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화가 계주와 함께 삼산을 밟으러 떠나던 날 나는 진한리에 사는 친구 이명지로부터 카카오 톡을 받았다.

“진한리에서 이숙이라는 관광요식업을 하는 여자가 있는데, 자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이상한 생각이 들게 하더군. 혹시 결혼 약속이라도 했다가 헤어진 여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네가 허락한다면 이 여자와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진한리에 와서 하루나 이틀 묵었다가 가는 것이 어떨까? 답신 바람.” 

나는 이숙이라는 여자를 만난 적이 없었고 알지도 못하므로 만날 이유가 없다고 답신을 보냈다. 

“이건 실망인데. 머리를 식힐 겸 내려와 봐. 오래간만에 나도 만나고 싶으니.”

명지가 그렇게 나오니 아니 갈 수 없었다.

“바람 쐬고 술 한 잔 하러 내려가지.”

나는 답장을 보냈다. 내가 보기에 진한리는 안개에 싸인 곳이다. 나는 이곳의 안개 낀 고읍古邑을 무대로 하여 소설을 한 편 쓴 적이 있었다. 고대전쟁에 희생당한 불행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였다. 소설에 쓴 사건이 재연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이 소설 『진한리에서』를 읽었을지 모른다. 아마 이숙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이명지는 그곳에 있는 폐교 직전의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이명지는 진한리에서 청동팔주령을 습득하여 내게 보냈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한민국 땅에서 이 물건의 주인이 될 사람은 저네 이외에는 없을 것 같아서 보내는 것이야.”

나는 이명지와 카카오 톡을 주고받고 나서 혁거세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아직도 첫째 산에 있었다. 아직 밟아야 할 산 2개가 더 남았다. 

“진한리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그 고장입니까?”

“그렇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그곳에 다녀오시면 생활에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통화를 끝냈다.

“생활에 변화가 있을 것 같다니 무슨 말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다음 날 아침에 집을 나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대구에 가서 내려 진한리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진한리에 도착하였다. 진한리는 소설에서처럼 안개는 끼어 있지 않았다. 고즈넉한 정적에 싸여 있었다. 나는 터미널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탔다. 아직도 1시간은 더 달려 오지로 들어가야 하였다. 나는 오지에서 내렸다. 이제부터 학교는 멀지 않았다. 나는 진한중학교라는 간판이 붙은 학교로 들어갔다. 학교 문은 열려 있었고, 마당에 학생은 없었다. 이명지는 이 학교에서 교장선생 겸, 담임선생 겸, 서무선생 겸, 소사겸, 여러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가 교실의 창가에 서서 교문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건물 밖으로 나와서 나를 맞았다.

“폐교가 되기 전에 잘 왔어. 자네가 마지막 방문자가 되겠군.”

“아직 폐교 명령이 안 떨어졌나?”

“이번 학기가 수업 끝이야.”

학생들은 인근에 있는 학교로 몽땅 전학하게 되어 있었다. 그도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내가 진한리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나를 초대한 여자가 어떤 여자야?”

“자네처럼 신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여자야.”

“그래?”

“음.”

“자네가 국신을 찾아 준다면 잘 섬길 여자야. 자신의 전생이 소도의 하백녀였다고 믿는 여자이니까,”

“국신?”

“이 나라에 국신이 있었다더군.”

“국신이 있었지. 자기가 소도의 하백녀였다고?”

“음.”

나는 춘추전국시대 말에 모국에 있는 소도를 떠난 하백녀가 소래를 거쳐 개마대국에 들어왔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이숙이라는 여자의 전생이 개마대국에 들어온 하백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대화를 하다보면 그녀의 전생이 밝혀질지 모른다. 

우리가 대화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예쁘게 생긴 여자가 바람처럼 나타나 교실로 들어왔다. 눈이 크고 형형하여 아랍 쪽 여자의 인상을 풍겼다. 이숙은 몇 가지 색깔의 구슬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 옷은 서역의 비단으로 만들어 현란하게 보였다. 서역풍의 저고리는 노란 색이었고, 긴 치마는 붉은 색이었다. 머리에 수놓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두 분이 인사하지. 이쪽은 제 오랜 친구이자 단 하나 뿐인……. ”

“거리검이라 합니다.”

“저의 이름은 이숙이고,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이 친구에게서 이 사장님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으니 제집으로 가시지요.”

이숙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숙이 가자는 대로 따라 나섰다. 

“이 고장은 마치 숨겨놓은 보석과 같은 곳입니다.”

내가 말했다. 

“잘 보셨습니다.”

