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중국 사람들은 서울로 떠났다. 주위는 조용해졌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컴퓨터를 켜고 앉아 있었다. 내게서 일어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지로부터 문자가 왔다. 

“애신각라 선생이 서울에 며칠 묵었다 가겠다고 하는데 당신이 안내를 맡았으면 좋겠어. 제천단이 당신이 사는 고장에 있으니 말이야.”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문자를 보냈다.

“역시 제천단에 가보고 싶다는 것이야.” 

나는 문자를 이숙에게 보여주었다. 나의 머리에서 몇 개의 단어가 맴돌고 있었다. 제천단, 홍타이, 국신…….이러한 단어들이었다. 나는 내 머리를 점령하기 시작한 파장으로 어지러워지기 시작하였다. 파장들이 내 머리에서 떠나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이명지가 하자는 대로 진한리를 떠났다. 이숙은 동행하지 않았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가서 부천역에서 내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서울에 늦게 도착하여 인천행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승객들이 많이 타고 있었고 새로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밤이 꽤 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제단에 가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떨어버릴 수 없었다. 그가 누구일지 궁금하였다. 나는 노약자석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피로가 몰려와서 졸았다.

“자네가 성주산행 열차를 탔군.”

노인이 와서 말하였다.

“이 열차는 노인만 혼자서 탈 수 있는 열차가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그렇지. 나는 순간이동의 순간을 지나쳐버렸어.”

“그래서 승객이 많군요.” 

“맞아.”

열차가 오류동을 통과하고 있었다.

“부천역에서 내리실 것입니까? 아니면 성주산역에서 내리실 것입니까?”

“내가 어느 역에서 내릴 것처럼 보이는가?”

“성주산역에서 내리실 것처럼 보입니다.”

“그대는 어느 역에서 내릴 것인가?”

“저는 부천역에서 내릴 것입니다.”

열차는 부천역에서 섰다. 나와 노인은 함께 내렸다. 

“앞으로 그대가 할 일은 현실의 세계와 가공의 세계, 현실의 역사와 사라진 역사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일이다. 이 일을 해야 해.”

노인이 내게 말하였다. 여러 개의 파장이 나를 파장의 세계에서 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그 파장의 세계는 포톤 벨트와 같은 세계였다. 무수한 양자가 빛으로 명멸하였다.

“앞으로 나는 너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 속에 들어가서 너를 명령하고 강제할 것이다. 절대로 나를 거역하지 못할 것이야.”

노인이 말하였다. 

“혹시 애모시국이라는 문자가 조화를 부린 것입니까?”

나는 질문하였다.

“그렇다.”

부적에 쓰는 괴상하게 생긴 문자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 뒤에 애신각라 선생이 있었다. 

“나를 우체모탁국의 국신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시오.”

그가 말했다.

“회소를 외치시요!”

내가 말하였다.

“회소! 회소!”

고 애신각라 선생이 외쳤다. 그러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군대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각 방위에 속한 하늘의 군대인 천군天軍이었다. 동쪽에서 푸른 토끼 천군이, 서쪽에서 흰 닭 천군이, 남쪽에서 붉은 말 천군이, 북쪽에서 흑돼지 천군이 나타난 것이다. 각 방위의 사이와 사이에서도 각각 천군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동쪽과 북쪽 사이인 동북간방東北艮方에서 검은 얼룩무늬를 가진 호랑이 천군이, 서쪽과 북쪽 사이인 서북건방西北乾方에서 검은 개 천군이, 서쪽과 남쪽 사이인 서남곤방西南坤方에서 청룡과 적룡 천군이, 동쪽과 남쪽 사이인 동남손방東南巽方에서 푸른 뱀 천군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이 팔각형의 진을 짜서 호위하였다. 이로써 팔괘진八卦陣이 짜진 것이다. 나는 이 팔방진八方陣의 가운데에 있었다.

“그대가 명령하면 언제나 천군이 동원되어 싸워 줄 것이다. 앞으로 싸워야 할 일이 생기면 천군을 동원하여 싸워도 좋다.”

