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왕검이 감응신령으로 좌정한 산신각은 부천과 시흥의 경계인 와우고개 정상을 넘어서 시흥 쪽으로 내려가다가 오른쪽 산 속에 있었다. 내가 집에서 나와 도보로 30분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산신각이 있었다. 그곳이 소래산蘇萊山 입구였다. 

시흥 쪽 입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져 산길을 들어가면 낡은 산신각이 보였다. 산신각이 있는 동네 이름이 대야동大也洞인데, 대야란 대여음大女陰이라는 뜻이다. 마고의 여음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산신각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가면 마고의 여음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산신각은 마고의 여음을 상징하는 핵심 부분처럼 보였다. 문자 알고리듬이 그러한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환상을 만들어낸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도착해서 보니, 산신각 문이 자물통으로 감겨 있었다. 잘 나타나지 않는 관리인이 산신각을 접근금지구역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내 능력으론 자물통이 따질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산신각 밖에서 안을 향하여 산신에게 3배하고 말했다.
 
“거리검 입니다. 감응신령님께 상의드릴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문이 잠겨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네의 힘으로 열 수 없는가?”
 
나는 목소리로 말했는데, 감응신령은 나를 감응시키려고 내가 감지할 수 있는 파장을 보내 의사를 전달하였다. 
 
“자물통이 워낙 두툼하게 생긴 것이라…….”
“내가 힘을 빌려주지. 자물통 고리를 그냥 아래로 잡아당겨 봐. 저절로 빠질 것이다.”
 
나는 감응신령이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러자 힘 안 들이고 고리가 빠졌다. 감응신령과 나 사이의 감응이 자물통에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됐습니다.”
 
나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햇볕이 산신각 안을 밝게 하였다. 언제 갖다 놓았는지 신단 아래에 유 선생이 보낸 쌀부대가 놓여있었다. 쌀장사가 자물통으로 잠겨 있는 문을 열고 산신각 안으로 들어갔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쌀부대가 스스로 거기에 와서 놓였을 리 없었다.  
 
“유 선생이 신통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신통력을 가진 사람이 유 선생 한 사람뿐이겠는가. 
 
“어찌 쌀부대가 들어와 있습니까?”
 
나는 궁금한 것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림으로 감응신령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쌀을 싣고 왔기에 내가 파장의 힘으로 문을 열어 놓았지.”
 
감응신령이 대답하였다. 유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산신각에 와 있습니다.”
“벌써요?”
“발로 뛰어야 할 일들이 있어서요.”
“실은 제 친구가 부천에 살고 있는데 쌀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친구에게 매월 쌀 1부대를 산신각에 갖다 놓아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쌀이 갈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쌀이 벌써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쌀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나와 유 선생의 통화가 끝났다.
 
“쌀장사하는 사람이 기인입니까?”
 
내가 감응신령에게 물었다.
 
“힘이 센 사람은 틀림이 없는 것 같아.”
“언젠가 와서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겠습니다.”
“알아서 하게.”
 
유 선생이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지, 쌀장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쌀장사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쌀장사에게 쌀을 보내 주어 고맙다고 말하였다. 
 
“이 쌀은 그대 몫이다. 그대가 가져가라.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 전에.”
 
감응신령이 내게 말했다.
 
“저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고맙습니다.”
 
나는 마누라에게 스마트폰을 걸어 산신각에 와서 쌀부대를 가져가라고 하였다. 마누라가 곧 옥색 고물차 라노스를 가지고 와서 쌀부대를 실어갈 것이다.  
 
“아까 내게 윤허를 받겠다고 했는데, 무엇을 윤허해 달라는 것이냐?”
“곧 광화문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포럼을 하게 됩니다. 제가 강사로 나갑니다. 이때 제가 청배 드리면 감응해 주십사는 부탁입니다.”
“나를 무엇에 써먹으려고?”
“유 선생의 부탁입니다.”
“어떤 자들이 모이는데?”
“대학교수 은퇴자들입니다. 변호사도 있고요.”
“그런가?”
감응신령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감응신령이 학자라는 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자들이 단군왕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도마 위에 올린 생선처럼 칼질을 해 왔기 때문에 일종의 학자 트라우마를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최자는 홍익인간사상을 몸소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유 선생이라고……. 그는 이번 기회에 감응신령님을 모셔다가 타종교를 믿는 자들에게 겁을 주자고 합니다.”
“겁을 주겠다……. 좋지. 그런데 나를 부려먹으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할 거야.”
“어떤 대가를 원하십니까?”
“큰 것은 원하지 않아.”
“말씀하십시오.”
“소래에서 어부슴을 하게.”
“어부슴을 하는 것은 힘들지 않습니다만…….”
“복희와 여왜 두 분에게 바가지(호과瓠果)에서 태어나는 자손 하나 달라고 빌어 보라는 것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가 누구입니까?”
“그가 미래의 역사를 이끌어 갈 도부신인桃符神人이다.”
“도부신인이라고요? 묘하게 타이밍이 맞아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무슨 타이밍이?”
“그의 출생과, 부천을 부하로 개명하는 것과, 사라진 부하를 발견하는 것과, 소성의 역사가 비류의 역사로 새로 시작되는 것이 말입니다.”
“과연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군.”
“부천이 새로운 뉴스 메이커가 되겠군요.”
“세상에 소문은 내지 마. 마가 낄 수 있으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하겠지?”
“그렇습니다.”
“자네도 잘 알다시피 신들은 공짜로 일을 하지 않아.”
“알고 있습니다.”
“음식과 돈 말고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나는 감응신령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어서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무엇을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대의 노력으로 소래산과 성주산을 성역화 했으면 좋겠어.”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나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공무원들이 들어 줄까요?”
“들어주도록 해야지.”
“저에겐 그런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돕겠다는 것이야.”
“그러면 안심입니다. 발로 뛰고 손으로 하고 머리로 하는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나는『성주산과 소래산 성역화 마스터 플랜』을 머리에 떠올리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모티브로 떠오른 것이 복희와 여왜의 인간창조신화였다. 
 
