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획서 작성이 끝나자 산신각으로 감응신령을 찾아갔다. 감응신령의 윤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감응신령은 기획서 제출을 윤허하였다. 

“만약에 시에서 불가 결정이 내리면 어떻게 하지요?” 
 
나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나는 영계 터미널로부터 일을 신속하게 진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니 앞으로 인간들의 의사결정 따위는 무시할 생각이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잘 보아 두어라.”
 
감응신령이 백호에게 주문을 걸자 백호가 산신각 바닥에 넘어져 기절하였다. 감응신령이 백호의 뒷덜미에 난 털을 헤집고 칩을 하나 꺼내더니 새로운 칩으로 교체해 넣었다. 
 
“앞으로 백호가 홍익을 위반하는 자들을 홍익위반사범으로 몰아 대량으로 죽이게 될 것이다. 때로는 그대를 등에 태우고 UFO처럼 날아다니기도 할 것이다. 너에게 충성심을 보일 것이다.”
 
감응신령이 내게도 주문을 걸어 나는 산신각 바닥에 넘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기절을 했는지 그 다음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깨어났을 때, 감응신령이 내게도 칩을 1개 심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의 허락 없이 내가 심은 칩을 꺼낸다면 그 순간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감응신령이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꼭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
 
나는 불평하였다.
 
“인간의 몸을 가진 자에게 영계인에 준한 활동을 시키기 위하여 개발한 최첨단의 방법이다. 인간은 이러한 칩을 개발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대는 이 나라의 국민과 다른 인종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져야 하고, 이를 영광으로 알고 감수해야 해. 아무에게나 칩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니까.”
“저 말고 다른 인간에게도 칩을 심어주었습니까?”
“있지. 영계 터미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자가 있다면 그의 몸에 칩이 심어진 자로 보면 될 것이다.”
 
나는 문득 한 베어 대표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도 칩이 심어
진 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백호와 함께 행동하라. 임무가 종료될 때까지 백호를 그대에게 배속시킬 것이다.” 
 
나는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제가 백호와 함께 다니면 심장이 오그라져 죽는 사람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백호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보기에 백호가 암소만큼 컸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백호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주문을 하나 알려 주지. 이 주문을 아무 때나 쓰면 오히려 백호에게 잡혀 먹힐 수 있으니 조심해.”
 
감응신령은 내게 주문을 알려주었다. 백호 사바! 라는 주문이었다. 이 주문을 외우면 내가 원하는 크기로 백호가 줄어들었고, 또 한 번 주문을 외우면 원래대로 복구가 되었다. 사실 이 주문은 실제의 백호가 줄어드는 경우는 거의 없고 백호를 보는 인간이 착시錯視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크기가 새끼고양이 크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야 힘든 일이 아니야.”  
 
산신이 새끼 고양이만큼 줄어들라고 명령하자 백호가 새끼고양이 만큼 작아졌다. 나는 사납게 생긴 새끼고양이형 백호를 주머니에 넣기 위하여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시장가방을 하나 사야 하였다. 나는 시장에 가서 천으로 만든 가방을 하나 샀다. 드디어 백호를 가방에 넣고 산신각을 나왔다. 나는 곧 시청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갑자기 청동팔주령이 감응하기 시작하였다. 비류왕 쿼크의 감응으로 생각되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가?”
 
비류왕 쿼크가 물었다.
 
“어떻게 도우시려고요?”
“비!”
 
비를 내리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 쿼크의 능력 밖의 일일 것인데, 선뜻 돕겠다고 하니 자연을 지배하는 능력이 생겨난 것으로 생각되었다. 
 
“좋습니다. 시청으로 오세요.”
 
내가 시청에 도착했을 때 비류왕 쿼크가 득달같이 나타났다. 그러나 비류왕 쿼크는 미세하게 반짝이는 한 개의 빛을 뿐이었다.
 