이숙이 말했다. 고즈넉한 하늘, 이숙의 아름다움과 서역을 느끼게 해주는 고전풍의 패션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이상하게도 이숙은 내가 소설 『진한리에서』에서 쓴 여 주인공의 이름과 같은 이름이었다. 나는 그 소설에서 이숙을 진한시대에 있었던 12소국 중의 하나인 이서국의 마지막 왕녀로 등장시켰다. 이서국은 지금의 청도에 있었으므로 진한리와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숙의 집 고택古宅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산 밑에 집이 있는데, 별장처럼 지은 신옥이었고, 그 집 옆에 옛날 한옥이 한 채 서있었다. 집 앞에 자연히 생긴 것으로 보이는 큰 연못이 있었다. 백로, 오리, 원앙 이런 새들이 보였다. 다른 집들은 없고 그 집만 있었다. 식당 이름이 [진한]이었다. 이숙은 나를 한옥으로 안내하였다. 대청이 있는 한옥이었다. 한복을 입은 여직원들이 우리를 맞았다. 여직원이 안내한 대청에 잔치 상이 차려져 있었다. 나를 위하여 상을 차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직원이 상을 덮은 천을 젖히니 차려진 음식들이 드러났다. 대충 보니 30가지가 되는 것 같았다.

“저를 위하여 차리신 것입니까?”

나는 놀라서 물었다.

“네.”

“감사합니다.”

“앉으세요. 거리검 선생님이 연못이 바라보이는 이쪽에 앉으세요.”

나는 이숙이 권하는 대로 연못이 내다보이는 쪽에 앉았다. 나는 음식을 들었다. 이숙은 내게 술을 권했다. 음식은 정갈스럽고 맛이 있었고, 술맛도 독특하였다. 꽃의 향이 입속을 감돌았다. 

“반찬이 맛이 좋고 술 맛도 참 좋습니다.”

“제 집에 오시는 손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숙에게도 술을 권했다. 이숙도 술을 마셨다.

“이 사장님의 복장이 특이합니다.”

나는 이숙의 서역적이고 고전적인 패션을 칭찬하였다.

“사장님이라는 호칭은 빼고 이숙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렇다면 이숙 선생이라 해야 하겠군요.”

나는 이숙 선생으로 부르기로 하였다.

“제가 어려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도굴 현장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나이가 너무 어려서 그것이 도굴인지 뭔지 몰랐습니다. 몇 가지 옛날 유물이 땅 속에서 나왔고, 아직 덜 삭은 옷가지도 나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입는 옷이 아니라 옛날 사람이 입었던 옷이었습니다. 도굴꾼은 옷을 현장에 버렸습니다. 옷은 곧 삭아 재처럼 되었습니다. 내가 이런 옷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패션을 세상에 발표하셨습니까?”

“아뇨. 그런 적이 없습니다.”

“왜요?”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이숙이 웃으며 말하였다.

“이 선생이 내겐 낯설지 않습니다.”

“저도 그래요.”

“어디에서 만났을까요?”

“글쎄요.”

“전생에 만난 거야.”

이명지가 말하였다.

“전생이라…….”

내가 중얼거렸다.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가 쓴 소설 『진한리에서』에 나오는 이숙과『우체모탁국』에 등장하는 도주塗主가 닮은 형의 인물인데 두 여자가 실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숙 선생은 『우체모탁국』을 읽었나요?”

“읽었습니다.”

“같아 보이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우체모탁국은 삼한시대 초기에 소래와 부천 땅에 걸쳐 있다가 백제의 침략을 받고 사라진 소국이었다. 격암 남사고 선생은 조선왕조 명종 때, ‘성주산에서 소울음소리가 울리면 우체모탁국이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나는 그 예언이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그 소설을 쓴 것이었다. 사람들은 나의 이러한 꿈을 어처구니없어 할 것이다.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술상 앞에 앉아 있었다. 호수 가에 서있는 정원등에 불이 켜졌다. 주위는 어두웠고 등이 켜진 곳만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옵니까?”

내가 물었다.

“한국 사람들보다 중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옵니다. 한식 [진한]은 중국과 일본엔 알려진 광광명소입니다.”  

“그렇군요.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을 탄 것입니다.”

“입소문을요! 그렇다면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종업원이 3번 째 술 주전자를 가져다 놓았다. 

“사장님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여종업원이 말하였다. 

“그래요?”

내가 감탄했다. 아마 이숙의 미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숨겨진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숙의 미모를 따질 나이가 아니다. 미모를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할 나이이다. 여종업원이 자리를 떠났다. 

“조선족 여성입니다.”

이숙이 말했다. 밝지 않은 불빛임에도 불구하고 불빛이 하늘에 뜬 별빛을 잡아먹고 있었다. 정원등을 끈다면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검 선생님, 이 선생 하숙방에 가면 혼자서 사는 분이라 주무실 곳이 마땅치 않을  것입니다. 제 집에 방을 하나 드릴 테니 제 집에서 주무세요.”

이숙이 말하였다.

“숙박비는 드리겠습니다.”

“숙박비는 필요 없습니다.”

밤 10시 경에 술자리를 파했다. 이명지는 숙소로 돌아갔다. 

“제가 주무실 방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숙이 내가 잘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안채에 있었고, 이숙이 쓰는 방의 건넌방이었다. 

