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나는 조선호텔의 커피점에서 애신각라 선생을 만나기 전에 혁거세 선생과 근화 두 사람과 통화하였다. 삼산을 돌아서 그런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맑았다. 

나는 부천을 출발하여 애신각라 선생과 가이드를 만나기 위하여 코리아나호텔 커피점으로 들어가 두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이 커피점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커피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시작하였다. 여자 가이드가 통역하였다.
 
“저는 어제 부천에 있는 청룡산에서 홍타이지 황제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시종이나 호위하는 군사도 없이 그 야산에 혼자 있었습니다.”
 “홍타이지 황제가 드디어 거리검 선생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제가 20년 동안 혼자서 저온 짐을 벗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가 진 짐이 내게로 오고 있었다.
 
 “그 대신에 제 어깨가 무거워 집니다.”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홍타이지 황제께서 혹시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시던가요?”
 “저를 만나러 오신 것 같았습니다. 저 이외에 여배우도 만났고, 파출소 순경도 만났습니다.”
 “홍타이지 황제는 고와 살을 풀어 줄 무당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그 무당을 불렀습니다.”
 “그래요?”
 “애신각라 선생 앞에 앉은 젊은 분입니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옆에 앉은 분은 여무의 스승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애신각라 선생이 탄성을 질렀다. 
 우리는 저녁에 제천단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만나면 천제를 지내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이명지와 이숙에게 알려 주었다. 이숙과 이명지가 바로 진한리를 출발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제사 준비는 혁거세 선생이 하기로 하였다. 이번 제사에 계주 팀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혁거세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까 드리지 못한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간밤에 부천에서 크게 교통사고가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예지몽 같은데 오늘 큰 교통사고가 날지 모릅니다. 제게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전화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그의 꿈대로 교통사고가 일어난다면 큰일이었다. 
 불길하게도 홍타이지 황제가 말한 대로 벌써 재앙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경이 신고 받고 출동했던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어제 밤에 소음신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출동 나왔던 경찰이 발을 다쳐서 119 구급차에 실려 보냈는데 경과가 어떻습니까?”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그분이 무어라고 전한 말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고집불통이군.”
▲ 소사역 앞에서 바라본 성주산. 함지박을 엎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 순경이 부천에 재앙이 닥치게 될 것이라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재앙이 일어난다고 해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 큰 재앙이 계속해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각자 자기가 있는 곳을 출발하였다. 나는 고강동 청룡산으로 가기 위하여 와우고개로 올라오는 삼거리로 걸어 나갔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교통이 통제되고 있었다. 교통순경들이 차들을 그곳에서 그대로 소사 쪽으로 빼고 있었다. 
 
 “시흥으로 가는 차는 소사 쪽으로 가서 여우고개로 올라가십시오.”
 
 교통순경이 말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대형교통사고입니다. 마을버스의 브레이크가 터져 뒤에서부터 신호대기 중인 차 10여 대를 치고 내려와 차들이 피해가 많습니다.”
 
 교통순경이 말하였다.
 혁거세 선생의 꿈이 맞아서 예지몽이 된 것이었다. 
 
 “교통이 막혀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혁거세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알겠습니다. 나는 지금 제천단으로 가고 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나는 남부광장으로 걸어와 택시를 잡아탔다.
 
 “선사공원으로 가십시다.”
 
 내가 말했다.
 이숙과 이명지가 함께 오는 차도 선사유적지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1시간을 사이에 두고 제천단에서 만났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하였다. 
 나는 홍타이지 황제가 어디엔가 있을 것 같아서 사방을 찾아보았다. 홍타이지 황제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노인이 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인도 찾아 보았다. 그러나 노인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 가이드가 애신각라 선생을 데리고 제천단으로 올라왔다. 
 
 “어서 오세요.”
 
 내가 먼저 인사했다. 
 애신각라 선생이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 산을 청룡산이라 하는데 동쪽으로 천왕산의 끝자락에 있습니다. 옛날에 서쪽으로는 부평의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서북쪽으론 지금도 김포평야가 붙어 있습니다. 동북쪽으로는 주택가가 된 서울의 강서구, 영등포구가 붙어 있습니다. 옛날엔 다 평야지대였던 곳입니다. 남쪽으로는 할미산, 성주산, 소래산이 붙어 있는데, 소래의 들판의 끝에 소래포구가 있습니다. 소래포구가 고대에는 산동반도에서 한반도의 중심부로 들어오는 교두보가 된 곳입니다. 이 곳 제천단은 이들 들판의 중심에 있습니다.”
 
 나는 애신각라 선생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하여 설명해 주었다. 제사에 참가할 사람들이 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제천단에 모두 모였다.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제사를 지내는 일이었다.
 
“이곳의 제천단은 고졸하고 단순합니다.”
 
 애신각라 선생이 말하였다.
 
