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화는 직장에 1년 동안 휴직을 신청하고 계주의 집에서 무당수업에 들어갔다. 그는 숙식을 함께하며 신어머니를 따라다녔다. 나는 근화가 무당수업이 3개월 째 접어들었을 때 계주의 집에 가서 근화를 만나보았다. 그녀는 이제 그를 괴롭히던 신병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건강이 좋아 보였다.

“근화 씨, 이제 아프지 않아?”

“네.”

“다행이야.”

“수업은 잘 돼 갑니까?”

내가 계주에게 물었다.

“잘 되어 갑니다. 내년 3월이면 혼자서 굿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주가 대답하였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저를 보자고 하였습니까?”

계주는 자기가 내림굿을 할 때 받은 공수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는 7명의 신딸을 두라는 공수를 받았던 것이다.  

“음두성陰斗星을 두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음두성이요?”

“감응신령께서 칠성신앙의 지도자로 키울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해가 갑니다.”

“선생님, 좀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에 무교신학대학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근화가 물었다. 

“스스로 공부하여 교육의 체계를 세워야지.”

“무엇부터 공부하면 될까요?”  

“서양에서는 학자들이 『성경』을 서양의 『지혜의 서』라고 하고, 『주역』을 동양의 『지혜의 서』라 하지. 학교에 갈 수 없으니 혼자서『주역』을 공부하는 것이 좋겠지.『주역』에 들어있는 단彖과 상象과 사辭에 기록된 문자가 지혜의 원천이 되는 문자들이야. 이들 3가지를 하나로 조합하고 알고리듬을 만들면 지혜를 터득하게 될 거야.” 

나는 이렇게 말하고 내가『주역』을 독학으로 공부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나는『주역』이 내 선조가 만든 ‘역사서’라는 관점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3년 가까운 세월을 단彖, 상象, 사辭의 해석에 매달렸다. 내가 『주역』에서 보고자 한 것은 내가 찾고자 하는 학문과 관련이 되는 사라진 역사였다. 

“나는 근화 씨가『주역』에서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을 찾고자 노력한다면 지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요체는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므로 해석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지.”

나는 예를 하나 들었다. 

“전쟁터에서 대대장이 1중대장과 2중대장 두 사람을 불러 명령했다고 생각해 봐. 1중대장에게는 강을 건너 진격하여 고지를 점령하라고 명령하고, 2중대장에게는 강을 건너 철수하라고 명령했다고 생각해 보자고. 대대장은 지혜가 많은 훌륭한 사람이었어. 그는 『주역』의 건위천괘乾爲天卦에서 이섭대천利涉大川을 하나 뽑아 1, 2중대장에게 주었어. 두 중대장은 쾌 하나를 가지고 상반된 해석을 하였어. 1중대장은 강을 건너 진격하면 이롭다고 해석하고, 2중대장은 강을 건너 철수하면 이롭다고 해석한 것이야. 이렇게 두 중대장처럼 상황논리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역의 쾌야. 역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 이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쾌의 해석이 틀리지 않겠지. 이순신 장군이 쓴『난중일기亂中日記』에 보면, 장군이 가끔 점치는 이야기가 나와. 장군은 쾌를 해석하여 답을 얻었어. 세상의 모든 현상이 쾌로 보이게 될 때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지. 송나라의 철학자이자 역의 대가인 소강절이 쓴『매화역수梅花易數』도 이렇게 하여 쓴 책이야.” 

나는 또, 징기스칸의 참모였던 야율초재가 『천관서天官書』를 해석하여 징기스칸을 보필했던 일, 청나라 말에 천문학자 오사청이『천웅점성학天運占星學』을 써서 오늘날의 홍콩을 만들도록 한 일을 말해 주었다. 근화는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한자 공부에 승패의 관건이 달려 있군요.”

“한자에서 의미만을 쫓다간 실패할 거야. 한자는 시대와 역사적 상황에 따라서 달리 해석한 경우가 많거든. 가령 치우천왕을 의미하는 시尸자가 황제 이후에 시체시자로 폄하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어.”

“그럼 어떻게 해석하지요?”

“이미지로 해석하는 것이지.”

“이미지로요?” 