배달나라 역사에 보면, 복희와 여왜는  B.C. 3528~3413년의 사람으로 배달나라 제5대 태우의 환웅천황의 자손 13남매 가운데 제12자와 제13녀였다. 태우의 한웅은 산동 출신으로 신석기시대의 사람이었다. 역학을 시작하여 역학문화의 시조가 되었다. 특이한 것은 그가 배달나라의 제6세 다의발 한웅천왕임에도 불구하고 화이들이 그를 그의 동생 여왜와 함께 중화인류의 시조로 떠받들어 왔다는 점이다. 이 말은 복희시대에 동이와 화이가 같은 조상에서 태어난 동계혈족이라는 말이 된다. 동계혈족인 동이와 화이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된 때는 치우천왕과 황제가 싸운 탁록대전涿鹿大戰 때였다. 황제가 치우천왕을 전사시킴으로써, 화이가 동이에서 갈라져 나오게 되었고, 원수가 된 것이다.
 
“부천에서 시흥으로 넘어오는 길목에 산신각이 있는데, 시흥이라는 말이 신인류가 태어나서 흥하는 곳이라는 말이므로, 디지털 문명이 끝나면 신인류가 시작하는 새 문명에 걸 맞는 인류가 태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말로 보입니다. 언젠가 격암 남사고 선생이 쓴 『남사고 비결』을 읽으니, 신인류로 성주산에서 도부신인桃符神人이 태어난다고 했더군요.”
 
“신인류가 태어날 때가 되긴 했어. 그러나 이 고장에서 아무도 신인류가 태어나게 해 달라고 마고의 여음에 와서 기도하는 자가 없는데 어떻게 신인류가 태어날 수 있겠는가.”
 
산신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하였다.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면 제가 기도하지요.”
“설사 기도를 한다고 해도 자네의 부실한 몸으로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겠는가?”
“제가 낳아야만 합니까?”
“왜, 낳기 싫은가?”
“양심상…….”
“옳은 생각이야.”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비법을 하나 쓸 수 있긴 한데…….”
“가르쳐 주십시오.”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무슨 일입니까?”
“먼저 성주산에 땅을 사서 집을 헐어 밭을 만들고 그곳에 복숭아나무 한 그루를 심어. 그 다음에 그 주위에 작은 동산을 하나 만들고 모두 마화麻花를 심어,”
“복숭아나무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긴 하겠는데, 마화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마화엔 마고 꽃이라는 의미, 풀어야 할 마고의 고라는 의미, 배배 꼬였다는 뜻의 꽈배기라는 의미가 있지. 더 큰 뜻은 마화가 마고대신을 상징한다는 데에 있어,”
 
굿을 할 때 고풀이에서 쓰는 고는 고苦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고는 고姑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즉 마고에 밀착되어 있다는 말이다. 
 
“자네가 해야 할 일이 또 있어.”
 
나는 감응신령이 또 무엇을 엉뚱하게 요구할지 몰라서 걱정이 되었다.
 
“근화가 내게 올 때 마고머리를 하고 오라고 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네?”
“마고머리라는 이름의 머리를 땋아 늘이고 오라는 말이다. 옆머리를 땋아서 고를 지어 오라는 말이야. 근화가 고를 풀어야만 후손들이 마고의 몸을 결박한 고가 풀리게 될 것이다.”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을 감응신령이 가르쳐주고 있었다. 
 
“근화에게 말하겠습니다.” 
“자네와 가까운 지인들을 모으게. 모을 수 있겠나?”
 
