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5년에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 위하여 오랜 세월을 무덤덤하게 살아온 서울을 떠났다.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에만 살다가 이사 간 곳이 경기도의 중소도시 부천富川이었다. 부천은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고대역사가 없고 역사 유적이 없는 고장으로 식자識者들 사이에 알려진 수수께끼의 도시였다. 그러나 부천은 역사성이 있는 부평과 소래와 서울이 접하는 지점에 있어 절대로 역사유적이 없다고 볼 수 없는 곳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부천에서 역사를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곳에 정착하자 생존 이외에는 쓸모없는 머리를 가진 거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거인 골리앗과 마주친 소년 다윗처럼 역사무식歷史無識과 돌팔매질 싸움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결심하였다. 그 싸움이 부천 사람들이 없다고 믿는 고대역사와 역사유적을 찾는 일이었다. 나는 우선 내가 개발한 한자漢字 알고리듬 엔진을 가동하여 문자에서 부천의 역사를 추적해 들어가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이곳의 지명이 왜 부천인지, 부천이라는 지명을 어디에서 누가 가지고 왔는지, 또 누가 쓰기 시작했는지 알아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내가 고대의 부천을 찾는데 학문적인 롤 모델이 되어 준 사람은 스웨덴의 탐험가 스웬 헤딘(1865~1952)이었다.

스웬 헤딘은 1900년에 서역에서 사막을 헤매며 말라버린 로푸호를 찾아다닌 사람이었다. 로푸호는 서기 전에 멸망한 누란樓蘭이라는 작은 나라에 있었던 호수이다. 스웬 헤딘은 루프호를 찾으면 루프호로 흘러들어오는 강물 줄기를 찾을 수 있고 지금은 사라진 서역의 성곽국가 누란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스웬 헤딘과 유사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뻔히 쓸데없는 짓인 줄 알면서 스웬 헤딘처럼 부천을 돌아다니며 부천의 고대 지명으로 추정되는 부하富河로 불릴 수 있는 옛날의 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부하를 찾기 위하여 삭막하고 답답하게 서 있는 도시의 빌딩과 주택 사이를 해매며 돌아다녀야 하였다. 부천은 가히 건축물의 사막이라 할 수 있는 고장이었다. 
 
▲ 비루고개는 비류고개로 볼 수 있는 고개이다. 인천 부천 시흥 서울을 잇는 고개이다. 백제를 세우기 전에, 비류沸流가 부하(혼강의 지류 부이강)를 출발하여 혼강-압록강의 서쪽으로 진출하여, 서해안을 끼고 남하하다가 소래(오른쪽 그림 하단 왼쪽 지명)에 상륙하여, 비루고개에서 온조와 갈라져 부천-인천 쪽으로 갔고, 온조는 한강을 끼고 한남 쪽으로 갔다는 추리가 가능하다.
 
한반도의 몸이 어른의 인체만한 크기라면 부천은 아이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중소도시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집들이 비집고 들어서서 집들의 밀림이 되어버린 도시에서 옛날에 없어졌을지 모르는 강 부하를 찾는 일은 정신 나간 사람이나 할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내가 학문하는 방식이자 생존하는 방식이자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조력자가 필요하였다. 
▲ 부천역 북부에 있는 상가 이면도로의 끝에 부천의 주산主山인 성주산聖主山이 약간 보인다. 부천역 남부에 있는 고강동 청룡산에서 삼한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제천단이 발굴되었다.
 
내가 하는 일에 조력자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두 사람이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사라진 진한의 옛 땅 진한리에 살고 있는 이명지였다. 그는 진한리에 정착하여 사라진 진한의 역사를 찾아 온지 수십 년이 된 나의 오랜 친구였다. 요즈음 갑자기 사표를 내고 퇴직하여 진한에서 온 여자 이숙 씨에게 정신과 영혼을 다 빼앗긴 상태에 있었다. 나는 삼한 역사의 대가인 그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나는 조력을 구하기 위하여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숙 씨의 감시망이 느슨해지면 시간을 내서 부천에 한 번 와. 나를 좀 도와줘야 해.”
 “뭘 도와 달라는 것이야?”
 “부천에서 부하를 찾을 방도가 없겠나?” 
 “부하?”
 “강 이름이야. 내가 부천에서 찾고자 하는 강.”
 “부천엔 강이 없지 않아?”
 
