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주가 거침없이 읊어댄다. 산신이 활동하시는 모습이 눈에 잡히는 듯하다. 산신이 삼성대왕이 되고 삼성대왕이 산신이 된다. 산신과 삼성대왕은 구별이 없다. 내가 보니 계주의 배후에 삼성대왕의 한 분이신 단군왕검이 감응신령으로 와 계시다. 근화에게 용무가 있으시다고 청동팔주령에 진동을 보내고 계시다. 나는 감응신령이 보내는 진동이 청동팔주령에 공명을 일으키는 것을 손에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감응신령에게서 영체가 나와 근화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쿼크? 근화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실신한다. 나는 황급히 내게 쓰러져 오는 근화를 받는다. 계주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사모! 나를 도와주시오.”

내가 계주에게 소리치고 있다. 일제히 무당들의 시선 근화와 내게 쏠린다.

“감응신령이 오셨다. 감응신령의 의대를 입혀 드려라.”

계주가 오늘 일월마지에서 집사를 본 무당에게 명령한다. 2명의 집사 무당이 한 사람은 홍철릭을 가져오고 다른 무당은 빗갓을 가져와 근화에게 입히고 씌운다.

“대왕이시여! 무엇을 근화의 몸에 넣어 주신 것입니까?”

나는 황급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천부삼인을 주려는 것이다.”

감응신령이 말씀하신다.
근화가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오늘 굿은 어떤 굿이냐?”

감응신령이 계주를 매개자로 하여 근화에게 묻는다. 영적인 목소리이다.

“춘분마지 굿입니다.”
“춘분마지 굿이라...누가 하던 굿이냐?”
“춘분의 기에서 태어난 동이족의 샤먼이 하던 굿입니다.”
“오늘 나는 너를 맥이 끊어진 동이족의 샤먼에 임명하겠다. 알겠느냐?”
“제가 어떻게...”
“때가 되었느니라.”

▲ 번조선시대番朝鮮時代에 무巫자의 원형문자는 대수대명代壽代命을 의미하는 문자였다.

감응신령은 조용히 서 있었지만 계주가 감응신령이 보내는 파장에 휘둘리고 있었다. 계주가 파장의 리듬을 타고 내게 와서 내 얼굴에 길지를 흔들었다. 길지가 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세차게 휘날렸다. 감응신령이 내게 무엇인가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대에게는 샤먼을 보호할 호법신장護法神將의 임무를 주겠다.”

물론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나는 감응신령이 내게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신의 노예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 같아서 가슴이 하얗게 빛이 바래는 것 같았다.

“제발!”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에 내키지 않느냐?”

감응신령이 내게 다그쳐왔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대는 대수대명代壽代命이 무엇인지 아는가?”

대수대명이라면 누군가 종교적인 이유로 타인을 위하여 죽어주는 것을 말한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도 누군가의 실수로 비명횡사非命橫死를 당하는 것도 대수대명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감응신령이 내게서 대답을 들으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나를 겁박하기 위하여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말해 보라.”

감응신령이 재촉하였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대가 호법신장을 하라는 내 명령을 받지 않는다면 근화를 대수대명으로 잡아갈 것이다.”

감응신령이 나를 곤경에 빠뜨렸다.

“명령에 따르겠느냐? 그대를 죽이고 살리는 중차대한 문제가 근화의 어깨에 놓여 있다. 명령에 따르겠느냐?”

신장들이 하나 둘 나타나 나를 둘러싸기 시작하였다. 

“어서 대답하라.”

감응신령이 재촉하였다. 나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감응신령이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따르겠습니다.”

나는 마지못해 대답하였다.

“홍익인간에 대하여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홍익인간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천지에 이익이 되게 하는 인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 범우주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이 홍익인간이다. 그대가 할 일이 이 철부지 아기씨를 홍익하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대가 그렇게만 해 준다면 아기씨가 내가 바라는 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감응신령이 원하는 대답을 해서 그런지 근화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무감을 서라. 감응신령님 의대를 입었으니 그분을 놀아드려야 해. 춤을 추어라.”
계주가 근화에게 지시하였다. 근화가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감응신령을 위한 춤이었다. 감응신령이 만족하는 듯싶었다.  계주는 감응신령을 모시고 바닷가를 향하여 멀어져 갔다.

“선생님 무얼 혼자서 중얼거리세요?”

춤을 끝낸 근화가 내게 물었다.

“그럴 일이 있었어.”
“감응신령님을 보셨어요?”
“음.”

계주는 산거리를 끝내고 도당(부근)거리로 들어가기 위하여 빗갓을 벗고 전립으로 바꾸어 썼다. 그는 방울과 부채를 제상 앞에 내려놓았고, 오른손에 청룡도와 왼손에 삼색 신장기를 바꾸어 들었다. 계주는 거성을 하고 춤을 마치고 나서 사설로 들어갔다.        
 
