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주가 차에 들어가서 홍철릭을 입고 홍갓을 쓰고 방울과 부채를 들고 나타났다. 얼굴과 손을 빼곤 온 몸이 온통 붉은 색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홍철릭이란 조선왕조시대에 왕궁에서 임금을 호위하는 무사들이 입었던 군복이었다. 그들은 붉은 갓도 쓰고 있었다. 조선왕조시대엔 붉은 색으로 치장한 근접경호원들을 별감別監이라 하였다. 그들이 별감의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무당에게 신이 주신 무력이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옛날엔 전쟁에 나갈 때 남자무당들을 소집해서 출전시켰어. 전사자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하여 굿을 해야 했던 때문이지. 저런 홍색 복장이 당시에 박수무당이 입었던 복장이었을 거야.”

내가 근화에게 말했다.

“어떤 굿을 했나요?”
“지방마다 전사자 위령제라 부를 수 있는 굿에 대한 이름이 다르긴 했지만 대체로 오구굿이나 씻김굿이라 하였지. 오구란 오귀惡鬼라는 뜻인데, 죽은 사람의 영靈이 악한 귀신이 되는 것을 막고 신원伸寃시켜서 저승으로 보내기 위하여 하는 굿이었어. 씻김이란 부정 덩어리인 오귀를 말끔히 씻는다는 뜻이지. 신라나 고려시대에 임금이 참석하는 위령제를 팔관회라 하였어.”
“굿은 우리나라에만 있나요?”
“그렇지 않아. 아시아권에서는 보편적으로 쓰는 말이야. 퉁그수어에서는 kutu, 몽골어에서는 qutug, 터키어에서는 qut, 한국어에서는 gut, 혹은 good이라 하지. 내가 보기에 굿이라는 말은 검을 향하여 운다는 말이야.”
“검을 향하여 운다고요?”
“그렇지. 검은 단군왕검을 뜻하는 말이야.”
“그래요? 왜, 단군왕검을 향하여 울까요?”
“운다는 말은 방울을 울린다는 말이지.”

계주는 방울을 흔들었다. 그가 흔드는 방울은 고양이 목에 매달린 방울이나 소의 목에 매달린 방울과 같은 방울이 아니었다. 우주에 산재하는 8개의 진동으로 불리는 진동에 공명을 일으키게 하는 방울이었다. 8개의 진동을 팔풍이라 하였다. 8풍 중에서 굿과 관련이 되는 바람은 융풍融風과 명서풍明庶風과 청명풍淸明風과 영등풍嬴登風이었다. 융풍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고, 명서풍은 동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고, 청풍은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고, 영등풍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이들 바람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융풍에 한인천제가 실려 왔고, 명서풍에 한웅천왕이 실려 왔고, 청명풍에 단군왕검이 실려 왔다. 이분들이 실려 오는 때가 산천거리를 할 때였다. 그런데 무당의 선생들은 아무도 이러한 바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굿에서 최고 조상인 마고와 삼성대왕이 올 수 있도록 팔여의 음을 만들고 팔풍을 만들어서 써먹은 적이 없었다. 그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러니 제자들이 깡통이 되는 것이 당연지사當然之事였다.

“근화 씨는 굿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오늘처럼 현장에서 본 적은 없어요. 다큐멘터리 같은 데에서 본 적은 있지만.”
“신을 받을 사람은 굿을 보면서 특별한 체험을 하는 경우가 있어. 그냥 신이 내려버리는 경우이지. 오늘 근화 씨에게서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오늘 신을 받을 생각이 없다면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 할 것이야.”

신을 받는다는 것은 신의 노예가 된다는 말이었다. 신의 노예
가 되면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신이 절대로 면천시켜 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피하면 신을 받지 않겠지요.”
“그럴지도 모르지.”
“신을 받을 까봐 겁이 나요.”
“겁이 나지.”

나는 갑자기 내가 노예의 상태에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청동팔주령 때문에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 같았다.근화가 내게 바짝 다가섰다. 몸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겁나지?”
“예.”

건너다보니 혁거세 선생이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다 알고 있다는 얼굴로 화경 같은 눈을 뜨고 근화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근화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근화 씨는 샤먼과 무당 두 말 중에서 어떤 말이 친근하게 생각되나?”
“샤먼이요.”
“왜?”
“동물적인 느낌 때문에....”
“동물적인 느낌이라...”
 