“혹시 댁에서 침대에서 주무셨나요? 그렇다면 불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방바닥에서 잡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방 한쪽에는 욕실이 붙은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책상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손님에게 제공하는 방입니까?”

“특별한 손님에게만 제공하는 방입니다.”

“제가 특별한 손님이군요.”

“제 인생에서 가장 귀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제가요?”

“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USB를 꽂고 글을 쓰셔도 좋습니다. 글을 쓰셨으면 USB는 가져가세요. 목욕을 하셔도 좋습니다. 더운 물이 나올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상의를 벗으세요. 걸어드리겠습니다.”

나는 상의를 벗어 이숙에게 주었다. 이숙이 상의를 받아서 옷장 안에 걸었다. 

“핸드폰이 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숙이 말했다. 청동팔주령이 진동하고 있었다. 북극오성에서 오는 진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웃옷 주머니에서 정동팔주령을 꺼냈다. 진동하는 청동팔주령을 보자 이숙이 놀랐다. 

“놀라지 마세요.”

나는 이숙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청동팔주령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별과 교신을 하는 군요.”

이숙이 내가 하는 말을 다 듣고 나서 말했다. 

“별뿐만 아닙니다.”

“또 있나요?”

나는 감응신령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선생님에게 드릴 청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실은 내일 중국에서 손님들이 오는데 그분들에게 별과의 교신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면 해서요.”

“그렇게 하시지요.”

“고맙습니다.” 

이숙이 청동팔주령을 내게 주고 방을 나갔다. 나는 노트북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무엇이든 글을 쓰지 않으면 아니 될 것 같아서였다. 혼자서 고요 속에 갇혀 있으려니 정신집중이 용이하였다. 나는 최근에 내가 겪은 일들을 소설 형식으로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한참 글을 입력하고 있는데, 이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이숙이 들어왔다. 

“글을 쓰고 계셨군요.”

“네.”

“너무 궁금해서 참지 못하고 다시 왔습니다.”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숙에게 내가 쓴 원고를 보여 주었다. 

“무당이 청동팔주령을 가지고 있군요.”

이숙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그 무당은 새내기 무당인데 내가 이 청동팔주령을 넘겨주어야 할 무당입니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요?”

“내 눈 앞에서 감응신령이신 단군왕검이 직접 세우신 무당이니까요.”

“그 무당이 시대적 사명을 타고났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감응신령이 제게 그 무당의 신장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가 전혀 모르는 세계에서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군요.”

“그렇습니다.”

“제게도 참여할 기회를 주세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연구해 보도록 하십시다.”

이숙의 얼굴이 밝아졌다. 무엇인가 숙제를 푼 학생의 얼굴이 되었다.  

“이 청동팔주령을 흔들어 보세요. 팔여의 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숙이 청동팔주령을 흔들었다. 특이한 음색의 방울소리가 울렸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까?”

이숙은 느끼는 것이 없어 보였다.

“삼성대왕을 불러 보세요.”

“삼성대왕을요?”

“네. 한인, 한웅, 단군왕검 세분을 삼성대왕이라 합니다.”

“그냥 호명하면 됩니까?”

“네. 차례로 호명하세요.”

이숙이 삼성대왕을 차례로 호명하였다. 

“아마 삼성대왕이 쿼크 홀로그램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듯이 부르세요.”

이숙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세 분의 대왕이 현신하셔야만 이 선생이 내가 시키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숙이 순간적으로 팔여의 음의 상태로 들어갔다. 

“삼성대왕 중에서 한 분이 현신하십니다.”

“그분이 누구라고 느껴집니까?”

“단군왕검으로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되었습니다.”

이숙이 내게 청동팔주령을 넘겨주었다. 

“삼성대왕을 현신하게 할 수 있는 분이 우리나라에 몇 분이나 있나요?”

“내가 알기로 저를 빼고 단 한 분도 없습니다.”

“그래요?”

“사실입니다.”   

“오직 선생님만이 삼성대왕이 현신하게 할 수 있는 비밀을 알고 계시군요.”

이숙이 감탄하였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삼성대왕풀이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고려시대 무가입니다.” 

이숙이 낮은 목소리로 읽었다.

질병 가져가실까 삼성대왕

액운 앗아가실까 삼성대왕

질병과 액운이 있을 진대

질병 액운을 없애 주소서

앞다리 끝다리 삼성대왕

내려와 있을 진대

다음 날 저녁 무렵에 30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도착하였다. 그들은 대형 버스 한 대에서 내려 고택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한국 회원 10여 명이 중국회원 10여 명, 모두 30여 명이었다. 나이가 거의 다 60이 넘은 사람들이었다. 여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여기저기를 카메라로 찍었고, 삼삼오오로 나뉘어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가이드는 한국인 여자였다. 이숙이 여자 가이드와 무엇인가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여자 가이드가 중국인들에게 무어라고 말하였다. 여자 가이드가 내게로 왔다. 그는 한중우호협회韓中友好協會라는 단체에서 파견된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선생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한중우호협회에서 나온 가이드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일박할 것입니다. 내일은 김해로 갑니다. 저녁 식사 후에 2시간 자유의 시간이 있습니다. 중국인들에게 도움이 될 말 한 말씀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떤 말을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역사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해 드리지요.” 