내게 지인이 있다면 이명지, 이숙, 근화, 혁거세, 유 선생 5명이 전부였다. 그 외에 여러 사람이 있긴 하지만 깊이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
 
“가능합니다.”
“근화에게 소래에서 어부슴을 하자고 해. 어부슴을 하면 무엇인가 응답이 있을 거야. 날짜를 빨리 하라고.”
 
어부슴은 어대현語臺縣에 부산鳧山이 있고, 부산에 복희 능이 있는데, 복희 능으로 오리 밥을 바가지에 담아 띄어 보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근화에게 전화 걸어, 마고머리를 하고 산신각에 올 것을 당부하고, 이틀 후 밤에 소래에서 어부슴을 할 것이니 준비하라고 말했다. 나는 지인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어부슴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산신각에 들러, 감응신령에게 이 사실을 고하였다.  
 
어부슴하는 날이 왔다. 우리는 산신각에 모였다. 근화가 마고머리를 하고 왔다. 우리는 감응신령에게 인사하고, 전원이 차 2대에 나누어 타고 소래로 떠났다. 소래포구에서 떨어진 인가가 없는 한적한 곳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어부슴을 띄우면 어대현의 부산에 도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가 어두웠다. 차의 조명등을 켜고 어부슴을 준비하였다. 준비는 간단하였다. 바가지에 지인의 숫자대로 밥을 담고, 밥에 숟가락을 꽂고, 삼색 나물을 놓고 부산으로 띄어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근화는 어부슴을 띄어 보냈고, 방울을 흔들며 축원하였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바닷가의 정적을 찢었다. 별들이 총총했다. 별이 하나 떨어지고 있었다. 
 
“복희와 여왜 두 분의 풍이족 조상에게 앞으로 태어날 신인류를 보내 주십사 하고 어부슴을 보냅니다…….”  
 
그 다음에 하는 기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속으로 하는 것이었다. 나는 청동팔주령으로 기도의 의미를 감지하였다. 근화는 마고삼신과 속 깊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어서 복희와 여왜와도 속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대화의 파장을 높여 지인들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각자 기도하였을 것이다. 축원이 끝났다. 다른 사람은 다 돌려보내고 근화가 남아 자기와 같이 산신각에 가자고 하였다. 
 
“산신각에 들러야 할 일이 있나?”
“제가 축원하는 도중에 몇 가지 본 것이 있어서 감응신령님에게 물어보고 싶어서입니다.”
 
근화가 그렇게 말하니 동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산신각에 도착하였다.
근화가 기도로 들어갔다.
나는 청동팔주령이 보내는 감응을 통하여 근화가 삼응신령과 통화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생명나무에 대한 대화가 오고가고 있었다. 하늘에서 생명나무가 내려오는 날 성주산에 서있는 나무 중에서 나무 하나가 이 생명나무와 접목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 나무가 복숭아나무가 될 것이다. 다른 대화는 비가 오고 홍수가 나고 부천이 물바다가 되는데, 물이 빠져나가면서 옛날의 물길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물길이 아마 부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류가 왕으로 등극하는 때가 이때였다.  
 
“신인류가 나타나려면 신도시가 생겨야 할 것이에요.”
 
근화가 기도를 끝내고 나서 말했다.
 
“소래와 부천 사이에?”
“그렇습니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성공이 불가능한 일이야.”
 
산신각 밖으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굵은 빗방울이었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는 말이 없었는데 오는 비였다. 기습을 받은 것 같았다.
 
“복희 때처럼 홍수가 나려나?”
 
내가 웃으며 말하였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던데…….”
 
강이 없는 이곳에 홍수가 진다면 상당히 심각한 일이다.  
 
“홍수를 예방할 방도가 없을까요?”
“그대가 옛날에 사라진 부하를 찾아서 홍수의 기운을 부하로 빼돌리면 부천시가 떠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디로 떠내려가지요?” 
“한강이거나 소래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되겠지.”
 
급한 것은 부하를 찾는 일이었다.
 
“부하를 어떻게 찾지요?”
 
나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부하가 있었던 시대에 부하의 임금이었던 비류를 찾아야 해. 그가 부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라면 부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막연합니다.”
“내가 그의 쿼크를 불러다 특정한 사람에게 빙의憑依시키면 찾을 수 있겠느냐?”                
감응신령이 물었다.
 
“그렇게 해 주시기만 한다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제물이 필요해.”
“제물이요?”
“그를 세상에 나오게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단 말이야.”
“사람을 죽여서…….?”
“산 사람을 죽여서 에너지를 빼앗는 것이지. 어쩔 수 없다. 이 일은 그대가 해야 할 일이니 그대가 해야 해.”
“산 사람을 죽여야 한다니…….제가 마야제국의 제관도 아니고…….”
 
나는 이의를 제기하였다.
 
“근화가 찾아보아라. 누군가 나올 것이다.”
 
