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앞두고 학창시절에 만난 선생님 중에 떠오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찾아가고 싶은 선생님도 있고 잊고 싶은 선생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 후배를 만났는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선생님을 이야기해서 안타까웠다. 그는 명문대학교에 진학했지만, 가슴에 남는 스승을 얻지는 못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많은 선생님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아서”로 시작하는 노래도 불렀다. 하지만 졸업하고 찾아가고 싶은 선생님이 없다면 그것은 학생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의 비극이 아닐 수가 없다. 졸업생의 명문대학교 진학으로 학교 순위를 매기기 전에 존경받는 교사는 학교에 몇 퍼센트가 있는가? 이런 자문도 필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은사(恩師)가 빠지지 않는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새터)』를 읽어보면 신종생 교사 이야기가 나온다. 사범학교를 나와 부임한 지 2년이 채 안 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었다. 그는 자취방에서 방과 후에 공부도 가르쳐주고 밥도 차려주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노무현은 신 교사의 강권으로 전교 회장에 나가 어린이회장에 뽑혔다. 이후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겪은 열등감을 극복하게 도와준 은사”라며 “이후 남 앞에 나서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세계적인 뇌교육 창시자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은 어린 시절 집중력 장애(ADHD)를 겪었다. 초등학생 이승헌은 시계를 보는 시험을 치르고 생애 처음으로 노력상을 받았다. 임헌장 선생님이 준 것이다. 이승헌은 그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가시던 날에 4km 밖까지 따라가서 바짓가랑이를 잡았다고 한다. 이후 40년이 흘러서 임헌장 선생님은 이 총장의 강연회에 찾아와 손을 꼭 잡아주셨다. 이 총장은 “어린 제자에게 선생님이 주신 노력상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 씨앗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기자 또한 찾아가고 싶은 은사들이 있다.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걸기도 한다. “선생님, 건강하시죠?”라고 안부를 묻는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그중에는 중학교 1학년 담임 장승미 선생님이 있다. 29살의 젊은 선생님은 학생들을 작은 규모로 묶는 모임인 ‘모둠’을 만들었는데, 그때 대표로 모둠일기를 썼다. 선생님은 정성껏 댓글을 달아주셨다. 이후 글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고 선생님 추천으로 백일장에도 나갔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는데 “꼬마작가 선생, 늘 밝고 맑음 잃지 마시게”라는 서명이 있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선생님은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스승의 은혜 가사에는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한 스승은 지금도 많을 것이다. 그들이 명예퇴직하지 않고 정년까지 마음껏 가르침을 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의 키팅 선생님처럼 학교에서 쫓겨나도 제자의 가슴에 영원히 남는 스승이 많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