“먼저 이미지로 해석해 보고 이어서 의미를 찾아서 재해석하는 것이야.”

“그것만으로 명확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을까요?”

“다음에 필요한 것은 알고리듬Algorithm이야. 알고리듬을 징검다리로 해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지.” 

“복잡하고 힘이 들겠군요.”

“알고리듬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지. 근화 씨의 신어머니가 어떤 신령을 몸주로 모시고 있어?”

“관운장을 모시고 있습니다.”

“관운장이 중국신이야 한국신이야?”

“중국신이지요.”

“중국신을 한국신으로 모시고 올 수 없나?”

“완전 한국신으로요?”

“그렇지.”

“제게는 버거운 일입니다. 불가능해요.”

“그런데 모셔 올 수 있어.”

“그래요?”

“우선 관운장이 한국신이라고 설득해야 하니까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하세요?”

계주가 거실로 들어와서 물었다.

“관운장이 한국 신인지 중국 신인지 따져보고 있는 중입니다.”

내가 말했다.

“저도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선생님에게 들어야 하겠군요.”

계주가 나를 마주 바라보고 앉자 신딸들도 하나 둘 나타나서 모두 6명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강의를 하게 되었다. 

“관운장은 탁현涿縣 사람입니다. 턱현이 지금의 어디인지 누구 아는 분이 있어요?”

다행스럽게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곳이 치우천왕과 황제가 최후의 결전을 벌인 탁록涿鹿이 있는 곳입니다. 탁록은 우리 역사와 중국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 싸움에서 치우천왕이 패하여 그가 태어난 청구국靑邱國은 물론이고 신시체제神市體制로 묶여 있던 배달나라가 와해된 현장이거든요. 오늘날 중국에서는 치우천왕을 군신軍神이라 합니다. 세월이 흘러서 이 고장에서 삼국시대에 가장 걸출한 무장으로 태어난 사람이 관운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관운장은 치우천왕의 영을 받은 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당들이 치우천왕을 도깨비대왕으로 모시고 관운장을 관성제로 모십니다. 이 두 분을 하나의 맥으로 이어주는 것이 탁록이라는 장소입니다. 탁록이 시간을 뛰어넘어 치우천왕과 관우장군을 연결해 주는 역사 알고리듬입니다. 두 분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와 의미가 무신巫神입니다.” 

“제가 작두를 탈 때 도깨비대왕이 오시는 것을 봅니다.”

계주가 말하였다. 계주가 말한 대로 굿에서 치우천왕을 작두대왕, 도깨비대왕이라 해왔다.

“관성제는 언제 오시지요?”

“수시로 오십니다.”

“지금 계주계서 하시는 말을 우리는 무속신앙이나 민간신앙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을 발판으로 해서 우리는 좀 더 차원 높은 고급신앙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무교를 연구하는 무가巫家들이 나와서 이론과 실제가 부합하는 신앙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의 신앙은 이론은 없고 실제만 있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저급하다고 비난을 받습니다.”

나는 근화를 바라보았다. 근화가 무가巫家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무교를 싫어하는 기독교와 무교를 폄하하는 불교와 호환과 공존이 가능할까요?”

신딸 하나가 물었다. 

“좋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새로 태어나는 아기가 부모를 닮는 것처럼 그것을 만든 사람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만든 사람이 그가 만들어야 할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닮으라고 하고 불교인은 불타를 닮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서 단군왕검을 닮으라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싸움이 일어나겠지요.”

신딸 하나가 대답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2006년 1월 16일 벽두에 정체불명의 광신자들이 마산의 모 공원에서 단군왕검 좌상의 머리 부분을 톱으로 잘라 훼손하였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정한 종교를 위하여 이러한 철부지 같은 충성심을 발휘한다고 해서 천당에 갈 것이 아닌 바에야 왜 이러한 짓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단군왕검을  단군조선의 국조로 보지 않고 민족종교의 숭배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적개심이 생긴 것입니다. 설사 민족종단에서 단군왕검을 신으로 모신다고 해도 단군왕검 좌상의 목에 톱질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 건전한 시민의 상식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단군왕검을 신명으로 보시나요?”

다른 신딸이 물었다. 