감응신령이 근화에게 지시하였다. 근화가 방울을 울리며 제물로 쓸 사람을 찾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이 잡힙니다. 그가 산신각 뒤에 백호에게 끌려와서 불에 타 죽습니다.”
 
근화가 말하였다. 
 
“근화야. 네가 고를 풀어 봐. 그러면 그가 나타날 것이다.”
“고가 없는데 어떻게 풀지요?”
“네가 머리에 맺은 고를 풀어.”
 
근화가 알아듣고 왼쪽 귀 뒤로 땋은 머리에서 고를 고정시킨 
핀을 뽑았다. 이어서 오른쪽 귀 뒤로 땋은 머리에서 고를 고정시킨 핀을 뽑았다. 그러더니 방울을 흔들며 무당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머리 돌림이 빨라졌다. 그러자 고들이 풀어지고 너풀거리는 머리카락들이 얼굴을 덮었다. 고가 완전히 다 풀렸다. 순간 나는 감응신령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 눈은 무시무시한 신의 눈이었다. 나는 감응신령이 무엇엔가 원한에 사무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였다. 
 
“오늘 불에 타죽을 자가 백호에게 떠밀려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아주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내가 바라보니 신원을 알 수 없는 자였다. 나는 다리에서 힘이 빠져 다리가 후들거렸다.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간신히 몸을 버티고 있어야 하였다. 백호가 연행해 온 자를 한 30평 쯤 되어 보이는 공터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자체발화가 일어났고 피연행자의 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그자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되었다. 이제 기력이 보충되었다. 이제 소래로 가라. 그대가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근화와 함께 감응신령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무조건 떠났다. 근화는 고가 풀린 머리를 손질하지 않고 나를 따라 나섰다. 
 
“어디에 가면 우리가 비류라는 분을 만날 수 있을지 관을 해 봐.”
 
내가 시키는 대로 근화가 관에 들어갔다. 
 
“찾았습니다.”
 
나는 근화가 가자는 곳으로 갔다. 우리가 간 곳은 조용한 해변가였다. 놀랍게도 전혀 개발이 되지 않은 공지가 있었다. 현판이 달리지 않은 문이 있고, 육중하고 높은 담이 둘러서 있었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경내가 적어도 30만 평은 될 것 같았다. 안에 한옥이 몇 채 있는데 절이나 박물관이 아닌 점으로 보아서 용도가 불분명하였다. 
 
“이 안엔 필지 눈에 보이지 않는 건물들이 있을 거야.”
 
내가 말했다. 나는 용도가 드러나지 않는 용도 불명인 땅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재벌이나 재단의 땅이나 국가 소유의 땅으로 오해하는 땅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땅들이 한국과는 관련이 없는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점령당한 땅으로 보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북한에 점령당한 땅은 없었다. 
 
“제게 떠오르는 것이 있어요.”
 
근화가 이 땅을 관하여 보고 나서 말하였다.
 
“선생님이 언젠가 영계 터미널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어요. 영계 터미널과 관련이 있는 땅 같아요.”
“잘 본 것 같아. 그런데 문제는 영계 터미널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무슨 이유로 이곳에 들어와 있느냐 하는 것이지.”
“우리가 들어가 보면 궁금증이 풀리겠지요.”
 
기둥에 붙어 있는 부자를 눌렀다. 신원을 묻지 않고 문이 열렸다. 우리는 승차한 채로 경내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CCTV가 작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옥 5동이 ㄷ자 형태로 서있었다. 정면을 향하여 3동이 나란히 서있고 측면에 좌우로 각 1동이 서있었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안채가 있는 구조의 건물들이 5동이나 되었다.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건물을 배치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근화가 ㄷ자 공간의 바깥쪽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우리가 가운데 한옥의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는 나보다 10여세 아래로 보이는 남자였다. 
 
“어서 오십시오. 오실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책임자 래이 Society 대표 한 베어입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거리검이라 합니다. 이쪽은 김근화 씨입니다.”
 
우리는 손을 잡아 악수하였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의 명함에 영어로 Han Bear라 인쇄되어 있었다. 그가 서구의 비밀결사 단체인 Han Bear Society의 회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Han Bear Society를 번역하면 한웅회桓雄會가 된다. 그러나 그는 래이 Society를 이끌고 있었다. 래이는 한자로 쓰면 래이萊夷라는 말로 춘추전국시대 이전부터 산동반도에 흩어져 살았던 래이족을 의미한다. 그는 그의 집무실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갔다. 방에는 그의 책상 뒤로 「양직공도梁織貢圖 백제국사도百濟國使圖」 복사본이 한 장 걸려 있을 뿐 특별히 눈에 띨만한 것은 없었다. 
 
“차를 한 잔 하셔야지요.”
 