“제가 통역을 하겠습니다.”

가이드가 중국인 관광객들이 있는 고택 안으로 들어갔다. 

이명지가 학교에서 퇴근하여 이숙의 집으로 왔다. 우리도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쉬고 있으려니 가이드가 중국인 관광객을 연못가에 모아 주었다. 조명등을 모두 꺼서 별들을 볼 수 있었다. 이숙과 이명지가 멀찍이 떨어져 나를 바라보았다. 가이드가 중국인 관광객에게 나를 소개하였다. 

나는 삼성대왕에 대하여 설명해 주기로 하였다. 

“한국에는 3분의 시조 할아버지들이 계십니다. 1만 년 전에 한국을 세운 한인천제, 6,000년 전에 배달나라를 세운 한웅천왕, 4,300년 전에 조선을 세운 단군왕검 세분입니다. 이분들을 삼성대왕이라 합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을 올려다보십시오. 별이 되신 이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머리 위 하늘을 가리켰다. 주변이 어두워서 그런지 북극오성이 희미하게 보였다. 전등이 있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별들이었다. 나는 북극성을 지적하였다, 

북극성에서 완만한 곡선을 그으며 황후성, 서자성, 천제성, 태자성이 뻗어 나와 있다. 작은곰별자리의 꼬리별에 해당하는 별자리였다. 실제로 곰에겐 이토록 긴 꼬리가 없지만 존재하지 않는 곰의 꼬리에 한민족의 시조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옛날에 점성가들은 이 별자리를 북극오성이라 하였습니다. 아마 경주에 가 보신 분은 첨성대 옆에 있는 오릉五陵을 보셨을 것입니다. 이 오릉이 북극오성을 경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가이드가 내가 하는 말을 통역하느라고 길게 설명을 붙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청동팔주령을 꺼내 들었다. 핸드폰을 켜니 청동팔주령의 형상이 보였다. 그것은 청록이 슬어 있었고, 가운데가 균열이 생겨 있었다.  

“혹시 산동반도에서 오신 분들이 있습니까?”

가이드가 모두 산동반도에 연고를 둔 사람들이라 하였다. 

“혹시 봉래나 묘도에서 오신 분이 있습니까?”

봉래나 묘도에서 온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북경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제가 중국인이 숭상하는 마조媽祖를 불러보겠습니다.”

마조는 우리 무교에서 대신 할머니로 불리는 분이다. 대신 할머니는 곧 마고 할머니다.  마조 쿼크가 발생시키는 미세한 파장을 내가 청동팔주령을 울려서 잡을 수만 있다면 마조의 현신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눈을 감고 마조를 떠올렸다. 마조의 파장과 마고의 파장을 일치시켜야 하였다. 나는 마고와 마조를 같은 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마고와 마조의 파장을 하나로 일치시키기 위하여 고도로 집중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청동팔주령이 만들어 낸 팔여의 음의 파장이 발해만으로 가기 시작하였다. 중국은 도처에 마조상이 있다. 이들 마조상 쿼크가 같은 성질의 파장을 발산하기만 한다면 청동팔주령에서 나가는 파장과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였다. 나는 공명 파장이 내게 전달되어 오기를 기다렸다. 아마 이 파장이 발산되는 곳이 황후성일 것이다. 

과연 마조의 파장이 홀로그램으로 현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파장이 내게는 황후성의 파장이었고, 마고대신의 파장이었다. 나를 파장이 둘러싸고 있었다.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파장이었다. 나는 몸으로 그 파장을 느끼고 있었다.

“마조상이 현신하셨습니다.”

내가 말했다. 마조상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보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조상을 본 사람들은 마조상을 향하여 경배하였다. 

“다음엔 마고와 유사한 파장을 발산하는 한웅천왕이 현신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나는 팔여의 음 중에서 명서풍을 발산시키는 파장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 파장은 내가 만들고 싶다고 하여 만들어지는 파장이 아니었다. 서자성으로부터 오는 파장이 청동팔주령에서 울리는 파장에 감응하여야만 되는 것이었다. 감응이 오기 시작하였다. 감응의 파장이 홀로그램을 하나 만들어내었다.

“한웅천왕의 파장이 현신하셨습니다.”

내가 말했다. 내게서 마고의 파장이 멀어져가고 서자성의 파장이 둘러싸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도 한웅천왕의 파장이 만든 홀로그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파장을 느끼는 사람은 홀로그램을 향하여 절을 하였다. 

“이번엔 한인천제의 파장을 현신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청동팔주령을 흔들었다. 그러자 한인천제의 파장이 만든 홀로그램이 나타났고 한웅천왕의 홀로그램이 멀어져 갔다. 