근화가 몽골 쪽에 있는 늑대 샤먼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샤먼 중에서 제일 역사가 오래 된 샤먼은 뱀 샤먼이야.”
“뱀 샤먼이라니요?”
“지금으로부터 거의 1만 년 전에 뱀을 인종 아이콘으로 쓰는 인종인 풍이족風夷族이 있었어. 풍이족의 여인 중에서 조상신으로 받들어 모신 여자 무당이 있었지. 이 여자 무당을 사모라 했는데 사모란 뱀의 어머니라는 뜻이야. 말하자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와를 엑스타시 상태에 빠트려서 사과를 먹게 한 사탄이 바로 사모라 할 수 있는 무당이야. 사모를 한자로 쓰면 뱀 사(蛇)자에 어머니 모(母)자인 사모蛇母이고, 사탄을 한자로 쓰면 사탄蛇誕, 즉 뱀에게서 태어났다는 뜻이야. 뱀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은 풍이족에게서 태어났다는 말이야.”

계주가 흔드는 방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맑게 울리는 쇠 소리였다. 음의 주파수가 굉장히 높았다.      

“방울이 내는 소리를 잘 들어야 해요. 소리가 시원치 않으면 조상님들은 그런 빈약한 소리를 타고 오시지 않아요.”
“조상님들이 오시기는 하나요?”
“오시니까 오신다고 하지.”
“오시는 걸 보신 적이 있어요?”
“있지.”

계주는 신중하게 방울을 흔들고 있었다. 마치 어떤 파장을 고르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방울을 흔드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방울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부드럽고 웅장한 소리가 나네요.”
“대단히 좋은 방울을 쓰고 있어. 모처럼 기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

계주는 우보牛步로 3보를 나갔다가 들어왔다 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하다가 원을 돌았다. 그리곤 다시 우보로 걸었다. 방울소리의 리듬과 발걸음의 리듬이 잘 어울렸다.

“발걸음이 리듬을 타고 있어요.”

근화가 나직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영등풍을 탄 것 같아. 그렇다면 마고할머니가 오실 거야.”
“마고 할머니가 오신다고요?”
“음. 그러나 계주가 마고 할머니가 오시기를 갈망하지 않는다면 마고 할머니는 오시지 않을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지요?”
“마고 할머니는 지금으로부터 1만4천 년 전에 영주에서 생성된 우주 에너지예요. 이 우주 에너지가 계주의 의식 속에 들어올 때 마고 할머니의 실체가 홀로그램으로 나타나는데, 계주에게 마고 할머니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 마고 할머니라는 우주 에너지를 만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헛 굿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군요.”
“그렇게 볼 수 있지.”
“계주를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가 계주를 일깨워 주는 수밖에.”
“어떻게요?”
“내가 청동팔주령을 흔들어서 계주가 만들어내는 파장과 청동팔주령의 파장을 일치시켜 주면 될 거야.”
“간섭파장을 만드는 군요.”
“그렇지.”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계주가 내 마음을 읽어 버린 것이다. 계주는 한동안 방울을 흔들어 내가 보내는 청동팔주령의 파장과 일치시켰다. 기묘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설명이 불가능한 분위기였다. 나는 근화가 엑스타시에 빠지는 것을 보았다. 아가씨의 몸이 내게 쏠렸다.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계주가 부채를 펴서 새들이 날개를 떨 듯 떨었다. 신들을 청배하는 부채질이었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지금 하는 굿거리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산에서 할 때는 산거리라 하고, 굿당에서 할 때는 도당거리라 하지.”
“그럼 바다 가에서 할 때는 무슨 거리라 하지요?”
“용궁거리가 되겠지.”
“이름이 다양하군요.”

근화가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듯 나만을 들으라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굿거리로서는 제일 처음 생긴 거리일 거야.”
“언제 쯤 시작된 굿거리로 볼 수 있을 까요?”
“조선시대에 이 거리를 처음 시작했을 거야. 조선이 진시황 8년인 B.C. 238년에 진에게 멸망했는데, 조선의 마지막 단군인 제47세 고열가 단군이 구월산에 들어와 삼성사三聖祠를 짓고 한인 한웅 단군왕검 3분을 모시고 당주무당을 두어 봄․가을 2차례 제사지냈는데, 당주무당을 둔 이유를 조상을 청배하는 산거리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지. 이 일을 위하여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문화현文化縣으로 불리는 두레마을이 생겼어.”
“역사가 오래 되었군요.”
“고열가 단군이 천부삼인天符三印을 마지막으로 삼성사에 가지고 왔는데, 이곳 당에 걸어두고 계절마다 철마지 굿을 하였어. 천부삼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니까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하여 명두明斗라는 이름으로 고쳐 불렀지.”

“천부인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명두라는 이름은 처음 듣습니다.”
“천부인은 선왕이 후왕에게 왕위계승권을 인증하기 위하여 주는 것이지만, 명두는 무당이 무당에게 신 내림을 인정하기 위하여 주는 것이야. 계주의 복장을 봐요. 무엇인가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야.”

나는 눈길로 계주의 의대衣帶를 가리켰다. 계주는 다홍치마를 입고, 구군복에 홍철릭을 걸치고 빗갓을 쓰고 있었다. 손에는 길지(한지를 세모꼴로 접은 것)를 들고 있었다.