그가 이 말을 하자 한쪽 벽이 열리고 차를 끓일 수 있는 다방시설이 하나 나왔다. 
 
“커피를 주시지요.”
 
내가 말했다.
“저도요.”
 
근화가 말했다.
 
“실은 대접할 것이 커피뿐입니다.” 
 
한베어 대표가 커피 봇에서 잔 3개에다 커피를 따랐다. 우리는 각자 커피 잔을 들었다. 대단히 향이 좋은 커피였다. 국내에서처음 맡아 보는 커피 향이었다.
 
“거리검 선생은 여러 연구기관에서 주목하고 있는 분입니다. 알고 계시지요?”
 
나는 금시초문이었다.
 
“그렇습니까?”
“다만 자신들의 존재의 노출을 꺼리기 때문에 접근을 하지 않을 뿐이지요.”
 
그럴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국의 광대한 사막에 있는 연구기관으로부터 미국에 방문해 줄 것을 요청받은 적이 있었다. 우주인들이 출몰하는 고장에 그 연구기관이 있었다. 국가의 묵인 하에 외계인들이 와서 그 연구기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우주정부로부터 우주기술을 이전받아 최첨단 기계나 원료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연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그 연구기관은 내가 자주 말하는 영계 터미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머리를 해킹할 생각을 그 기관이 갖고 있었다. 나는 그 기관의 초청을 거절하였다. 정보의 노출을 꺼려한 때문이었다. 
 
“거리검 선생,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선생은 감응신령과 소통을 한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소통을 시작하였습니까?”
 
나는 이명지가 내게 준 청동팔주령과 북극오성과 삼성대왕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들 3가지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궁금하다고 이것저것 더 묻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이번엔 내가 물을 차례였다.
 
“래이 Society가 무슨 일을 하는 단체입니까?”
“미국의 사막에 있는 연구기관과 유사한 일을 할 준비단계에 있는 기관입니다.”
“대단한 일을 하는 단체로군요. 정부가 관여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존재를 아직 알지 못합니다. 영계 터미널로부터 지시가 있어야 공개합니다.”
“영계 터미널에 대하여 말하는 분을 오늘 처음 뵙습니다.”
 
나는 영계 터미널의 실체를 한 베어 대표가 확인해 주어 기뻤다. 
 
“래이란 말은 래이족萊夷族이라는 말입니다. 조선이 중국 본토에서 진秦과 한漢에게 멸망한 이후에 조선의 후예들을 래이족이라 하였습니다. 래이족의 래萊자는 오랑캐가 자리 잡았다는 뜻입니다. 래이족이 래국을 세웠습니다. 저희는 래이족의 후예로서 산동반도와 한반도에 래국을 복원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한국정부와 중국정부에서 지독한 탄압이 가해질 것입니다. 이를 피하기 위하여 명칭을 창조경제 타운으로 바꾸었습니다.”
“위치가 어디입니까?”
“소래와 부천과 부평이 해당지역입니다.”
“자금 조달은 어떻게 합니까?”
“자금 뿐만 아니라 필요한 인원과 물자를 영계 터미널에서 지원 받고 있습니다.”
 
이정도의 일이 한반도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면 국가의 존립에 위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한국에는 알리지 않을 것입니까?”
“한국 정부가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공개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약간 으스스한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둘러보실까요?”
 
한베어 대표가 일어섰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대지가 나대지로 방치되어 있었다. 
 
“뭐 보이는 것이 없습니까?”
내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없습니다.”
“이 안에 외계인이 아닌 영계인들이 영계 터미널에서 파견 나와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계인을 볼 수 없었다.
 
“제가 볼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내 아우라를 만지작거렸다. 내 아우라를 만지작거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그러자 내 눈 앞의 풀경이 비노출상태에서 노출상태가 되면서 영계인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무슨 작업을 하고 있습니까?”
“거리검 선생에게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베어 대표가 나와 근화를 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곳은 설계도면을 만들고 미니추어를 만드는 방이었다. 그는 설계도면을 내게 보여주고 기획서도 읽도록 해 주었다. 창조경제 타운 건설계획이었다.  
 
“이 계획이 완성되면 거리검 선생이 시장에게 제출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영계 터미널에서 만든 일정입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자신이 무의식 상태에서 영계인의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곧 특별한 경로를 통하여 호출이 있을 것입니다. 호출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나는 근화와 함께 한 베어 대표에게 작별하고 래이 Society를 나왔다. 
 
“산신각에 들렀다 가시지요. 감응신령님에게 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근화가 말하였다. 나의 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마누라가 산신각 밖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나는 산신각에서 쌀부대를 들고 밖으로 나와 고물차 라노스에 실었다. 
 
“잠간 기다려. 곧 끝나.”
 
나는 근화와 함께 감응신령에게 오늘 레이 Society에서 있었던 일을 고하였다. 그리고 근화와 헤어져 마누라와 그곳을 떠났다.
 
