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직업체험의 일환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는 사단법인 우리역사바로알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우리역사바로알기가 4월 4일(토) 실시한 국립서울현충원 현장답사에 동행했다. 

예전에 나는 현충원에 몇번 와본 적이 있다. 그때도  저곳에서  참배하여 묵념을 했다.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다가 영원히 잠든 호국 영령들이 이곳에 이름만 남겼다. 가슴이 아릿하였다. 이 공간이 그분들에 대한 예우로 맞지 않다. 숭고하지만 너무 단조롭고 삭막한 현대적인 공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라면 이곳을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에 다시 방문하여 해설을 들으니 나를 둘러싼 이 공간이 다르게 보였다. 단조롭고 실용적이던 공간이 하나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다가왔다. 새삼스럽지만 이 말이 떠올랐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는 현충탑 제단의 향로이다.

▲ 현충탑 제단의 향로는 6·25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인식표를 녹여 만들었다.

예전엔 향로가 그냥 향을 피우는 향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보니 굉장히 다르게 다가왔다. 향로 무게가 300kg이라고 한다.  '어, 보기보다 무겁네' 라고 생각했다.  항아리가 바닥부터 중간 이상까지 금속으로 꽉 차 있다고 했다. 어떤 금속? 6·25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인식표를 녹인 것이다. 300kg이라면 얼마나 많은 인식표가 들어 갔을까. 대충 짐작하니 가슴이 무거워졌다.

▲ 위패 봉안관에 있는 영현 승천상.


영현승천상 앞으로 갔다. 당시 유명한 조각가가 2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상이라고 한다.  영현은 죽은 자의 영혼을 고귀하게 이르는 말이다. 승천상 앞에서 해설을 들었다. 이 장소에 관한 하나하나의 해설 내용보다도 수많은 분의 희생과 아픔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강사의 말에 공감했다.
위패봉안관에 있는 수많은 이름. 전사자의 60%가 땅에 묻히지 못하고 이름 석자만 남아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19~20세의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후손이 없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가끔 오실 때가 있는데 그때 저 이름 석자를 부여잡고 오열하는 분이 많다고 한다.
자녀가 장성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팽이 치고 놀고, 뻥튀기 먹고, 말썽 부리고… 60여년이 지나도 목에 난 점 하나까지 기억하신다는 부모님. 전쟁은 민족뿐만 아닌 인류의 비극이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 광복정.


임시정부 독립투사들의 묘소를 둘러보기 위해 복정이라는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개나리가 샛노랗게 핀 언덕 아래로 수많은 묘소가 가지런하다.
오늘 현장 해설을 한 강사의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세요. 너희 이렇게 많은 묘비 본 적 있니?" 사실 내가 어린 시절 현충원에 처음 왔을 때도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묘를 본 적이 있었나.

▲순국 선열 이회영 선생 묘.


우리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치신 수많은 독립 투사들 중 가장 뇌리에 깊게 각인된 우당 이회영 선생의 묘. 어느 날 교과서 한 쪽에 나온 이름을 보고 그후 역사 강연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 이야기를 듣고, 그분을 가장 존경하게 되었다. 직접 그분의 묘소를 보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회가 들었다. 다음엔 꽃을 가지고 오리라. 

▲ 무후선열제단.


무후선열제단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하였으나 유해도 찾지 못하고 후손도 없는 순국선열 133분을 모신 곳이다. '유관순', '홍범도' 등 익숙한 이름이 여럿 보였다. 아쉬우면서도 이렇게 인사를 드릴 수 있어 어느 정도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언젠가 반드시 그분들의 유해를 찾을 수 있기를.

▲ 국립서울현충원에 피어 있는 수양 벗꽃.


 4월의 현충원은 봄꽃이 아름답다. 희고 탐스럽게 핀 목련,  폭포수처럼 드리운 수양 벚꽃. 한 폭의 그림 같다. 나는 수양벚꽃을 이날 처음 봤다. 수양벚꽃을 보고 나가서 흔히 피어 있는 왕벚꽃을 보니 수양벚꽃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축 늘어진 가지가 꿈 속의 나무처럼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이다.

▲ 무후선열 제단 앞에 하얀 목련이 활짝 피었다.


 점심 후에는 유품전시실로 가서  2층 영상실에서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제목은 미카 129. 이 작품은 포털 네이버에서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일단 다른 곳에서 틀어주는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품질이 좋아 놀랐고, 내용도 정말 전쟁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한다. 윌리엄 딘 미군을 구출하기 위해 당시 북한군이 점령한 대전으로 특공대 30명이 가는 내용이다. 우연히 본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깊은 감동과 재미, 마음의 여운을 남겨줄 줄 몰랐다. 나뿐만 아니라 어린 친구들에게도 많은 느낌을 안겨 주는 듯했다. 

▲ 애니메이션 미카 129.

집에 가면서 미술을 하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앞으로 역사 관련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떻겠냐고. 그 친구는 장래 희망이 웹툰 쪽이다.  열심히 설득하여 역사 애니메이션을 해보도록 할 생각이다. 매체를 통해 조명한 역사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느꼈기 때문이다. 

▲ (사)우리역사바로알기 현장답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강사가 상세하게 해설하고 안내한다.

해설이 있는 답사. (사)우리역사바로알기의 현장답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사가 해설하고 안내한다. 예전에 학교 단위로 현충원에 갔을 때는 해설을 안 들어서  잘 몰랐다. 해설을 듣고 나니 현충원이라는 공간이 더 생생하게 보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국립서울현충원 현장답사를 함께한 참가자들.

나와 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현충원에 갔던 많은 아이들이 해설을 들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많다.  내가 학교 선생님이 된다면 현충원을 열심히 공부해서 학생들에게 잘 설명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