“빗갓을 보아요. 백로의 깃을 달고 있지? 몇 개야?”
“2개이군요.”
“원래는 삼신 표시로 3개를 달아야 해.”
“그런데 2개만 달았군요.”
“그것은 빗갓을 만드는 장인이 백로 깃 3개를 달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만들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야.”
“다른 깃털도 다나요?”
“물론. 부족 표시로 노가鷺加는 백로의 깃을, 응가鷹加는 매의 깃을, 학가鶴加는 학의 깃을, 호가虎加는 호수虎鬚(호랑이 수염)를 달지.”
 
계주가 3번 성령강림聖靈降臨!을 외치며 바래기를 하였다. 성령강림은 단군왕검이 감응신으로 강림한다는 뜻이다. 이어서 계주가 축원으로 들어갔다.

  나라 산신의 원산은 구월산
  나라 토신의 대산大山은 부근산附近山
  살 맞은 살륭님(살 맞은 나라님)의 터라
  나라 굿(나라님 살풀이하는 굿)으로 이 정성 드리오니
 
  칠성님께 칠성거리(칠성님을 모셔다 하는 굿) 하고
  아침저녁 조앙에 조앙 치성하고
  삼성대왕 (고풀이하고 살)풀이하여
  산신 살, 토신 살, 부근산 살 풀고
  관귀 풀이하여 관귀 살 풀렵니다

  오늘
  산신이 치는 산신 살 풀고
  관귀가 치는 관귀 살 풀어
  칠성님께 칠성거리 하고
  조왕님께 조왕치성 올려
  정성을 드리오니

  정성 덕을 입혀 주시고
  일월오봉日月五峰에 내린 줄기
  왼쪽 줄기는 좌청룡左靑龍  
  오른쪽 줄기는 우백호右白虎
  로 감싸주시니                    
  삼성대왕이 산신 신령님으로 좌정하신 대궐 안에
  나라님 대궐 보호 받으며 살아가는 백성
  나라 운이 천년의 덕을 입네
  어허∼굿하자
  나라에서 격년으로 굿을 하니
  동악으로 태산 서악으로 화산
  남악으로 형산 북악으로 향산
  사대명산 산신령님
  경기도에 삼각산 황해도에 구월산 평안도에 묘향산
  함경도에 백두산 강원도에 태백산 충청도에 계룡산
  경상도에 가야산 전라도에 지리산
  팔도명산 산신령님
  나라 산의 원산은  구월산
  관아 토신의 대산은 부근산
  살 맞은 살융님의 터라
  구월산 도당은 삼성당
  신령님은 고열가 단군 할아버지
  당주무당은 삼성무당
  삼성대왕님 할아버지 살 풀고 고 풀어주시는
  전라도 지리산 산신령님
  강원도 태백산 산신령님
  충청도 계룡산 산신령님 아니시랴
  금강산 백두산 화해 받아
  팔도강산 산신령님들 재수 열어 도와줄 적에
  삼각산 산신령님 아니시랴
  인왕산 선바위 아래 조정하신 국사당 산신령님
  남산 와룡당 산신령님
  관악산 산신령님 아니시랴
  조선의 도당은 청주靑州가 도당이요 익도益都가 도당이라
  삼신산이 본산이요 삼각산이 먼산이요
  백악이 본향산이요 인왕산 낙산 남산 관악산은 부근산이라
  산마누라 삼성대왕님께서 자손으로 퍼져 내려
  좌정한 산신령님들이라
  대신 할머니(마고대신) 삼신 덕 입고
  한인 한웅 단군왕검 삼성 덕 입고
  팔도명산 산신령님 산신 덕 입어
  이 정성 올리니 이 정성이 어떤 정성이냐
  작은 산도 산이고 큰 산도 산이라
  산신이 아니 계신 데가 없고
  작은 물도 물이고 큰 물도 물이라
  물 있는 곳에 용신 아니 계신 곳이 없으니
  나라에 산신 계시고 용신 계시네
  산신령님 하시는 일이라 굽어보시고
  산에다 물려주시고 산신 바람 불어 물려주지
  어허 굿하자
  대주 계주의 본향산  산신령이 아니시랴
  여성 주신의 본향산은 삼신산의 영주산嬴洲山
  남성 주신의 본향산은 무함왕의 등보산登葆山
  시조신의 본향산은 신령님의 열두 명산
  거므나 따(儉之地) 희나라(熙那羅)백성
  팔도 명산이 내산이요 사해도 내 물이라
  봄이 와 봄 굿하고 나면 가을 굿하길 기다리고
  가을 굿하고 나면 봄 굿 기다리던
  마고삼신 삼성대왕 열두 명산 산신령
  이번에 하는 굿이 무슨 굿이냐 물으시는 구나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