노인이 말하였다. 하늘에서 나를 향하여 천제를 지내거나 군대를 지휘할 때 임금이나 장수 앞에 의장용으로 세워 두는 모절旄節과 지휘권을 상징하는 부월斧鉞과 칠성검七星劍을 가진 의장군이 내려왔다. 그들은 내 곁에 와서 섰다. 내가 쓴 책 한 권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 부천시 오정구 고광동 제천단 유적

   

나는 고강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고강동 사거리에서 내렸다. 거기에서 조금만 가면 야산인 청룡산이 있고 청룡산의 정상에 제천단이 있다. 평소엔 등산하는 사람이 이 제천단 앞을 지나갈 뿐이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언제나 적막감이 맴돌았다. 나는 어둠을 뚫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산에 올라가니 나무들이 사람들처럼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에 달은 보이지 않았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제단은 타원형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 제단 앞에 누군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50대 초반의 사람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오늘날의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청국의 옷을 흉내 내어 만든 도인의 복장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네.”

그가 분명히 한국말을 내게 하였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이리 오라고 영파靈波를 보내셨습니까?”

“그렇다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이 아니다.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는 내가 보지 못한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외투처럼 보이는 포를 입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그대의 경험이 필요해.”

그는 나의 경력을 알고 있는 듯하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대는 제사지내는 일을 기획하고 여러 사람의 제관을 길러내지 않았는가?”

“그렇게 해 왔습니다.”

나는 이상하게도 제사와 관련되는 일을 몇 번 해왔다. 내가 그 일을 하고자 해서 해 왔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1999년부터 차례로 삼각산 밑에서 한인, 한웅, 단군왕검에게 제사지내는 삼성제례三聖祭禮를 만들었고, 칠석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제례, 공민황칠석제, 순국선열진혼제 등을 만들어 제사지냈다. 

“여기에 제천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나?”

그가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기분이 상해서 대답하였다.

“제천단이 이곳에 있는데, 왜 여기에서 국신에게 제사 지내지 않는 거냐?” 

그는 나를 책망하는 음성으로 말했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정성이 부족한 것은 아니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습니다. 말도 안 되는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서.......”

“현실적인 제약이라니?”

“세상에는 그런 것이 많습니다. 그런 것을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그대가 내게 한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 제천단으로 가는 길 안내표지판

“오늘 그대가 한 말이 씨앗이 되어 이 고장에 재앙이 내리게 될 것일세. 본의 아니게 재앙을 자초하게 될 거야.”

끔찍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등이 서늘해짐을 느껴야 하였다. 

“그런데 나를 이리로 불러내신 분은 누구십니까?”

“내가 쓴 조관朝冠을 보면서 그런 질문을 하는가?”

그가 화를 내었다. 

“누구십니까?”

그는 청나라의 황제들이 쓰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모자의 이름이 조관이었다. 

“나는 우체모탁국의 국신에게 불려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홍타이지라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 형상이 청나라 황제를 그린 도판圖版에서 본 얼굴이었다. 그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와 병자호란을 일으킨 지 2달 만에 인조에게서 항복을 받아낸 인물이었다. 

“병자호란을 일으키신 분이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의 반응을 보였다.

“남한산성에서 계셔야 할 분이 부천의 야산인 청룡산에 와 계시다니 좀 격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남한산성은 주인이 백제의 온조왕일세. 내가 남한산성을 공격했을 때 전사한 수어사守御使 이서李曙(1580~1637) 장군이 지키고 있어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인조왕도 그곳에 계시겠군요.”

“그렇지.”

홍타이지 황제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군대들이 뒤엉켜 있었다. 조선의 군대와 청나라 군대였다. 아무래도 그들을 풀어 뒤로 물려야 할 것 같았다. 아무도 그들을 풀어주지 않은 것이 놀라웠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사의 고罟와 살煞을 풀어 주어야 해. 그만한 능력을 타고난 무당이 없겠는가? 그대가 그러한 능력을 타고난 무당을 보내 주어야 해.”

“지금 이 시대에 그런 무당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대라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떼를 쓰듯 말하였다.

“찾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이곳에 와 있은 지 오래 되어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다 알고 있다. 그대가 요즈음에 한 일이 기억나지 않는가?”

“기억납니다.”

“근화라는 무당을 데려와. 그라면 고와 살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근화에게 그런 능력이 있습니까?”