“왜, 이렇게 젖었어요?”
“갑자기 비를 맞았어.”
 
나는 땀을 흘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당신은 우리가 집을 팔고 받은 돈을 꾸어 간 사기꾼에게 가서 돈을 받아와요.”
 
마누라가 말했다. 나는 마누라가 하는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사기꾼의 사무실이 종각 근처에 있었다. 마누라는 나를 부천역에서 내려 주었다. 나는 청량리로 가는 전동차에 올라탔다. 나는 종각역에서 내려 근처에 있는 커피 점에서 사기꾼을 만났다. 그는 선량한 인간의 가면을 쓰고 내게 접근하여 내 학문을 도둑질해 간 여러 후배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 지식을 빼내어 장사하여 이익을 취하며 생활하였다. 
 
나는 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주어 책을 만들게 하며 생활하였다. 책을 만들었으나 수입이 없는 생활이었다. 오랜 세월을 이 일을 하다 보니 집을 팔아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경제상태가 열악해졌다. 그래서 집을 팔았다. 그가 접근하여 돈을 꾸어주면 이자를 꼬박꼬박 갚겠다고 하였다. 돈을 꾸어 주었더니 몇 달 이자를 주고 돈을 갚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빚 독촉을 했으나 핑계를 대고 띠어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기꾼을 만났지만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혼자서 빈대떡 집에 들러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종각역에서 전철을 탔다. 오래간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술기운이 올랐다.
시간은 밤 10시가 되었다. 전동차가 와서 섰는데 타는 사람이 없었다. 문이 열리자 감응신령이 머리를 문 밖으로 내밀고 내게 “어서 빨리 타!” 하고 소리 질렀다. 마치 환상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전동차에 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감응신령은 호랑이 1마리를 호위병으로 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감응신령이 일부러 나를 만나고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니야.”
“그런 것 같습니다.”
“자네, 오늘 만난 사기꾼을 앞으로 만나지 말게. 그 사악하고 교활한 인간을 또 만나면 내가 자네를 통하여 하고자 하는 일에 차질이 생겨.”
 
감응신령이 내가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놀라서 물었다. 술기운이 싹 가셨다. 
 
“내가 자네를 앞세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 
“무슨 일인데요?”
“자네는 단군왕검의 사상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그야 홍익인간사상이지요.”
“그래, 홍익인간 하자는 것이야.”
“어떻게요?”
“홍익인간이 무언지 몰라서 묻는가?”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요즈음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깐 백호를 지켜주게. 내가 기관사에게 가서 행선지 변경지시를 하고 오겠어.”
 
궤도열차를 행로를 변경하겠다니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궤도를 이탈하여 하늘을 날아가겠다는 말인가? 감응신령이 열차 앞쪽으로 갔다. 백호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백호가 나를 먹이 감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불안하였다. 백호가 일어서서 내 주위를 왔다 갔다 하였다. 구두에 코를 대고 가죽냄새를 맡았다. 소가죽인지 돼지가죽인지 양가죽인지 검사를 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등에 냉기가 흘렀다. 감응신령은 기관사(기관사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와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줄기차게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이번에 내리실 곳은 성주산역입니다. 시흥으로 가실 분은 성주산역에서 내리십시오.”
 
드디어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열차가 멎었지만 감응신령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열차의 문이 열리자 나는 재빠르게  내렸다. 백호도 재빠르게 나를 따라 내렸다. 
 
“내가 내리라고 하지 않았는데 왜 내리는 거야?”
 
감응신령이 등 뒤에서 소리 질렀다. 열차가 떠나기 직전에 그도 내렸다. 나는 그가 내 곁에 오기를 기다렸다. 
“저를 데리고 다른 데로 가실 생각이었습니까?”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중국으로 갈 생각이었어.”
“중국 어디로요?”
“소서노召西弩의 고향 소원진邵原鎭, 온조왕溫祚王의 고향 온현溫縣, 연타발延陀勃의 고향 연진延津으로 가려고 했지.”
 
우리나라에서 아직 밝혀진 바 없는 그분들의 고향을 감응신령이 줄줄이 외우고 있었다. 
 
“감응신령님께선 모르시는 것이 없군요. 왜 그곳에 가시려고요?”
“비류를 찾으려는 것이야. 이제부터 비류가 현신할 때가 되었거든.”
“........”
“소서노의 가족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제수濟水를 끼고 살았던 사람들이야. 제수 남쪽이 하남이야. 이곳에 동이족이 살고 있었어. 제나라 조정이 삼족을 멸하여 씨를 말리라고 명령을 내린 동이족이 살고 있었지. 제가 강국이 되자, 멸족을 면하려고 그들은 고향을 탈출하였어. 배를 타고 제수를 빠져나가 요동으로 도망쳤어.”
 