“비를 오게 할 자신이 있습니까?”
 
나는 믿어지지 않아 물었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영계 터미널에서 청룡과 사해용왕을 출동시켜 줄 거야.”
 
그렇다면 믿어도 좋으리라 생각되었다.
 
“아우라를 작동시켜 주게.”
 
나는 아우라를 3번 외쳤다. 그러자 아우라가 보통 사람들의 눈에 띌 만큼 강렬하게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쿼크가 그대의 아우라 안에 들어가 있을 것이요.”
 
비류왕의 쿼크가 내 아우라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민원실로 들어갑시다.”
 
나는 비류왕이 명령하는 대로 첫발을 민원실을 향하여 내디뎠다. 백호가 천으로 만든 가방 속에서 고양이처럼 가르릉 소리를 내었다. 민원실로 들어서자 백호가 가방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데.”
 
백호가 나를 보고 말하였다.
 
“잡아먹고 싶으냐?”
“응”
“산신이 허락하지 않으실 텐데.” 
“산신은 왜 내게 고기 한 점을 주지 않고 굶기기만 하지?”
“산신이 잡숫고 남는 것을 먹으면 되지 않아?”
 
나는 산신각에 갈 때마다 돼지고기를 사서 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민원창구에 앉아 있는 여직원에게 ‘부천시 역사문화 업데이트 계획’ 공문을 내어 밀었다. 여직원은 공문을 찬찬히 읽어 보더니,
 
“이 공문을 접수할 데가 마땅치 않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런 공문을 접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접수해야 합니다. 접수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여자 공무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주머니에서 가랑가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백호가 화가 났다는 의사표시였다. 
 
“백호! 조용히 해!”
 
내가 경고를 주었다. 
 
“제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여자 공무원이 내게 물었다.
 
“아니요. 내가 고양이에게 하는 말이요.”
“고양이는 반입금지입니다.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요.”
“곧 나갈 테니 나를 문화과로 안내해 주시오.”
 
나는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백호가 곧 뛰어 나올 기세였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내가 소리를 지르는 것과 동시에 백호가 뛰어나와 여자 공무원 사이에 앉았다.
 
“놀라지 마시오. 이 넓은 사무실에서 이 고양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당신과 나 두 사람 뿐이요.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지 못합니다. 이제부터 고양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시오.” 
 
백호가 머리를 까닥까닥 하였다. 아가씨가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백호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데.”
 
백호가 말하였다. 아가씨가 놀라서 백호를 바라보았다. 아가씨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기절하면 곤란하였다. 
 
“죽지 않으려면 정신 차려요.”
 
내가 눈을 부릅뜨고 야단쳤다.  내 귀에 어디에선가 재깍재깍 가고 있는 스톱워치의 소리가 들려왔다. 멸망의 시계가 가동되고 있다는 표시였다. 아마 아가씨는 스톱워치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문화과는 3층에 있었다. 아가씨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화과장의 책상은 구석진 창가에 있었다. 문화과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백호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백호가 다른 직원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당신의 눈에만 보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이 백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을 자체발화 화장터로 연행해 갈 것입니다. 그곳에 가면 당신은 자체발화로 불에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내가 문화과장에게 경고를 주었다.
아가씨가 공문서를 과장 앞에 내놓았다. 얇은 책으로 만든 공문서였다. 
 
“민원서류입니다. 읽어 보시지요.”
 
과장은 공포에 질려 공문서를 열어 읽었다. 그러나 제대로 읽기나 하는 것인지 의심이 갔다.  
 
“이런 민원은 법을 만들고 조례를 만들고 조직을 만들고 인원을 충당하고 예산을 확보해야만 추진할 수 있습니다.”
 
이빨이 마주치는 소리가 들렸다. 문화과장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몸을 떨고 있었다.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접수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접수해서 처리해 주시지요.”
“시흥시와 인천시와 부천시가 접하는 부분에서 사업이 시행되어야 함으로 도에 접수하도록 하시지요.”
 