이명지가 놀라서 물었다.
 
 “옛날에 부천에 있었던 강이지.”
 “그래?”
 “나 혼자서 도시 한복판에서 사라진 강을 찾자니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니군.”
 “주택가와 빌딩의 밑바닥에서 사라진 강을 찾는다니 어떻게 찾을 수 있겠어? 미친 짓이야.”
 “그걸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닌데…….”
 “헛수고 하지 말고 포기하는 것이 어때?”
 “포기하다니?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으려면 무엇 때문에 역사와 정체성과 전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부천에 이사 왔겠나?”
 “생으로 사서하는 고생일 뿐이야.”
 “고생할 각오는 하고 있어.”  
 “이미 착수한 거야?”
 “음.”
 “사전 준비도 없이?”
 “한시가 급해.”
 “뭐가 한시가 급하다는 거야?”
 
▲ 압록강 복쪽에 있는 환인현桓仁縣에서 생산된 환인신대미桓仁新大米. 환인은 배달나라倍達那羅가 멸망한 이후에 단국檀國을 세운 단군왕검 조부祖父의 휘諱(죽은 사람의 이름)이다. 그를 『조선기朝鮮紀』에서 천일태제天一泰帝라 하였다.
 
이명지가 어이없어 하였다.
 
 “하늘엔 영계로 가는 영계 터미널이 있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서 사신四神이라 부르는 곳인데, 이곳에 제帝라 불리는 영계靈界 운영관運營官들이 있어.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청제, 백제, 적제, 흑제라 부르는 신명神明들이야. 여기에서 입수한 정보인데 말이야. 인간이 죽음으로 가는 시간을 관리하는 부서가 있고, 국가가 국가멸망으로 가는 시간을 관리하는 부서가 있다는 것이야.”
 “잔깐!”
 
이명지가 내가 하는 말을 중지시켰다.
 
 “그 정보가 어디에서 나온 정보야?”
 “나의 명상에서 나온 정보야. 나를 명상으로 끌어들여 내게 국가멸망의 정보를 알게 해 주는 분이 있어.”
 “그가 누구인데?”
 “감응신령이라 부르는 분이지. 황해도굿에서 초감흥이라 부르지. 무당들이 항상 초감흥이라고 발음해서 헛갈리게 하는 분이야.”
 “그의 실체가 무엇이야?”
 “산신각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산신.”
 “산신?”
 “호랑이 한 마리를 호위견護衛犬처럼 데리고 있는 분이야. 다시 말하면 단군왕검이야. 산신각에 가서 그분과 대화를 시도해 보라고. 자네라면 접속이 가능할 거야.”
 “그런데 왜 자네에게 감응신령이 나나나서 골치 아프게 영계의 정보를 누설하는 것이야? 이거 천기누설이 아닌가? 영계 터미널에서 무슨 음모를 꾸미는 거야?”
 “자네가 내게 청동팔주령을 주지 않았다면 그런 어이없는 일에 빠지진 않았을 거야.”
 “나를 비난하면 아니 돼. 나는 청동팔주령을 발견하게 해준 분의 하수인에 불과하니까.”
 그가 펄쩍 뛰었다. 
 “자네나 나나 둘이 다 그분의 수하가 틀림이 없군.”
 “청동팔주령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야. 청동팔주령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군.”
 “지금으로부터 5백 년 전에 이미 이 나라가 영원히 멸망할 것을 예언한 분이 있어.  격암 선생이 성주산에서 소울음소리가 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지.”
 “성주산에서 소울음소리가 날 데가 어디에 있어? 소시장이 있지도 않은데.”
 “상징이야. 상징.”
 “그렇다면 자네의 역사 알고리듬이 빛을 볼 때가 된 모양이군.”
 “그래서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야.”
 “부천은 이상한 곳이군. 자네가 느닷없이 있지도 않은 강 부하를 찾고, 격암 선생은 소가 단 한 마리도 없는 성주산에서 소울음소리가 나면 나라가 망한다고 예언했고.”
 “그 뿐만이 아니야. 또 더 있어.”
 “또 더 있다고?”
 “부천에서 부하와 함께 비류왕을 찾아야 하는 일이야.”
 “그것은 또 무슨 말이야?”
 “부천에서 망각된 역사를 회복시키자는 것이지. 즉 하남백제河南百濟, 한성백제漢城百濟 이전의 역사가 부천에서 있었다고 보고 소성백제邵城百濟의 역사를 찾는 거야.”
 “소성백제의 역사를 찾는다……. 그러면 자네가 추진하는 초기백제역사 발굴 프로젝트는 완성이 되는 것인가?”
 “또 있지.”
 “또 있다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끝내고 미래에 올 새 나라의 역사를 부천에서 시작하는 것이야.”
 “하! 완전히 돌았군.”
 이명지가 혀를 찼다.
 “이제 서론은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나는 이명지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하였다.
 
