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강연에 무릎을 친 적이 있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얼마 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목을 매고 자살한 것. 이유는 무엇일까? 아들은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별을 달지 못하고 전역한 아버지의 강권에 사관학교를 택했다. 이 사례를 소개한 명사는 이렇게 말했다. 입시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부모가 성공이라는 가치를 자녀의 행복보다 먼저라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그렇지 않은 한 이러한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장래혁 한국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세계뇌주간을 기념해 열린 뇌교육인성코칭세미나에서 “우리 아이들이 만날 미래는 부모가 살았던 과거와는 다르다. 2015년을 살아가는 학부모는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10년 뒤에는 직업의 3분의 1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청소년의 진로 선택에는 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앞으로의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교사나 공무원을 꼽았다. 정년이 보장되고 부모님 추천이 그 이유였다. 조 벽 동국대학교 석좌교수가 “교육은 물론 꿈마저 주입시키는 한국의 현실이 매우 슬프다”라는 말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이 고1자유학년제를 발표했다. 시험이 없고 다양한 체험으로 진로를 탐색하는 '오디세이'학교라는 것. 이 방식은 덴마크에서 운영하는 '에프테르스콜레(인생설계학교)'를 모델로 삼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주입식 교육으로 학습에 흥미를 잃은 학생들이 꿈을 찾을 기회가 될 것”이라며 “올해 3억 원을 들여 시행한 뒤 반응이 좋으면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제도를 차츰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 제도는 앞서 시행 중인 정부의 중학교 자유학기제와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 다만 중학교 자유학기제는 전체 학생이 학교 주도로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반면에 고교 자유학년제는 대안학교에서 소수로 진행된다. 

지난해 개교한 벤자민인성영재학교(교장 김나옥)가 ‘인생을 바꾸는 꿈의 1년(Dream Year)'이라는 고교완전자유학기제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성과는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그런데 교육제도에 반해 잘 바뀌지 않는 것이 기성세대의 가치관이다. 자유학기제에 대해 한 전직 교장이 “인생은 경쟁의 연속”이라며 “학교에서 시험을 없앤다면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한 이후 정말로 행복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12년 초·중·고 생활에서 겨우 반년 시험을 치르지 않은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교 졸업 뒤 치르는 국가적 성취도 평가 외에는 그 어떤 국가적 시험도 치르지 않는 핀란드는 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연속 1위를 하는지 묻고 싶다.

우리나라 교육계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자유학기제나 자유학년제와 같은 교육 프로젝트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아이들에게 꿈을 강요하는 학부모의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도 필요하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한국벤처협회 명예회장)는 “공무원과 교사가 국가의 부(富)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라며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을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모두 공무원이나 교사를 하면) 소는 누가 키우느냐”라고 질문했다. 웃음으로 답할 수 없다. 지금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