그가 덜덜 떨면서 말하였다.
 
“백호야, 너의 강철 혓바닥으로 이분의 얼굴을 핥아 드리렴.”
 
내가 명령을 내리자 문화과장이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백호가 과장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시에서 접수하여 처리해 줄 수 없습니까?”
“행정구역이 시흥시와 인천시와 겹쳐 있어서 곤란합니다.”
 
이제 문화과장은 기절 직전에 가 있었다.
 
“핥아!”
 
백호가 과장의 얼굴을 핥기 시작하였다. 
 
“이제 내가 마지막 명령을 내리면 백호가 그대의 명줄에 이빨을 박기 시작할 것이요. 이 공문을 받을 것이요? 받지 않을 것이요?” 
“받겠습니다.”
“진작 받겠다고 할 것이지.”
 
문화과의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였다. 자기들의 과장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나는 앞으로 시흥시청에 들렀다가 인천시청에도 들를 것입니다. 그때마다 문화과장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자체발화 화장터로 보낼 것입니다. 인정을 베푸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른 과장들은 모두 불에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남기고 시흥시청으로 가서 문화과장과 대면하였다. 이번엔 자비심을 베푸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문화과장은 서류를 훑어보더니 접수를 거절하였다. 나의 아우라 속에 있는 비류왕 쿼크가 내게 명령하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비류왕은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소리를 지르자 갑자기 창밖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었다. 비가 순식간에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비류왕 쿼크가 큰일을 내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포구가 빗물에 잠기겠군요.”
 
내가 말했다.
 
“홍수가 나서 소래가 떠내려가면 책임은 너에게 있다.”
비류왕 쿼크가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사람은 없고 목소리만 들리니 문화과장은 공포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비류왕 쿼크가 너무 앞서 가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소래에 홍수가 나면 부천과 연결되는 새로운 물길이 생길지 모른다. 그 물길이 부하일 수 있다. 
 
“사라진 부하의 물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내가 비류왕 쿼크에게 물었다.
 
“찾을 수 있겠지.”
 
비류왕 쿼크가 대답하였다.
 
“어디에 가서 찾지요?”
“부천방송에 아는 기자가 있으면 제보를 하지. 소래가 홍수로 떠내려갈 것이라고 제보하면 관심을 갖게 될 것이야. 그보다도 우리가 직접 찾는 것이 빠를지 몰라.”
 
부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접수가 안 됩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문화과장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백호! 이분을 정중하게 모셔라.”
내가 백호에게 명령하였다. 
 
“잘 알았습니다.”
 
백호가 입으로 문화과장의 발목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문화과장은 자동인형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백호가 코끝으로 미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백호! 비를 맞으며 갈 거야?”
 
내가 물었다.
 
“음.”
 
시청 건물을 나서니 현관 앞에 [래이 Society]라 쓴 45인승 대형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통보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래 연수원에서 버스가 온 것이다. 버스에 레이 Society 회원들이 풍물패의 복장을 하고 타고 있었다. 우리를 태우러 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한 베어 대표가 버스에서 내려 우리를 정중하게 맞아들였다. 버스가 비의 폭포수를 뚫고 출발하였다.  
 
버스가 산신각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멎었다. 내가 먼저 내리고 풍물패 문화과장이 따라 내렸다. 백호가 마지막에 내렸다.
 
상모上旄가 꽹과리를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모든 악기가 다 따라 울었다. 소래산이 떠들썩해졌다. 피화장자被火葬者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자체발화 화장터를 향하여 멋지게 행진하였다. 
 
감응신령의 쿼크가 자체발화 화장터 앞에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백녀의 쿼크도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감응신령이 홀로그램으로 변하였다. 그제야 홀로그램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문화과장은 정신이 나가서 시체나 다름이 없었다. 
 