나는 열차가 아직 서 있나하고 홈을 보았지만 열차는 떠나고 없었다. 감응신령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보고 있었다.
“자네에게 태사太史 백양보伯陽父의 쿼크가 붙어 있네.”
 
감응신령이 불쑥 말하였다. 그런 말은 금시초문今時初聞이었다. 태사 백양보는 주周나라 유왕幽王 2년에 주나라의 멸망을 예언한 사람이었다. 그가 국가 멸망을 예언하고 나서 10년 안에 주나라가 멸망하였다.
 
“저에게 이 나라의 멸망을 예언하라는 말씀입니까?”
“용기가 있다면 하게.”
“이 나라가 백양보가 주나라의 멸망을 예언했을 때처럼 10년 안에 멸망할 것으로 보십니까?”
“조상들이 보살펴주지 않았다면 벌써 무너졌을 것이야.”
“그렇습니까?”
“지금 이 나라는 한 여자가 이 나라가 무너지지 않게 버티고 있는 형국이야. 그의 힘이 다하면 나라가 무너져 망하겠지. 내가 돕지 않으면 빨리 망할 수 있어.”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큰일이군요.”
“지금 이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의 끈에 목을 매어 이끌려가는 황구黃狗와 같은 신세야. 복날을 피해야 잡아먹히지 않지. 앞으로 피해야 할 복날이 초복, 중복, 말복 3개나 있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금년은 갑오년甲午年이야. 갑목甲木이 오화午火를 당하여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해야. 즉 동쪽에 있는 나무가 아궁이에 들어가 불에 타 없어지는 해란 말이야. 갑목을 불태우지 않으려면 불을 꺼야 하는데 수水가 필요해. 그런데 수를 어디에서 구하나? 이것이 금년에 이 나라가 피할 수 없는 운세야. 물을 길어 와야 할 많은 장정들이 필요해. 이들이 물을 길러 가는 곳이 물살이 세고 빠른 남해南海야. 남해에서 물을 길어 오면 불을 끌 수 있어. 그런데 그 많은 젊은이를 무슨 수로 남해에 데려가 물을 길어온단 말인가? 배에 싣고 가서 물을 길어오는 수 외에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물을 길어왔습니까?”
“길어왔지. 그래서 불을 끌 수 있었어. 그러나 너무 엄청난 회생을 당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어. 금년은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이 나라가 불에 타 없어질 운명을 면했는데…….”
“뭐가 또 있습니까?”
“내년은 을미년乙未年인데, 이번엔 갑목甲木이 죽어서 사지死地에 묻히는 해가 되지. 그러니 금년보다 더 암울한 한 해가 될 것은 틀림이 없어. 미토未土의 화禍를 면하려면 잡초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단속해야 할 것이야.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이 나라를 강점했던 을미사변乙未事變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이 나라는 끝장이야.”
“반란을 막지 못하면 이 나라가 그것으로 끝입니까?”
“또 있어.”
“갈수록 태산이로군요.”
“마지막 해가 병신년丙申年인데, 갑목이 절지絶地에 들어가는 해야. 나라가 망하여 모든 인연이 끊어지는 해란 말이지. 나라가 망하면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겠지.”
“절지를 피해 갈 묘수가 없겠습니까?” 
“자네는 원로회의에 나가지?”
“그렇습니다만……. 그것은 은퇴자들의 침목단체의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원로회의를 활용해 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했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원로회의 운영자와 미리 상의해서 은밀하게 7명을 화백회의 대표로 뽑아. 그다음에 대통령에게 면담을 건의해.”
“그러면 되겠습니까?”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대표로 선출되어 나를 대리하여 내 의사를 세상에 전달하는 것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저를 소서노 온조 연타발 3분의 고향에 데려가 주십시오.”
“이미 한 번의 기회를 놓쳐버렸는데 다음에 또 같은 기회가 올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홈을 벗어나 출구로 나왔다. 감응신령이 호랑이를 데리고 있는 데도 사람들은 보지 못하였다. 남부역 광장에 빈 택시가 서있는데 감응신령을 모시러 나온 차는 없었다. 
 
“우리 함께 걸어가세.”
“오늘은 차가 안 나왔군요.”
“온갖 잡신들이 많이 생겨나서 너나없이 배차신청配車申請을 하는 바람에 차 타기가 힘들어졌어.”
“신의 세계도 무질서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인간들이 사악해져 가니까 신들도 사악해져 가는 것일세.”
“사악한 신들을 퇴치할 방법이 없을까요?”
“자네는 사악한 인간을 퇴치할 수 있나?”
“없습니다.”
“신의 세계도 마찬가지야. 그러나 사악한 귀신을 퇴치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불태워 버리면 그들이 죽을 거야.”
“불태워버리면 된다……. 자체발화를 말씀하시는 군요.”
 