 “본론은 무엇이야?”  
 “우선 부천에서 부하를 찾는 일이지. 만약에 홍수가 나서 부천이 물에 잠기게 된다면 사라진 물길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설사 부천에 홍수가 진다고 해도, 집들이 물길이 될 만한 곳을 거의 다 가로막고 있는 판에, 사라진 강 부하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 일은 사막에서나 가능할 거야.” 
 “부천에서도 가능해. 만약에 시간 당 400mm의 폭우가 하루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쏟아진다면 집들이 한강이나 소래포구로 떠내려가고 부하가 나타날 거야.”
 
나는 어이없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비약이 심하군.”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또 급속도로 진행되어 가는 지구의 온난화현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점점 불어나는 태풍의 수는? 그리고 엘니뇨현상은? 생각해 보면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나는 복희시대에 산동반도 일대에 퍼부어 대었던 비를 상상하였다. 그때처럼 지금도 대홍수를 만나서 산동반도의 인구가 전멸한다면, 그때와 같은 영향을 한반도가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남아 있는 홍수설화는 그 시대 역사의 반영일 수 있다. 특히 춘천지방의 홍수설화는 단군왕검시대의 홍수설화일 수 있다. 어차피 산동반도를 강타한 비가 한반도로 넘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반도의 관문이자 부천의 관문인 부천에 홍수가 닥치면 부천에 새로운 물길이 생겨날지 모르는 일이다.
 