“그대는 무슨 이유로 이곳에 잡혀왔는지 알고 있는가?”
 
감응신령이 문화과장에게 준엄하게 물었다. 
 
“모릅니다.”
 
문화과장이 대답하였다.
 
“증인이 그대의 잘못을 증언해 줄 것이다.”
비류왕이 아우라에서 나와 홀로그램이 되었다.
“나는 이 땅에 부하富河라는 이름을 가져와서 오늘날 부천富川으로 부를 수 있게 
해 준 비류왕이다.”
 
비류왕이 말하였다. 비류왕이 하늘에 대고 축수하자 벼락이 소래산 밑을 때렸다. 벼락이 때린 곳이 바로 자체발화 화장터였다. 하늘이 호응하고 있었다.
 
“그대는 우뢰를 아는가?”
 
비류왕이 문화과장에게 물었다. 문화과장은 벌벌 떨고 있었다.
 
“우뢰(는 하느님의 형상이고 우레가 치는 소리는 하느님의 소리이다. 그러나 어떤 쓸개 빠진 자들이 우뢰를 위례慰禮라는 말로 바꿔버렸어. 그래서 우뢰성이 위례성으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비류왕 쿼크가 화가 난 음성으로 말하였다. 
 
“왕께서 이 고장에 오시기 전에 어떤 나라가 있었습니까?”
 
내가 비류왕 쿼크에게 물었다.
 
“우체모탁국優體牟涿國이 있었다.”
 
우체모탁국은 소래에 처음 상륙한 부족들이 세운 나라였다. 삼한시대에 부천 땅에 우체모탁국이 있었다.
 
“우체모탁국은 어떤 나라였습니까?”
“모국牟國과 탁국涿國에서 온 유민들이 세운 나라였다.”
“모국 출신들의 성이 모牟라는 것은 알겠는데, 탁국 출신의 성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하였다.
 
“거리검! 그대의 성이 탁국에서 나온 성이다.”
 나의 성은 강성姜姓에서 나온 노성盧姓이었다. 중국에 『범양노성족보范阳盧姓族譜』가 있는데 이 족보에 기록이 있다. (范阳卢氏出自姜姓,齐国后裔,因封地卢邑而受姓卢氏,秦有博士卢敖,子孙迁居至涿水一带之后,定居涿地,以范阳为郡望,后世遂称范阳人.) 이 기록에 제국의 후예라 했는데 이는 역사 왜곡으로 볼 수 있다. 나의 출신이 동이족인데 동이족의 원수인 제국의 후예가 될 수 없었다. 
“역사를 모르는 이 나라의 백성들을 이해시키려면 설명이 필요합니다.”
“모국은 모이牟夷 혹은 선모鮮牟로 불리는 종족들이 조선이 멸망한 이후에 세운 나라였다. 탁국은 치우천왕의 나라 청구靑邱였다. 청구가 탁수涿水에 있었으므로 탁국이라 하였던 것이다. 탁국이 황제에게 멸망하면서 유웅국에 흡수되었는데, 탁국의 유민들이 산둥반도로 가서 모인 등과 합쳐 래국을 세웠다. 이들을 래이족이라 하였다.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래이족이 제국의 압박을 피하여 한반도로 들어왔다. 그들이 상륙한 곳이 소래, 화성, 고창이었다. 이때 한반도에 삼한이 성립하였고, 삼한에 포함된 소국의 수가 54국이었다.”
“이들 부족과 조선과의 관계를 말씀해 주십시오.”
“청구가 멸망하면서 조선이 생겼고, 조선이 멸망하면서 래국이 생겼고, 래국이 멸망하면서 삼한이 생겼다. 이 시대는 복잡하고 애매한 시대이다. 예족으로 불렸던 동이족과 동호, 선비, 등으로 불렸던 맥족이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시대였지. 조선이 멸망하고 춘추전국시대가 되자 제나라가 동이족에게 가하는 동이족 말살정책을 피하여 소서노 일족이 한반도로 들어와 래이족을 주축으로 하여 백제시대를 열었어, 일부는 압록강 북쪽에 있는 오녀산성 동쪽에 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비류가 인솔하는 일족이 한반도로 들어왔어,”
“비류와 온조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비류는 동호족이고 온조는 래이족이야. 내가 보는 관점은 그래.”
“전혀 다른 부족이군요. 그런데 왜 역사에서 두 분을 형제라 하지요?”
“일종의 역사공학이라고 말할 수 있지. 예와 맥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술수였을 거야. 나는 그들이 만난 곳이 소래였다고 봐. 비류는 소래와 부천 서쪽의 땅을 차지하였고, 온조는 한성 쪽으로 가서 하남을 차지했을 거야.”
“비류왕의 증언 감사합니다.”
 