“신명으로 봅니다. 무당들이 그분을 감응신령으로 모시기 때문에 당연히 신명으로 보는 것입니다.『무당내력』이라는 책에 감응굿, 성조굿, 칠성굿, 대감굿에서는 단군왕검을 청배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단군왕검이 기독교의 배척을 받아서는 아니 됩니다.” 

“무교와 기독교에 호환성이 있을까요?”

다른 신딸이 물었다.

“호환이라는 것은 해석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있다고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시지요.”  

 “『신약성경』에 예수님이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호수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였으나 단 한 마리도 낚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하여 물고기를 153마리나 건져 올릴 수 있었습니다.『성경』의 해석자는 물고기 153마리가 베드로가 예수의 제자로 낚을 인원수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절박한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광경은 절박한 사람이 무당집에 찾아가 점을 치고 무당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과 하등의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양쪽의 배역을 맞바꾸어 보면 무교와 기독교에 호환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어준다는 것이 예수님이 무당의 역할을 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무교가 기독교에서 호환성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은 베드로가 물고기를 낚아 올리지 못한 부분입니다, 무교의 기능이 무당이 군웅을 풀고 조상을 풀고 하는 푸는데 있는 만큼 이 풀리지 않는 부분이 무교가 담당해야 할 부분이 됩니다. 따라서 기독교가 무교를 사악한 종교로 배척할 것이 아니라 공존을 모색할 수 있는 부분을 깊이 연구해 볼 필요가 있는 있다고 봅니다.”

“무당이 점을 치고 굿을 하면 예수님이 오실까요?”

다른 신딸이 물었다.

“점 잘 치고 굿 잘할 자신이 있나요?”

내가 그 신딸에게 물었다. 신딸은 대답을 하지 않고 웃기만 하였다.

“이 딸은 점 잘 치고 굿 잘 합니다.”

계주가 말하였다.

“잘 되었군요.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이 반드시 오시리라 믿습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군웅거리를 해 보라. 예수님에게서 군웅이 풀리면 아마 오실 것이다. 굿에는 예수님과 같이 억울하게 죽은 분들의 군웅을 풀어드릴 수 있는 기능이 있으므로 무당이 예수님의 군웅을 풀어 드린다면 오실 수 있을 것이다. 군웅거리 뿐만 아니라 조상거리에서도 예수님은 오실 수 있을 것이다. 군웅이 풀리면 군웅거리에서 예수님이 오실 것이요, 군웅이 풀리지 않으면 조상거리에서 예수님이 오실 수 있을 것이다.”

계주가 말하였다. 예수님처럼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을 굿에서 군웅軍雄이라 한다.

“그러면 날짜를 잡아서 굿을 하도록 하지요.”

내가 말했다.

“만약에 예수님이 오셔 준다면 무교의 발전을 위하여 도움을 청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근화가 말하였다.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내가 물었다.

“선생님이 무교와 기독교에 호환성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습니다. 제가 청한다면  예수님이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신딸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늘은 어떤 하늘인가요?”

또 다른 신딸이 물었다. 나는 성경의 마태복음 20장 1절에서 16절 사이에 있는 하늘에 대한 비유를 말하였다. 

“포도원이 있는데,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아침 일찍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터로 나갔어요. 그는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화폐)을 주기로 약속하고 포도원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9시쯤 나가서 사람들이 일없이 장터에서 서성거리는 것, 즉 어영부영 살아가는 자들을 보고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 적당한 삯을 주겠소.”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포도원에 가서 일했습니다. 주인이 12시에 다시 나가서 장터를 서성거리는 자들을 보자 또 그렇게 하였고, 오후 5시쯤에도 장터에 나가서 아직도 서성거리는 자들이 있어서 또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가 그들을 고용하기 위하여 물었습니다. 

“왜 너희들은 하루 종일 이렇게 할 일 없이 서성거리기만 하는 거냐?” 