나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배달나라시대에 한웅천왕께서 무여율법無餘律法에 그런 자들을 불태워 죽이라고 규정해 놓았어.”
“화장터를 만들려면 시설비가 필요하겠지요.”
“돈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지.”
“어떻게요?”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이니까 시설비 따위는 필요 없어.”
“누가 재판을 합니까?”
“자네가 재판을 하게. 자내가 재판을 한다면 영계 터미널에서 용인할 거야.”
“사형 판결을 내리겠군요.”
 
나는 문득 사기꾼이 떠올랐다. 백호의 코를 실험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사악한 자가 어떠한 자인가를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사기꾼을…….”
“사기꾼만이 아니야.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나서는 구원자救援者를 자처하는 자들 중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자들을 불태울 수 있지. 실습을 하고 싶으면 누구든 데려와서 실습을 해도 좋아. 윤허한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공터에 집어넣으면 그것으로 끝이야. 불태우는 일은 그자가 자기 스스로 하게 될 거야. 자네 자체발화를 당할 만큼 잘못을 저지른 적은 없는가?”
“맹세코 없습니다.”
“백호가 자네가 무죄함을 판단해 줄 거야.”
 
나는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삼거리의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 와우고개 길로 들어섰다. 신호가 바뀌어서 내려오는 차는 좌회전하여 역 쪽으로 나가고 올라가는 차는 우회전하여 와우고개로 들어섰다. 
 
“자네하고 딜 할 것이 하나 있는데…….”
“딜요?”
“「하백녀민원」을 해결하자는 뜻이야.”
“무엇을 딜 합니까?”
“공무원들을 협박해.”
“협박이요? 제게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잘 알지. 그래서 능력을 실험해 볼 겸 하라는 것이야.”
“대신에 제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사기꾼을 죽여주지.”
“너무 파격적입니다.”
“내가 이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에 자네와 나 사이에 계약은 성립이 된 것일세.”
 
감응신령의 일방적인 통보이므로 신의 명령이라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접수하겠습니다.”
 
그러나 기분은 좋지 않았다. 
 
“자네. 혁거세와 근화를 만나기로 하였지?”
“네.”
“그들이 산신각으로 오면 자네에게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도록 내가 시킬 것이야. 그것도 자주. 그들이 교대로 열나게 와야 할 거야. 내가 그렇게 시킬 것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군요.”
“그럼 오지 말라고 할까?”
“아닙니다.”
“그럼 이것도 계약이 성사되었네.”
 
감응신령이 내게 주겠다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실어가려면 마누라가 끌고 다니던 라노스 고물차 연두색의 08누9993을 팔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아보았자 고철 값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누라는 라노스를 닦고 광을 내며 자식처럼 사랑하였다. 
 
“그곳에서 새 역사가 시작될 거야. 자네의 핸드폰에 내가 가끔 자료를 넣어 둘 테니 꺼내어 쓰도록 하게. 핸드폰에 들어 있는 자료를 읽으면 황당하다는 생각이 아니 들 것이야. 그것은 역사를 기록한 것이니까.”
 
우리는 내 집 앞에 도착하였다. 와우고개 길 가에 있는 연립주택의 3층 2호에 내가 살고 있었다. TV만 틀지 않으면 언제나 조용한 집이었다. 밤이 되면 집 주변에서 영기靈氣를 느낄 수 있었다. 와우고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영기였다. 
 
“자네 가끔 부천지역방송 중에서 뉴스를 보게. 복숭아나무에 벼락이 치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폭우가 쏟자지고 와우고개 길로 빗물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날 무조건 관음사 앞으로 달려가. 갑자기 벼락에 놀라 정신이 돌아버린 젊은 여자가 쓰러져 있을 거야. 이 여자가 배가 만삭일 거야. 무조건 주지승에게 데리고 가. 그러면 주지승이 아기를 낳도록 도와줄 거야. 내 말 듣고 있나?”
“듣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사내아이이면 격암이 예언한 도부신인일 거야. 내가 지금 좌정해 있는 산신각을 떠나서 관음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까 필요하면 내게 도움을 요청해.”
“아기를 낳는데 무슨 도움이 필요하겠습니까?”
“자네가 도착하기 전에 영계인이 와서 산모를 데려가면 그날이 이 나라의 운명이 다한 날인 줄 알아. 자네에게 이 나라의 수명을 늘려 줄 책임이 있어. 홍익인간을 실천해 오고자 한 나로서 자네를 내 곁에 붙잡아 두고 소나 말처럼 부려왔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내가 자네에게 무슨 도움을 주었다고 산신각 일지에 기록하겠나.”
 
듣고 보니 너무나 황당하기도 하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말이었다. 
 
“명심하여 살피겠습니다.”
 
나는 산신과 헤어져 산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하였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