“이번엔 단군왕검의 홀로그램이 나타나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청동팔주령을 흔들어 단군왕검의 파장이 만든 홀로그램이 나타나도록 하였다. 단군왕검의 홀로그램은 내가 산신각에서 만난 산신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감응신령이었다.  

“신들을 부르는 춤을 출 수 있느냐?”

감응신령이 내게 물었다. 나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감응신령이 내게 춤의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 춤은 「천부경」의 ‘일석삼극一析三極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을 형상화 한 춤이었다. 우보牛步로 1보 앞으로 나가고, 이어서 3보 앞으로 나가고, 좌로 원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이 춤의 기본형이었다. 이 춤을 반복하면 일적십거무궤화一積十鉅無匱化가 형상화 되는 것이었다. 이 춤을 달리 천지인무天地人舞라 말할 수 있다. 석삼극析三極에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춤을 출 때는 팔여의 음을 팔풍八風으로 변환시키는 데 필요한 부채가 필요하였다. 나는 안주머니에서 쥘 부채를 꺼냈다. 아주 작은 부채였다. 나는 감응신령이 시키는 대로 천지인무를 추어 시범을 보이기로 하였다.

나는 발해를 향하여 부채질 하여 영등풍을 일으켰다. 황후성에서 보내주는 파장이 감응하면 영등풍이 일어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자 마고대신의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이어서 또 발해를 향하여 부채질하여 명서풍이 일어나도록 하였다. 명서풍을 타고 한웅천왕의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이어서 융풍을 일으켰고, 융풍을 타고 한인천제의 바람이 불어왔다. 마지막으로 청풍을 일으켰고, 청풍을 타고 단군왕검의 바람이 불어왔다. 그렇게 하자 마고대신과 삼성대왕이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동이족의 최고조상을 만나셨으니 예를 표하십시오.”

내가 말했다. 모든 사람이 다 절했다. 한 중국인 남자가 가이드를 통하여 궁금한 것을 질문해 왔다. 

“오늘날 마고대신과 삼성대왕의 영이 무슨 일을 합니까?” 

“마고대신은 최고신으로서 후손의 생사를 주관합니다. 한인천제는 화복을 주관합니다. 한웅천왕은 무당이 굿을 할 때 하늘 문을 열어주는 일을 합니다. 단군왕검은 감응신령으로 무당에게 오셔서 무당이 하는 일을 돕습니다.”

문득 내 귀에 회소! 회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회소란 한자로 쓰면 회소會蘇였다. 소도에 모이라는 뜻이다. 이곳이 소도이니 사람들은 소도에 모여야 하였다. 이미 우리는 소도에 모여 있었다.

“여러분은 지금 소도에 모여 있습니다. 소도가 산동반도 쪽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산동반도의 원주민이라면 동이족의 후예입니다.”

내가 말하였다.

내 눈에 근화가 물동이를 타는 영상이 보였다.

물동이는 동이족을 상징한다.

나는 춤을 추었다. 춤이 절로 추어졌다. 놀라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따라 춤을 추었다. 드디어 춤이 끝났다. 

“이상으로 회소를 마치겠습니다.”

 내가 말하고 청동팔주령을 주머니에 넣자 회소는 끝이 났다.

“오늘 신비스러운 행사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 가이드가 중국인들을 대신하여 내게 인사하였다.

내게 질문했던 사람이 가까이 다가왔다.

“저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입니다.”

내게 질문한 한 사람이 말했다. 애신각라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청태조淸太祖 누루하치努尔哈赤의 후손이라는 뜻도 있다. 

“반갑습니다.”

나는 손을 내밀어 그와 악수하였다. 따뜻한 손이었다. 그가 내게 준 명함을 보니 그는 직함이 화려하였다. 여러 개의 총비서직을 맡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에 띠는 것이 ‘역사당안관歷史檔案館 명예회원’이라는 명칭이었다. 역사당안관이란 우리말로 ‘역사문서고歷史文書庫’라는 뜻이다. 

“애신각라 선생은 중국에서 서법書法의 대가요 시인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여자 가이드가 말하였다. 

“저는 선생님의 역사소설을 좋아 합니다.”

애신각라 선생이 말하였다. 내가 쓴 역사소설은 2권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쓴 2권의 소설은 삼한시대에 출현하였다가 사라진 우체모탁국優體牟涿國과 진한시대 사람들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었다. 그들은 제나라와 노나라의 침략을 피하여 소래를 거쳐 한반도로 넘어온 사람들이었다. 순전히 허구의 창작물이었다. 

“기회가 닿으면 선생님과 함께 우체모탁국의 역사현장을 보고 싶습니다.”

애신각라 선생이 말하였다.

“기회를 한 번 만들어 보시지요.”

이숙이 말하였다.

“귀국하시기 전에 한 번 가 보십시다.”

내가 말하였다.

“제가 다른 분들을 다 보내 드리고 나서 애신각라 선생을 모시고 갈게요.”

여자 가이드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내가 승낙하였다.