나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백호는 이자의 죄목을 알려주라.”
 
감응신령이 백호에게 지시하였다.
 
“피고인이 지은 죄는 「홍익인간법」 배반죄입니다.”
 
백호가 대답하였다.
 
“배반죄?”
“배반이나 위반이나, ㅋㅋㅋ”
“이제부터 홍익인간법 배반의 범죄요건에 대하여 심문하겠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가? 피고는 진술하라.”
 
내가 문화과장에게 질문하였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대한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가철학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
“생각을 정리해야 진술할 수 있습니다.”
“그대가 복무하는 국가의 사상은 무엇인가?”
“헌법에 명시된 바로는 자유민주주의 사상입니다.”
“대한민국 교육법 제2조에 나와 있는 사상을 말하라.”
“홍익인간사상입니다.”
“홍익인간사상은 무엇인가?”
“인간 모두에게 이익이 되게 하자는 사상입니다.”
“이익이 무엇인가?”
“경제적인 이익입니다.”
“다른 이익은 없는가?”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고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
“「천부경」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
“모릅니다.”
“부천의 역사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을 진술하라.”
“고구려 때 주부토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부평의 역사야.”
“주부토가 무슨 뜻인가?”
“모르겠습니다.”
“신라 때 부천의 역사는?”
“소성이라했습니다.”
“백제 때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판결을 내렸다. 
 
“그대는 일개 시의 문화과장으로서 「홍익인간법」을 위반하여 자체발화형벌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 자체발화가 무엇인지 아는가?”
“모릅니다.”
“딱하게 되었군. 이제 선고가 끝나면 그대는 자체발화 화장터로 끌려가서 스스로 타죽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
“제가 타죽는다고요?”
“그렇다. 네 몸 속에 있는 열이 네 몸속에 있는 지방을 태워 네가 타죽게 되는 것이다. 네 스스로 타죽으니 아무도 말리지 못해.” 
“억울합니다.” 
“네가 홍익인간법을 배반했는데 억울하긴 무엇이 억울해?”
 
내가 소리 질렀다.   
 
“좌우간 억울합니다.”
 
문화과장이 눈물을 흘렸다. 
 
“그대가 판결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려주겠다. 오늘 감응신령의 명령으로 내가 시장 앞으로 제출한 공문에 기록된 대로 시행하여 완성한다면 처벌을 보류시켜 주겠다. 만약에 감응신령의 공문 시행을 차일피일 미루면 결제 선상에 있는 모든 자들은 예외 없이 자체발화 화장터로 끌려와서 화장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문화과장이 다리를 떨며 대답하였다. 
 
“맹세할 수 있느냐?”
“맹세할 수 있습니다.”
“되었다. 판결을 보류시켜 주겠다. 공문의 시행이 완료될 때까지 판결을 보류한다.”
 
나는 문화과장을 풀어 주었다. 비류왕의 쿼크가 비류왕의 쿼크에 감응하여 쏟아지는 에너지를 거두었다. 홍수의 효력을 정지시킨 것이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