“그에게 사모의 영을 넣어 주신 분이 있다. 그러니 능력이 충분해.” 

나는 애신각라 선생이 찾는 국신을 근화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애신각라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애신각라! 그는 나의 후손이지. 내가 그대를 만나라고 오래 전에 명령을 내렸지.”

나는 이왕 내친 김에  궁금한 것을 좀 더 물어보기로 하였다. 

“우체모탁국의 국신은 어떤 분인가요?”

“그분은 견우牽牛일세.”

“지금 하신 말씀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믿어.”

“어떻게 믿으란 말입니까?”

“우체優體는 우체牛體라는 말이야. 소라는 뜻이지. 모牟는 소울음소리라는 뜻이야. 이 소가 견우가 끌고 가는 소야. 견우는 이 소의 주인이야. 알겠는가?”  

“제사지낼 때 소를 잡아 제사지내야 하겠군요.”

▲ 역사천문학회 회원들이 2000년 칠석날 0시에 삼각산 골짜기에서 올린 칠석제. 견우와 직녀를 회소하기 위하여 지낸 제사이다.

“소를 잡아먹으면 무엇으로 농사를 지을 거야?”

“소를 잡지 않겠습니다.”

“새로 난 열매를 올려 제사지내.”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운데 소로를 따라 하얗게 소복한 여인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밤에 소복을 한 여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혹시 무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녀가 아닌 다음에 이런 시간에 제천단을 찾을 여자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웬 여자가 오고 있습니다.”

“잘 보게.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니.”

여자는 제천단 앞에 와서 그가 가지고 온 제물인 과일과 떡을 차리고 술을 잔에 부어 올린 다음에 사방에 절하였다. 그러더니 북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북을 울리면 동네가 가까우므로 파출소에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갈 것이 뻔했다. 그러면 파출소에서 순경이 올라와 북을 울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무녀는 무엇인가를 중얼중얼 외었다. 넋두리처럼 들리는 무사巫詞였다. 고어古語로 된 말들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 하늘의 동북간방東北艮方에 떠있는 북두칠성(큰곰별자리의 꼬리별)과 북방에 떠있는 북극오성北極五星(작은곰별자리의 꼬리별)

눈을 들어 보니 북두칠성이 희미하게 하늘에 떠 있었다. 

"오늘 제 귀에 한목소리가 들리는 고로 목소리에 이끌리어 이곳에 왔습니다. 이곳이 무엇을 하던 곳인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여자가 경을 읊는 듯이 말하였다. 

“이곳은 삼한시대의 제천단이다!” 

홍타이지 황제가 말하였다. 여자가 움칫 놀라는 듯하였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 질렀다. 

“무지한 이 여자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북소리가 빨라졌다. 젊은 여자는 정신을 빼앗아 갈 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운 동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춤이었다. 나는 아름답고 예쁘게 춤을 추는 여자를 야밤에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다.

“이 여자는 인간부적이야.”

홍타이지 황제가 말했다. 

“왜 이 여자를 인간부적으로 선택하셨습니까?”

“아름답고 예쁘니까.”

저 밑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가까이 오는 데 보니 경찰복장을 한 사내였다. 그는 후라시를 비추며 올라오고 있었다. 소복을 한 여자를 보자 흠칫 놀라는 듯하였다. 그러나 여자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이 밤중에 시끄럽게 뭘 하는 것이요?”

경찰이 소리쳤다. 여자는 못 들은 척하고 계속해서 북을 두드리며 춤을 추었다. 

“중지!”

경찰이 명령했다. 여자가 북치는 동작과 춤추는 동작도 멈추었다.  

“이곳은 동네가 있는 곳이요. 소음을 내면 신고가 들어와요. 알겠소? 조사할 것이 있으니 파출소에 함께 갑시다.”

순경이 완강하게 말했다.

“내가 간첩입니까? 나를 조사하게.”

여자는 불쾌한 모양이었다.

“신고가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소.”

순경이 여자를 파출소로 데려가면 북을 치며 기도한 효험이 다 사라질 것이다.  

“저 여자는 무당이 아닐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명령한 대로 여기에 와서 북을 치며 기도하고 춤을 춘 것이야.”