“소설에 나오는 여자 분은 실제 인물입니까? 아니면 가공의 인물입니까?”

애신각라 선생이 물었다. 

“가공의 인물입니다.”

“가공의 인물로 보기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내가 질문하였다.

“제나라 군대에게 쫓겨 한반도로 넘어간 피난민 속에 그런 여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여자가 소도의 도주塗主인 하백녀河伯女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하백녀를 지키려했을 테니까요.”

“가능한 말입니다.”

“마조의 후예라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애신각라 선생이 가자는 대로 몇 그루의 나무가 서있는 곳으로 갔다. 여자 가이드가 따라왔다. 어두워서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었다.

“하백녀의 후예나 하백녀의 신명을 받은 여인을 찾을 수 없을까요?”

애신각라 선생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감한 질문이었다. 

“글쎄요…….”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혁거세 선생에게 하백녀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붙여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산신각에서 감응신령과 대화한 실력이라면 가능할 수 있었다. 나는 혁거세 선생에게 전화를 넣었다. 혁거세 선생이 나왔다.

“혁거세 선생!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무슨 부탁을 하시려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백녀의 후예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분은 지금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런데 접근이 쉽지 않군요.”

“접근이 쉽지 않다니요?”

“그분이 물가에 있어야 하는데 산속에 있으니 접근이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 세 번째 산에 와있습니다. 마지막 화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분을 물가로 보내려고 조상의 영들이 너무 많이 나타나서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국가에 변란이 있을 징조가 아닙니까?”

내가 놀라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시급히 물가로 가서 단을 쌓고 국신에게 소도제를 지내야 합니다. 국신이 오시면 변란을 피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근화5년, 진사성인10년.”

나는 부지중에 격암 선생이 하신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격암 선생은 근화시대 5년이 지나가면 지사시대 10년이 온다고 예언했던 것이다.

통화가 끝났다. 

“저는 청태종 홍타이지 황제의 명을 받고 여기에 왔습니다.”

애신각하 선생이 이상한 말을 하였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홍타이지皇太極 황제는 1592년 11월 28일에 태어나서 1643년 9월 21일에 돌아가신 분입니다. 370년 전입니다. 저의 직계 조상이 되지요. 그분이 후손인 제게 나타나셔서 중국 본토 역사와 한국 본토 역사의 연결고리가 되는 여자가 한 사람 있으니 그 여자를 찾으라고 하셔서 그 여자를 찾기 위하여 한중우호협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예!? 그런 여자를 찾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찾고 있습니다.”

그가 절박해 보였다. 

“찾으신지 오래 되었습니까?”

“한중우호가 시작된 때부터 찾기 시작했으니까 오래 된 셈이지요.”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시작한지 2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애신각라 선생의 노력이 20년이 된 것이다. 

“거리검 선생이라면 저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내게 서류 봉투를 하나 주었다. 

“여기에 내가 모은 자료가 들어 있습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거리검 선생께서 홍타이지 황제의 영을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원래 저는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영이나 예언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황제께서 내게 현신하셔 말씀하심으로 이 말씀을 전할 사람을 수도 없이 찾아다녔습니다. 한국의 전직 총리를 비롯하여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학자들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아무도 저의 요청을 들어주지 못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랬겠지요.”

“이제 저는 거리검 선생을 마지막으로 제가 해 온 일을 끝내려 합니다.”

“왜 마지막으로 저입니까?”

“제가 보기에 거리검 선생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나는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결심을 해야 하였다. 

“애신각라 선생이 제게 요구하신 것의 성공 여부는 하늘에 맡기고, 찾아보도록 하십시다.”

“본의 아니게 두 분이 하시는 말씀을 엇듣게 되어 죄송합니다.”

이숙이 우리 두 사람에게 다가와서 말하였다. 

“괜찮습니다.”

내가 말했다.

“제가 이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저는 청태종의 환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숙이 말했다. 홍타이지 황제의 영이 이숙에게 나타났었다니 그냥 들어서 넘길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여자 가이드가 이숙이 한 말을 애신각라 선생에게 통역하였다.

“놀랍습니다. 진작 이숙 선생을 만났어야 하는데 이제 만났으니 너무 늦게 만난 것 같습니다.”

애신각라 선생이 말하였다.  

“아무래도 어떤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숙이 말하였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내가 홍타이지 황제의 영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지필묵연紙筆墨硯을 준비해 주세요.”

애신각라 선생이 이숙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내실 곁에 붙은 방으로 들어갔다. 이숙은 방 한 가운데에 상을 놓고 상위에 화선지와 필묵연(붓․먹․벼루)을 준비하였다. 애신각라 선생이 전지를 16절지로 절단하더니 먹물을 벼루에 붇고 붓에 찍어 글씨를 쓰기 시작하였다. 招皇太極 이라는 4글자였다. 예서로 편안하게 쓴 글이 대단한 명필이었다.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접어서 애신각라 선생이 내게 주었다. 