“아무도 우리를 고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일할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다만 사회적인 룰이 학벌이 없는 자를 고용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모든 나라와 사회가 이러한 룰을 만들어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농장을 개방하여 누구든지 들어와서 일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은 자기 관리인을 불러 일꾼들에게 정한 품삯 1 데나리온씩을 지불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정한 룰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주인의 결정에 즉각 반발하였습니다. 연공서열을 무시하고 똑같이 보수를 지급한다고 불평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일꾼들에게 원했던 것은 포도를 많이 수확하자는 데에 있지 않았고, 직업을 갖지 못한 그들에게 일을 주어 일을 할 수 있게 하자는 데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에게 그들이 불평하는 연공서열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비유는 개인 대 개인 사이에 해당하는 비유가 아니라, 국가 대 국민 사이에 해당하는 비유로 볼 수 있어요. 주인이 나라라면 시장에서 서성거리는 자들은 백성입니다. 나라는 포도원의 주인처럼 일자리를 갖지 못한 백성들을 찾아 일자리를 주어야 합니다. 백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니까요. 국가에서 추진 하고자 하는 일에 성과를 거두려면 기술을 개발하고, 장비를 생산하고, 기술자를 길러내고 일자리를 늘려 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학교는 시장에서 서성거리는 자들을 줄여나가기 위하여 설치한 국가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은 포도원과 같고 하나님은 포도원의 주인과 같습니다. 인간은 시장을 서성거리는 일꾼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대리자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그분에게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고 한 데나리온만 달라고 하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일을 하려고 일자리를 달라는데 그분이 하나님이라면 주지 않을 리가 없지 않아요?”

나의 비유가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였다.

“적절한 비유로 생각됩니다.”

근화가 말하였다. 그날 내가 계주의 신딸들과 나눈 대화가 계기가 되어 근화가 내림굿을 하기 전날 무엇이든 좋으니 특강을 하나 해달라는 요청을 신딸들로부터 받았다. 나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그날 특강을 하기 위하여 그들이 강의 장소로 준비한 굿당으로 갔다. 굿당은 혁거세 선생이 모시는 감응신령의 좌정처가 되어 있는 산신각이 근처에 있었다. 근화가 꿈속에서 가 본 그 굿당이었다. 나는 굿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제물을 제단에 차린 상태에서 특강을 시작하였다. 

“오늘 날씨가 좋습니다. 아울러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신을 받지 못한 제게 특강을 부탁하셔서 감사드립니다.”

나는 인사치레를 한 다음에 특강에 들어갔다.

“인터넷 블로거 뉴스에 어느 스님이 쓴 ‘열린 신앙을 위하여-종교화합을  기대하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자, 이 글에 대하여 반박하는 어느 기독교신자의 글 ‘<반론> 참된 신앙과 화합의 길’이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클릭 수가 스님의 글이 2006년 4월 11일~4월 17일 오전 07:00현재 추천 76에 히트 106,205회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글에 대하여 반론을 편 기독교신자의 글이 같은 날 올라와 추천 12에 히트 660회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글에 많은 히트 회수를 기록한 것을 보면 이 글에 공감하는 독자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기독교신자의 글에 히트 회수가 적었던 것은 그 글이 그만큼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스님의 글에 “독자가 공감을 많이 한다”거나 기독교신자의 글에“공감을 적게 한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두 종교가 스님의 말처럼 호환하거나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인지, 할 수 없는 것인지 하는 점에 있습니다.