 홍타이지 황제가 말하였다.

“무당이 아니라고요?”

“내가 인간 부적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나는 인간 부적을 무엇에 쓰는지 알지 못했다. 

“인간 부적을 어디에 쓰실 것입니까?”

“이 고장 사람들을 살리는 데에 쓸 것이다.”

“무슨 말씀인가요?”

“앞으로 산동반도와 발해만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유전에서 기름이 유출되고, 원자력발전소가 붕괴되는 사건사고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 피해를 이 고장 사람들이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려주려는 것이야.”

나는 앞으로 산동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전혀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홍타이지 황제가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한반도가 어느 정도 피해를 받게 됩니까?”

“아마 폐허가 되겠지.”

“폐허요?”

“그렇다네.”

“그렇다면 인간 부적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그래도 살아남아야 할 사람은 살아남아야 하니까 필요한 것이야.”         

하긴 맞는 말이다. 홍타이지 황제는 갑자기 가까이 다가온 순경에게 발을 걸어 넘어지게 하였다. 순경은 발목을 삐어 일어서지 못하였다. 몹시 아파 보였다. 그는 왜 자기가 넘어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었다. 

“경찰의 발목을 만져 주어라.”

홍타이지 황제가 여자에게 명령하였다.

“제가 발목을 만져드리겠습니다.”

여자가 말하였다. 순경이 거동이 불편해졌으므로 여자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저 여자에게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까?”

내가 홍타이지 황제에게 물었다.

“이 여자가 국신이 부리는 여자이니 효험이 있을 것이다.”

여자가 순경의 발목을 만져주었다. 그러자 순경이 일어섰다.

“이제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여자가 말했다. 순경이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조심하세요. 또 넘어지실 수 있습니다. 아직 발목이 온전치 못합니다.”

여자가 순경에게 말했다. 나는 홍타이지 황제를 따라 여자 앞으로 갔다. 홍타이지 황제는 여자에게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나를 보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세상에 너무나 잘 알려진 여배우였다. 여배우가 이곳에 와서 무당 행세를 했던 것이다. 

“당신은 배우가 아닌가요?”

내가 물었다.

“네,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저명한 여배우가 제천단에 와서 기도하다니 놀랍습니다. 무당 생활을 한 적이 있나요?”

“없었습니다. 누군가 이곳에 와서 북을 치고 기도하라고 명령해서 나왔습니다.”

“누가 명령을 했다는 말입니까?”

“모르겠어요. 어떤 목소리가 명령하여 오게 된 것입니다.”

“목소리가 가란다고 이 밤에 여기에 오다니! 무섭지 않습니까?”

“저로선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절박한 심정이 되어서요.”

여배우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이 여배우에게 피치 못할 사연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였다. 이 여배우는 영화계에서 그가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대박이 터진다고 소문이 난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가 무당으로 출연한 장면은 소름이 끼칠 만큼 위력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사나 방송국에서 모셔가는 여배우였다. 

“이 여배우와 함께 파출소에 가면 당신이 제일 먼저 재앙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물론 홍타이지 황제가 시켜서 한 말이었다. 순경은 미심쩍어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재앙이라면 이미 당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또 당합니다.”

홍타이지 황제가 내게 교회의 첨탑을 가리키라고 지시하였다. 나는 교회의 첨탑을 가리켰다. 첨탑엔 종교의 상징물이 붙어 있었다. 그 상징물에서 불이 일어나고 있었다. 첨탑에서 불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기합선 때문이 아니었다.  

“보세요. 앞으로 이러한 불가사의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마른하늘에 번개가 치고 있었다. 번개가 교회의 피뢰침에 떨어졌다. 

“진술이 끝나면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순경이 고집을 피웠다.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순경은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나의 배후에 어떠한 세력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고집을 피우는 것이었다. 순경이 앞서서 걸었다. 홍타이지 황제가 순경의 발을 걸었다. 순경이 넘어졌다. 그는 발목이 부러졌는지 일어서지 못하였다. 

“내가 무어라고 말했습니까?”

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발목이 부러진 것 같습니다. 일어설 수 없습니다.”

순경이 아파하는 얼굴이 되어 말하였다. 나는 119에 신고하여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였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