“지갑에 넣어 몸에 지니시면 어느 날 홍타이 황제께서 김 선생에게 현신하실 것입니다.”

나는 그가 주는 종이를 지갑에 집어넣었다. 

“제가 전문적으로 하는 일은 주련柱聯(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을 쓰는 일입니다. 어느 날 주련을 쓰고 있는데 붓끝에서 홍타이 황제가 오셨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홍타이 황제는 붓이 招黃太極이라 쓰게 하였습니다.”

애신각라 선생이 그 말을 하자, 나는 황태극이 내게 오신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인가를 꿀꺽 삼킨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난생 처음이었다. 혹시 접신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타이지 황제는 조선을 공격하며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남한산성을 포위한지 한 달여 만에 인조의 항복을 받아내었습니다. 이 맹세를 ‘성하城下의 맹세’라 합니다. 홍타이지 황제의 영이 성하를 맴도신지 오래 되었습니다.”

애신각라 선생이 말했다. 과연 애신각라 선생이 말한 대로, 황태극께서 허물어진 성하에 쓸쓸히 혼자서 계신 환상을 보여주었다. 

“황제께서 청나라에 아니 계시고 옛 조선 땅에 와 계십니까?”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소원을 그대가 풀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황태극께서는 어인 일로 나를 괴롭히시려 합니까?” 

“내가 그대에게 온 것은 그대를 괴롭히러 온 것이 아니다. 다만 그대들이 당집에 모시는 할머니를 만나러 왔을 뿐이다.”

황태극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무당에게로 가셔서 무당이 모시는 할머니를 접신하여 만나시면 될 것을 왜 저와 같은 서생을 통하여 만나시려 하십니까?”

“무당들을 보라. 그들이 자신이 모시는 할머니가 누구인지 모르는 데 내가 누구를 불러 할머니를 알현하겠다고 말한단 말인가?”

황태극은 내게 황제의 위엄을 보여주려 하였다. 하긴 오늘날의 무당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모시면서 그분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태극께서 만나고자 하시는 할머니가 어느 분입니까?”

“동신성모東神聖母로 불리는 할머니이다.”

나는 깊이 신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진한리에 동신성모를 모신 사당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숙 선생, 이 고장에 오래 된 당집이 있습니까?”

나는 이숙에게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동신성모가 경주의 선도산에 모셔지고 있었다. 

“황태극께서 신라 선도산에 모신 동신성모를 만나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분은 신라의 시조신이다. 또한 국신이기도 하지. 그러나 내가 찾는 분은 그분보다 400년이나 오래 된 분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는 『삼국유사』와 『연려실기술』에 기록된 할머니이다. 고려 예종 때 사람 김부식(金富軾, 1075년~1151년)이 송에 사은사로 간 상서尙書 이자량李資諒 ? - 1123년(인종 1)을 보좌하는 문한文翰의 임무를 띠고 따라 갔다가 우신관佑神館에 들렀을 때 한 당에 모셔 둔 선녀상을 본 적이 있었다. 송의 관반학사舘伴學士 왕보王黼가 김부식에게 “이 여신은 그대들 나라의 신인데 공들은 그것을 아는가?” 하고 물었다. 그 여신이 선도산에 모신 동신성모 파소婆蘇였다.

파소란 소성문중蘇姓門中에서 여신으로 모신 할머니라는 말이다. 또는 소도蘇塗에서 국신으로 모신 할머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진한辰韓에 할머니를 모시던 파소가 한 사람 왔는데, 그가 지선地仙이 되어 선도산仙桃山에 좌정하였다.

“내가 찾는 할머니는 그대가 찾아주기 바라네. 다른 사람은 찾지 못해.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는가?”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동신성모를 찾으십니까?”

그 대답을 애신각라 선생이 해 주었다. 

“저의 선조인 애신각라 홍타이지(洪太极)께서 병자년에 조선에 출정하셨는데 단 2달 만에 조선을 굴복시켰습니다. 임진왜란만 해도 7년 전쟁을 치렀는데, 단 2달 만에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전쟁이었습니다. 조선이 쉽게 무너지는 나라가 아닌데 왜 그렇게 빨리 무너졌는지 여기엔 무엇인가 찾아보아야 할 비밀이 숨어 있으리라 봅니다.”

병자호란은 한반도 전쟁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전쟁이었다. 인조는 홍타치 황제의 요구대로 엄동설한에 한강의 칼바람을 맞으며 홍타이지 황제에게 삼육구배三六九拜를 올려야 하였다. 삼육구배란 연속으로 처음에 3배, 두 번째 6배, 3번째 9배 올리는 절이다. 이 절법은 단군왕검시대에 만들어진 절법이었다. 황태극은 나를 혼자서 정신 나간 놈처럼 중얼거리게 만들어 놓고 사라졌다. 

“홍타이지 황제께서 오셨다가 가셨군요.”

애신각라 선생이 말했다. 

“내가 황태극과 주고받는 말을 다 들었습니까?”