 “중국의 제천단은 3단으로 되어 있지요?”
 “그렇습니다.”
 “안내판에는 선사시대의 제천단이라 했는데, 유구의 형상이 경주 나정의 유구와 같은 점으로 보아서 선사시대의 것이 아니라 삼한시대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삼한시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체모탁국의 제천단으로 보아도 되겠군요.”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제천단과 천제단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혁거세 선생이 물었다.
 
 “제천단은 천제를 지내는 원형의 단이고, 천제단은 지제를 지내는 방형의 단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천제를 지내야 하겠군요.”
 
 혁거세 선생이 말하였다.
 
 “홍타이지 황제시여. 황제가 원하시는 대로 우리가 천제를 지낼 것입니다.”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홍타이지 황제에게 말하였다.
 
 “국신이나 찾아 주시게.”
 
 홍타이지 황제가 영으로 나타나 말하였다.
  혁거세 선생이 상차림을 하였다. 제물은 많지 않았다. 익힌 제물은 없었다. 제기를 큰 것으로 준비하였으므로 제물을 많이 담을 수 있었다. 
 
 “애신각라 선생이 초헌관이 되어 주십시오.”
 
 내가 애신각라 선생에게 청했다.
 
 “제가 초헌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래야 홍타이지 황제와 교통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렇겠군요.”
 “아헌은 이명지 선생이 해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이명지에게 청했다.
 
 “그렇게 하겠네.”
 
 이명지가 승낙하였다.
 
 “종헌은 이숙 선생이 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이숙 씨도 승낙하였다. 
 
 “홀기와 축은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홀기와 축을 맡았다. 
 계원들은 집준자와 집사와 시자를 맡았다. 이로서 제사지낼 사람들과 부서가 정해진 것이었다. 
 오늘 굿을 나는 계주의 양해를 구하고 근화에게 맡겼다. 산천거리와 칠성거리만 하도록 하였다. 고와 살은 칠성거리에서 풀도록 하였다. 나는 제사를 진행시켰다. 부정을 풀고 소지하고 향을 사르고 헌작으로 넘어갔다. 굿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근화는 산천거리에서 조상들을 청배하였고, 칠성거리에서 고와 살을 풀었다. 고와 살을 다 풀고 났을 때, 
 
 “새로운 조상이 들어오십니다.”
 
 근화가 말하였다.
 
 “홍타이지 황제가 드셨느냐고 물어보아라.”
 
 내가 말했다.
 
 “홍타이지 황제가 드셨습니다.”
 
 근화가 말하였다.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지 물어보아라.”
 
내가 말했다.
 
 “동왕성모를 모시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청동팔주령을 근화에게 주었다. 근화가 청동팔주령을 흔들었다.
 
 “동왕성모가 들어오십니다.”
 
 근화가 말하였다. 
 
 “공수를 내려 달라고 주청 드려라.”
 
  계주가 말하였다.
 
 “동왕성모께서 공수 한 말씀 내려 주십시오.”
 
 근화가 동왕성모에게 말하였다. 
 
 “국신의 행방이 묘연하게 된지 오래 되었다. 이제 국신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으니 찾아서 모시도록 하라.”
 
 동왕성모가 말했다. 
 
 “성모께서 국신을 찾아 성주산에 좌정시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근화가 말하였다. 계주가 가까운 데에 서있는 소나무로 가더니 솔가지를 하나 꺾어 왔다. 솔가지를 제단에 모셨다. 
 
 “근화의 신당에 동왕성모님을 모시겠습니다.”
 
 계주가 말하였다. 
 
 “동왕성모님을 좌정시켜 드릴 곳을 정해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성주산에 가면 동왕성모님을 모실 집이 하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근화가 말하였다. 제사가 다 끝났다. 우리는 제천단을 떠났다. 와우고개 삼거리에 오니 교통사고 현장은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몇 사람이 죽었고 몇 사람이 병원에 실려가 입원하였다. 우리가 탄 차들이 와우고개 길로 접어들었다. 교회 옆길로 들어가면 지은 지 30년 쯤 된 집들이 있었다. 근화가 탄 차가 한 집 앞에 멈추었다. 근화가 솔가지를 앉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집이었다. 집안에서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가 동왕성모의 좌정 처였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한민족원로회로부터 유 선생이 건 전화였다. 
 
 “다음 달에 세미나 부탁합니다. 제목은 거리검 선생이 정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근화가 갑자기 실신했다. 그녀의 영이 서해의 신인 황해장수 할머니에게 이끌리어 서해바다로 가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배들이 연속적으로 물속에 빠지고 있었다. 어선이 빠졌고, 로로선이 빠졌고, 군함이 빠졌다. 많은 사람들이 물속에서 아우성치고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들 중 일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근화는 다리가 후들거려 더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백녀를 찾아라.”
 
 누군가 큰 소리로 웨치고 있었다.    
 
<1부 끝>
 
 
▲ 노중평 작가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