 어허∼굿하자.
 가까이에 있는 도당들이
 남신을 모신 도당과 여신을 모신 도당들이 아니더냐
 아래에 있는 도당은 남신도당
 위에 있는 도당은 여신도당이 아니시리
 한성의 동대문 밖 안개 낀 곳에 있는 도당은 수풀도당이라
 한성 밖의 살을 풀어내는데 영험한 도당이며
 한성 안의 살을 풀어내는데 영험한 도당이라
 백악산신 남산산신 인왕산산신 낙산산신의 도당은 산신도당이요
 이들 산신도당에 경기도 각 고을에 딸린 부근도당이요
 부근당에 남신을 모시면 남신부군이요
 부근당에 여신을 모시면 여신부군이라 부군도당이 아니시리
 남신부군을 모시는 남신부군당의 부군당 할아버지
 여신을 모시는 여신부군당의 부군당 할머니
 도당 왼쪽에 뻗어 내린 인왕산 줄기는 좌청룡이요
 도당 오른쪽에 뻗어 내린 산줄기는 우백호요
 우청룡에 할머니 도당 좌백호에 할아버지 도당
 산속 계곡을 깊게 하고
 물도 깊이 돌아가게 하여
 내 고향 산에 살아갈 수 있게 하니
 아침이면 산의 강한 기운을 휘어 산 밖으로 내보내고
 저녁이면 밖에 내보낸 산의 강한 기운을 산 안으로 휘어 들여
 산속에 징소리 장구소리 제금소리 울리니 이제 한 말씀해야하겠구나

“네 전생을 보니 아황이 틀림이 없으렷다. 아황이 누구인지 아느냐?”

감응신령이 계주의 입을 빌어 근화에게 묻는다.

“모르겠습니다.”

근화가 대답한다.

“그럼 내가 기억나게 해주마. 아황만세를 3번만 외쳐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 1900년대의 무당은 빗갓에 백로 깃 3개를 꽂았다. 백로 깃은 조선시대 부족인 로가鷺加를 의미하였다. 3이라는 숫자는 삼신이라는 뜻이다.

근화가 아황만세! 3번을 외친다.

“아황은 여영과 형제로 요임금의 딸이다. 그분들이 순임금에게 시집가서 살았다. 우가 반란을 일으켜 순임금이 도망치다가 창오蒼梧에서 죽었다. 아황과 여영도 우의 군대를 피하여 악양 쪽으로 가서 동정호로 흘러 들어가는 소강과 상강에 빠져 죽었다.”
“그런데 왜 그분들이 우리 굿에 나오는 무신이 되었습니까?”
“그분들이 너의 조상이 되기 때문이다.”
“조상이라면 누구나 다 무신이 될 수 있습니까?”
“내가 임명해 주어야 해. 아황과 여영이 보이느냐?”
“아직...”
“앞으로 네가 아황과 여영의 살煞과 고罟를 풀어주면 그분들이 너의 살과 고를 풀어 줄 것이다.”
“고와 살을 풀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나의 딸이 되어야지.”
“신딸이 되어야 한다고요?”
“그렇다.”
“제가 무당이 되어야 한다고요?”
“네게 무당이 되라는 것이 아니야.”
“네?”
“네게 좀 더 큰일을 시키려는 것이다.”
감응신령이 근화를 바라보았다. 감응신령의 눈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대단히 무서운 눈이었다.

“나는 가겠다. 계주는 청풍을 불러서 대령하라.”

감응신령이 계주에게 명령하였다. 계주가 방울을 흔들어 동쪽에서 파장이 일어나게 하였다. 그 파장이 청풍을 이끌어 오는 파장이었다. 파장이 청풍에 다리를 놓아 주었다. 청풍이 밀려왔다. 창룡이 청풍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동해용왕이다. 감응신령은 창룡 위에 올라타고 청풍과 함께 사라졌다.

▲ 서울 한강 가까운 곳에 있는 궁산宮山의 서낭. 서낭신은 도당신의 역할도 겸한다. 궁산의 서낭이 지금은 서울에 편입되어 있지만 조선왕조시대엔 경기도에 속해 있어서 부근당의 역할을 하였다.

 
  천리용마를 하사받아
  만리장발을 띠어 놓고
  비 오는 날 우산 속에
  해 나는 날 양산 속에
  행길 말에 자자히 오시는 길에
  철쭉 매화 만발 했네
  십리하十里下에는 능파 속에
  오리 절반은 해당화
  인왕산이 주산이라
  동 남산이 안산이고
  왕십리 청룡이고
  동구 만리 백호일세
  학을 눌러 대궐이고
  대궐 안을 썩 들어서서 임금을 배례하여
  서른 세 골 조정이고
  서른 네 골 안암 받아
  팔도감사 되었구려
  억만장자 팔만가구 태평성덕일세
  억만년 지는 무궁이라
  감응신령님을 만부신청으로 돌아드니
  감응당은 꽃밭이요
  나라만신은 호랑나비가 되어
  이 꽃 저 꽃 대고 보니
  태평성세 무궁이라  
  차린 차담을 흠향할 제
  정성은 태산같이 굽어 봐요
  만감응 신령님 할 얘기 노시고
  잘 도와주시오
  오늘 새내기 살릴 분은
  감응신령님으로 오시는
  삼성대왕님이시오!