“감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신라에 국신이 있었듯이 지금도 이 나라에 국신이 있지 않을까? 만약에 국신이 있다면 국신을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고시대엔 마고가 마고지나의 국신이었고, 한인시대엔 한인이 한국의 국신이었고, 한웅시대엔 한웅이 배달나라의 국신이었고, 단군시대엔 단군왕검의 부인 하백녀가 조선의 국신이었다. 신라엔 파소가 국신이었다. 백제의 국신은 돌이었다. 돌이란 신이라는 뜻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들 신을 몽골에서는 옹곤이라 하였다.

신라가 국신을 찾는 날은 팔월 한가위 날이었다. 이 날을 한가배라고도 하였다. 이 날 소도에 모여서 국신을 부르는 말을 회소會蘇라 하였다. 한 가위란 한 개의 가위라는 말이다. 가위는 가위별이라는 뜻이다. 춘분을 의미하는 말로 볼 수 있다. 한가배는 한배검이라는 말로 볼 수 있다. 한은 한인, 한웅, 단군과 같은 뜻일 것이다. 가는 오가, 영가라는 말과 같은 뜻일 것이다. 배는 배달나라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국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고 이명지도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방문 밖에서 여자 가이드의 인기척이 들렸다. 

“선생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나는 승낙하였다. 여자 가이드가 애신각라 선생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헤어지기 전에 거리검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으십니까?”

“우체모탁국의 국신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애신각라 선생이 대단히 황당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한국에 중국 가까운 곳에 삼한시대에 만든 제천단이 있을 것입니다. 그 제천단을 찾으면 국신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애신각라 선생이 그렇게 말하니 나는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모국牟國의 국선國仙이 모국의 국신을 모시고 래주萊州를 출발하여 황해를 건너서 소래에 상륙하여 청룡산靑龍山에 좌정시켜드리기 위하여 천제天祭를 지냈습니다. 이리하여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되었는데 이 나라가 우체모탁국이었습니다. 마한의 역사는 선생이 말한 대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체모탁국이 백제에 멸망하면서 국신에게 제사지내던 풍습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제천단도 또한 오랜 세월 동안 모진 비바람에 훼손되어 사라졌습니다. 저의 선조 홍타이지 황제께서 1636년 12월에 조선을 정벌하기 위하여 출병할 때 하루는 한 신인이 나타나서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모국의 국신으로 조선에 가서 우체모탁국의 국신이 되었다. 그러나 제사를 받은 지 너무 오래 되었다. 그대가 나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 준다면 조선을 그대의 손에 붙여 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홍타이지 황제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사를 지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나로서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모국의 국신이라는 말이 내 가슴을 때렸다. 내가 보기에 모국의 국신이 있을 만한 곳은 소래산蘇萊山이었다. 소래산에서 장군바위가 있는 곳이 우체모탁국 국신의 좌정 처로서 합당한 곳으로 생각되었다. 그곳에서 근화와 혁거세 서생과 함께 갔던 산신각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소래산에는 제천단의 유적이 없었다.

“혹시 소래 어디에 제천단이 있습니까?” 

그는 소래 쪽 어디엔가 제천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천단이 있기는 있습니다만 소래에서 좀 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제천단으로 애신각라 선생을 초대하겠습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서류 가방을 열더니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주었다. 선지에 쓴 글씨였다. 

“‘愛哞視國’이라고 쓴 글입니다. 애모시국! 소 울음소리를 사랑하면 나라가 보인다는 뜻입니다. 제齊에게 멸망한 래이족萊夷族의 소국들이 한반도에 와서 세웠다 사라진 우체모탁국의 미래가 보인다는 뜻으로 쓴 글입니다.”

“좋은 글을 주시는 군요. 고맙습니다.”

애신각라 선생이 내게 그런 글을 주는 데엔 어떤 뜻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대련對聯(대문이나 기둥에 써 붙이는 답하는 문구)을 씀에 있어서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 사이에 대조적인 절묘함이 있어야 합니다. 가령 봄 하면 가을이 나와야 하고, 여자하면 남자가 나와야 합니다. 여자가 젊은 여자라면 남자는 늙은 남자가 나와야 합니다.” 

“예를 들면?”

“여자는 나이가 젊은 재녀才女가 되어야 하고 남자는 나이가 많은 시옹詩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애모시국의 대련을 찾습니다. 제가 재녀를 넣어 대련의 앞 절을 읊어 보겠습니다.”

“지어 보시지요.”

“천수재녀난만구千愁才女難瞞句”

애신각라 선생이 한국 발음으로 시를 읊었다. 

“깊은 수심에 잠겨 아름다운 여인이 시인의 재능을 숨기고 있구나”

“만감시옹착막심萬感詩翁錯莫心”

만감이니, 시옹이니 하는 단어는 내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어휘였다. 

“많은 감회가 시를 짓는 늙은이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여 아무것도 짓지 못하는 구나.”

내가 해석하였다.

“좋습니다.”

애신각라 선생이 말하였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