스님 쪽에서는 “화합할 수 있다”고 보고, 기독교신자 쪽에서는 “화합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스님은 불교가 기독교를 포용하려면 양자 간에 서로를 용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신자는 당치않은 말이라는 투로 받아 넘깁니다. “불교의 용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스님은 가능하다면 “불교신자가 기독교신자가 될 용의도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불교나 가독교가 본질적으로 종교로서 다를 게 없다고 보고, 두 종교 간에 상호 소통하자고 한 것입니다. 나는 두 종교의 호환과 소통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 종교의 역사를 보면, 불교가 이 땅에 들어와 무교 위에 불교를 덮어 쓰기 시작하면서 무교에 불교의 옷을 입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가 무교를 잡아먹은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교를 보면, 불교에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경문과 스님뿐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교신자가 기독교신자가 될 수 있다”고 한 부분은 이제 불교가 기독교를 잡아먹어도 될 만큼 튼튼해졌다는 것이 아닌지 기독교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막강한 힘을 가진 기독교가 불교에게 호락호락 눈뜨고 당할 리야 없겠지만 일단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기독교의 교리를 내세워 펄쩍 뛸 것이 아니라 불교에 잡아먹힌 무교에 종교로서의 장점이 많음으로 무교의 어떠한 점이 불교에 잡아먹힐 구실을 주었는지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무교는 잡아먹힌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들어온 불교를 한국적인 불교로 변형시키는 데에 공헌한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불교를 불교의 탈을 쓴 무교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적 이분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고 “진리는 진리이고 거짓은 거짓이다. 정의는 정의이고 불의는 불의이다,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이다.”라고 흥분할 일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부처님은 부처님이다”라고 문단속부터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래종교가 원래 이들 종교가 발생한 나라의 종교와 많이 다르고 현지화 한 종교라는 점에서 이미 비빔밥종교가 되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비빔밥의 핵심을 밥인데, 비빔밥에서 외래종교는 밥을 덮는 나물과 조미료와 고추장과 참기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스님이 비비는 밥이든 기독교신자가 비비는 밥이든 밥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밥이라는 핵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밥의 특징은 우리 조상으로부터 전수한 우리나라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집단무의식인 무교심성巫敎心性입니다. 무교심성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복신앙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교심성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종교의 핵이므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집단무의식이니까요.

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불교는 불교를 고집하지 않는다. 불교는 다만 편하게 쓰는 이름일 뿐이다. 불교의 실체는 말로 정확한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진리를 불교라고 말한 것뿐이다. 불교는 활짝 열려 있으며, 갇혀 있지 않다. 그 안에서 사는 것이 불교적인 삶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삶이다. 여기에 불교적인 정체성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름이나 틀 속에 스스로 갇히기를 좋아하고, 그러한 틀 속에 보다 많은 신자를 편입시키고자 애쓴다.” 이 말은 우리나라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교심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 말이라 생각됩니다.

불교라는 말을 무교라는 말로 바꾸면 “무교는 무교를 고집하지 않는다. 무교는 다만 편하게 쓰는 이름일 뿐이다. 무교의 실체는 말로 정확한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진리를 무교라고 말한 것뿐이다. 무교는 활짝 열려 있으며, 갇혀있지 않다. 그 안에서 사는 것이 무교적인 삶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삶이다. 여기에 무교적인 정체성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름이나 틀 속에 스스로 갇히기를 좋아하고, 그러한 틀 속에 보다 많은 신자를 편입시키고자 애쓴다.”라는 말이 됩니다. 무교와 불교가 인간이 믿는 형식이 다르게 보일 뿐이지 내면세계로 들어가면 다를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굿 칠성거리에는 칠성님이 가사장삼을 입은 제석으로 등장합니다. 즉 무교에 불교가 침입하는 것입니다. 칠성신앙이 불교신앙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불교가 고구려 소수림왕 때 이 땅에 들어오기 전까지 삼신과 칠성이 무교로서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칠성님은 가사장삼을 입은 중의 모습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교화한 중을 제석이라고 호칭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칠성거리라는 말보다 제석거리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칠성님의 춤은 불가에서 영산재靈山齋의 바라춤으로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불교의 무교화로 볼 수 있습니다. 학자들이 국민들에게 이런 점을 분명하게 밝혀 주어야 합니다. 

무교의 최고신은 구황대주九皇大主라 칭합니다. 구황은 수자 9를 최고신으로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삼라만상을 수자로 보면 9자를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뛰어 넘는 순간에 10이 되어 다시 1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10에서 0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10이 없어져 1로 돌아가면 결국 최고신을 1로 보느냐, 아니면 9로 보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마음이 좁은 사람은 1을 최고신으로 보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은 모든 것을 다 포용하는 9를 최고신으로 보았습니다. 

우리 조상들 중에서 선교에 심취한 사람들은 1을 최고신이라 하였고, 무교에 심취한 사람은 9를 최고신이라 하였습니다. 1은 물만을 드리면 되는 신이고 9는 제물을 드려야 하는 신입니다.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1을 높여 부르는 호칭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신은 숫자 9를 최고신으로 인식하는 신입니다. 이분을 구황대주라 하였습니다.  