계주가 부르는 사설에 효험이 있는지 동쪽에서 일진광풍이 일어나더니 창룡을 타신 단군왕검께서 득달같이 당도한다.

“무슨 일로 또 나를 부르느냐?”

감응신령이 물으신다.

“착오입니다. 영등풍의 주파수가 청풍의 주파수로 넘어가서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한다.

“근화가 영등풍을 불러들이라.”

감응신령이 명령한다. 근화가 경험이 없이 계주의 방울로 영등풍을 일으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청동팔주령의 쿼크에게 이 일이 가능한가를 물어야 한다. 청동팔주령의 쿼크가 내 손에 감응을 보인다. 가능하다는 뜻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청동팔주령을 꺼내어 근화에게 준다.
 
“흔들어라. 흔들어.”

내가 말한다. 근화가 청동팔주령을 받아 흔든다. 팔여의 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사모의 쿼크를 찾아라.”

감응신령이 명령한다. 사모는 풍이족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드디어 영등풍을 부르는 파장이 잡혔다.  영등풍이 근화 앞으로 밀려왔다. 영등풍 안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사모! 사모! 사모!”

근화가 외쳤다.

“경문에 밝으신 선생님께서 조치를 취해 주세요.”

계주가 내게 말했다.

“산거리 축원으로 들어가 보세요. 거기에 해답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계주가 산거리로 들어갔다.

  어허~굿하자
  감응신령님의 본향산으로 가보자
  성주산의 본향은 무함왕의 등보산(『산해경』에 나오는 산)이요
  시조신의 본향산은 산신령님의 열두 명산이라
  거므나 따에 희나 백성
  조선백성이 내 백성이요
  그러니 너도 내 백성이라
  팔도 명산도 내 산이고
  사해용왕의 물도 내 물이라~
  봄이 와 봄 굿 하고 나면 가을 굿 기다리고
  가을 굿 하고 나면 봄굿 기다리시던 마고삼신, 삼성대왕님들!
  봄, 가을 두 계절 굿 덕을 기다리고 바라시더니~

“삼성대왕 풀이에 해답이 있습니다.”
 
내가 말한다.

‘삼성대왕 풀이’는 이 나라 땅에서 무당들이 4천 년을 불러 온 무가였다. 나는 재빠르게 핸드폰을 꺼내어 저장시켜 둔 ‘삼성대왕풀이’를 열었다.

  질병 가져가실까 삼성대왕
  액운 앗아가실까 삼성대왕
  질병과 액운이 있을 진대
  질병액운을 없애 주소서
  앞다리 끝다리 삼성대왕
  내려와 있을 진대

고려시대에 무당들이 이 무가를 부르면 백성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병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신병을 앓고 있는 근화 한 사람이었다. 영등풍이 불어와서 우리를 감쌌다. 바람이 바다 저쪽에서 불어오지 않고 바닷가에서 가까운 내륙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근화는 방울을 흔들며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더듬어 가고 있었다. 

“바람의 방향을 잡았으니 어부슴을 한 다음에 가시지요.”
 
계주가 말하였다. 어부슴이란 용선龍船 띠우기와 거의 같은 것이다. 용선은 막연하게 용궁으로 띄어 보내지만 어부슴은 바가지를 중국 어대현魚臺縣에 있는 부산鳧山으로 띠어 보내는 것이었다. 부산에 복희의 능이 있다. 복희를 상징하는 바가지에 식구 수대로 밥과 나물을 담고 숟가락을 넣어 띄어 보내는 것을 어부슴이라 하였다. 어는 어대현을, 부는 부산을, 슴은 홍수 때 복희가 바가지에 숨어 홍수를 견뎌내었다는 것을 기리는 것이다. 바가지에 밥을 담는 이유는 복희가 대홍수 때 여왜와 함께 박(호과瓠瓜)에 들어가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근근이 연명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비는 것이다.

계주는 무색의 치마와 저고리로 갈아입고 바가지 하나에 밥 13술을 담고 나물 13젓가락을 담고 물에 띄어 보내며 부산에 있는 복희 능에 잘 도착하기를 축원하였다. 어부슴이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계주는 삼신상에 메와 술을 바치고 나서 뒷전을 쳤다. 뒷전 상차림도 삼신상 차림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뒷전을 칠 땐 북어 2마리를 들고 하였다. 북어는 거므나 따에 희나 백성에서 희나 백성을 의미하였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