하고 운동하라는 멘탈헬스 강연회가 계기였다. 이후 의사들이 암에 걸리고 음식으로 회복한 책들을 읽었다. 그들의 식탁은 가공식품이 아니라 자연식으로 차려졌다. 바쁜 현대인에게 그것이 어디 쉬운가? 라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자연식으로 차려진 식당도 찾아보면 있었다. 

앞으로 동호회를 만들고 가족의 실천운동으로 확산한다면 자연식 가정과 식당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이들에게 재료를 공급하는 산골 농장도 번창할 것이다. 그러면 생명존중의 사회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서양의 동물보호론자들이 오히려 한국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자연과 공존하면 살았던 홍익DNA는 외국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다시 꺼내서 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럴 때 미래세대는 지금과 다른 공기를 마시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서 생명력이 아름다운 꽃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