인간은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종교를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영혼이 있는지 않는지, 죽음 후에 맞게 될 미지의 초월적인 세계는 있지 없는지 하는 궁금증과, 사후세계에 대한 외포심畏怖心을 극복하지 못한 인간이 결국은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만약 조물주가 계셔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너의 생애는 이러이러 하고, 네가 세상에 나가서 수행해야 할 사명은 이러이러하고, 사후세계는 이러이러하고, 너의 주인은 장차 네가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될 나이니라”하고 교육을 시켰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천지만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원대한 계획에 맞게 빈틈없이 창조한 조물주가 인간이 가장 관심을 갖게 될 이 부분을 감추고 애먹인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왜 잘 나가는 종교인들은 이 점에 대하여 전혀 무관심한 것일까요? 종교인의 사명이 거대한 교회나 절을 짓고 신도들을 구름처럼 모아 신도들의 돈을 긁어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다 잘 아는 것이 아닌가요? 성전이 규모가 작으면 어떻고 신도 수가 많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성전이 없으면  또 어떻습니까? 인간이 갖게 되는 이 근본적인 물음에 대하여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종교인이야 말로 신실한 종교인일 것입니다.

근화 씨는 신내림굿을 할 때 허주굿을 하였습니다. 허주굿은 구황대주의 신명을 받으려고 하는데 허주가 와서 얼씬거리므로 허주를 벗겨내는 굿입니다. 불교가 세상에 출현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이고, 기독교가 이 세상에 출현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입니다. 그 이전에 우리 조상은 마고를 주신으로 모시는 삼신교를 믿어왔습니다. 

삼신교는 한웅시대엔 신시와 화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추가하여 백진교로 불렸고, 단군왕검시대엔 여기에 덕을 코팅하여 덕교로 불렸습니다. 단군조선이 멸망하면서 제47세 고열가단군이 구월산에 한인· 한웅· 단군왕검을 제사지내는 삼성당을 지어 덕교의 명맥을 유지하였고, 이후로 삼성당의 당주였던 무당의 시대에 덕교라는 말이 사라졌습니다. 대신에 굿· 명두 이러한 말이 전해왔습니다. 명두가 곧 천부삼인입니다. 해혹복본과 천부삼인은 부도符都를 건설하라는 마고의 명을 따라 전 세계에 흩어진 인종들이 신의 도시를 건설해야만 실현될 것입니다. 피라미드는 실패한 부도의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해혹복본을 실현하고자 후대에 불교와 기독교가 나왔습니다. 해혹복본이 불교의 서방정토사상이 되었고, 기독교의 요단강도하사상이 되었습니다.”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특강을 마쳤다.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좀 더 자세한 강의를 할 생각이었다. 굿당에는 굿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방들이 10개 정도 있었다. 무당들은 굿당에서 잠을 잤고 나와 혁거세 선생은 굿당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오니 밤이 깊었는데 잠이 오지 않아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자 문득 시가 한 편 쓰고 싶어졌다. 컴퓨터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으니 시가 저절로 나왔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당신이 무당이 되지 않았다면 

신병에 걸려  

죽었으리라는 것을 잊으셨나요?

누군가 고문당하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독립문 섬돌에 와 앉아

바보 아이가 하얀 크레용으로 

잡다하게 그려진 세상을 

지우는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 물 아기씨

신들은 욕심이 많고 몰인정하고 

不仁하답니다

감응신령께서 

나의 사랑 당신을 데려가겠다고 

엄포를 놓으시니

당신이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부질없어요

나는 당신의 육신과 마음을 

탐하지 않겠습니다

바다보다 넓은 사랑을 임신하시고  

유관순보다 절절하신 당신이여 

당신의 몸을 신과 세상에 내어주세요

설사 사지가 육시를 당하여 

독립문의 지붕 난간에 널린다 해도

지금 나의 기도는 이것뿐입니다

● 感應神靈 : 구월산 三聖殿에 天符三印 明斗와 함께 巫神으로 모신 단군왕검

● 물아기씨 : 河伯女, 檀國의 扶蘇岬의 딸, 한웅천왕의 雄尙을 모신 蘇塗의 塗主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