 “비류왕의 이름을 보자고. 물이 들끓으면서 흐른다는 뜻인데, 열을 받아서 들끓는 것이 아니라 홍수로 소용돌이쳐서 들끓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겠지. 홍수로 비등沸騰한다는 뜻의…….”
 “홍수로 들끓어…….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런 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만약에 부천에 그런 때가 갑자기 온다면 기적 중의 기적이 될 것이다. 
 “문자 알고리듬으로 들어가면 부천과 부하는 같은 뜻이기 때문에, 비류가 혼강의 지류인 부하를 떠나 부평의 옛 지명인 주부토主夫吐에 와서 왕이 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해지지.”  
 “그런가?”
 “생각해 보라고. 부천이라는 지명이 생긴 때가 조선의 태종 때야. 이때 중원에서 한반도로 넘어온 사람들이 써왔던 주州를 산山이나 천川으로 고쳤어. 이러한 역사를 보면 부천이 태종이전엔 부주富州로 불렸다고 볼 수 있지. 그런데 부천에 붙어 있는 부평의 지명이 고구려 때 주부토主夫吐였어. 나는 이 이름이 잘못 표기된 것이라고 봐. 아마 주부토州富吐였을 것이야. ‘부주富州가 주州에서 토해낸 새끼 땅’으로 볼 수 있어. 그러니 부천과 부평은 같은 땅이었다고 볼 수 있지. 나는 부천 ‧ 부주 ‧주부토가 부하 ‧ 부이강에서 나왔다고 봐. 그렇다면 부천과 인천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인천을 설명할 때, 비류백제의 '미추홀彌鄒忽'이라 말하고 있어. 고구려 때 '매소홀買召忽', 통일신라 때 소성邵城이라 불렀지. 그렇다면 지금의 인천에서 부천까지 비류백제의 영토였다고 볼 수 있어.  미추홀에는 ‘비류가 추모왕에게서 받은 땅’이라는 뜻이 있고, 매소홀에는 ‘소서노가 사들인 땅’이라는 뜻이 있고, 소성에는 ‘소서노의 성곽국가’라는 뜻이 있어, 우리 역사에서 부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부천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비류 이외에 누가 더 있겠어. 그는 온조의 형. 소서노의 아들. 연타발의 손자로 알려진 사람이야. 그러나 부천이 부하라는 추론이 그가 온조의 형이 아니고, 소서노의 아들이 아니고, 연타발의 손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하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봐.” 
“지금 요녕성에 가면 환인만족자치현桓仁滿族自治縣이라는 곳이 있어. 환인대미桓仁大米라 불리는 쌀이 생산되는 고장이지. 여기에 오녀산성五女山城과 졸본천卒本川이 있어, 오녀산성은 소서노召西弩와 관련이 있는 산성이고 졸본천은 고주몽高朱蒙과 관련이 있는 압록강의 지류야. 압록강에서 중국 쪽으로 뻗어 있는 제일 큰 지류이지. 
 이 강을 지금은 혼강渾江이라고 해. 혼강이란 두 물머리 강이라는 뜻이야. 아마 압록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강이라는 뜻일 게야. 이 강에 부하로 불리는 지류가 또 있어. 부하를 지금은 부이강富尒江이라고 해.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형으로 알려진 비류가 부이강 출신이야.” 
 
▲ 혼강渾江은 압록강鴨綠江의 중국 쪽 최대의 지류이다. 혼강의 지류가 부하富河(지금의 부이강富尒江)이다. 혼강을 비류수沸流水라 한다. 혼강 북쪽에 오녀산상五女山城이 있다. 오녀산성을 중국 쪽에서 오노산성五老山城이라고도 한다.
 
내가 부천의 역사와 관련하여 제일 먼저 지목한 사람이 삼한시대三韓時代 말기에 소래蘇萊로 들어온 소서노의 큰아들 비류沸流였다. 비류가 소래로 들어왔다는 확증은 없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비류가 압록강 건너에 있는 혼渾江의 지류인 부하 출신이기 때문에 부천과 관련이 있는 인물로 그를 제일 먼저 지목했던 것이다.
 
비류가 떠나온 곳의 지명이 환인桓仁이다. 환인은 요녕성의 동북쪽에 있는 환인현을 말한다. 소서노의 큰아들 비류의 이름이 된 비류수가 혼강이다. (一说即今辽宁东北桓仁富河, 今浑江支流富尔江之说) 혼강의 지류  가까이에 비류가 살고 있었다. 
 
환인은 단국檀國을 세운 환인 그분에게서 나온 지명이다. 단국 역사에서 환인은 단군왕검의 조부가 된다. 단군왕검은 부친 홍제가 붕어하자, 단국을 인수하여 그로부터 20년 후에, 단국의 국명을 조선으로 고치고 조부를 천일태제天一泰帝로 추존追尊하였다. 
 
나는 비류가 부하를 떠나 압록강 서쪽으로 내려와서 압록강 입구를 빠져나와 한반도 북부의 서해안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소래에 도착하여 부천으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때 그가 한반도로 가지고 온 지명 부하가 조선왕조 태종 때 부천으로 바뀌어 오늘날 지명 부천으로 고정되었을 것으로 본다.
 인천을 소성邵城이라 하는데, 비류의 어머니 소서노의 고향 소원진邵原鎭에서 이름을 따와 소성으로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거의 매일 부천의 역사 찾기에 매달려 있었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머리를 식힐 겸 서울의 중심가에서 열리는 몇 개의 포럼에 참여하였다. 전통 사학자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 포럼이었다. 그러나 나처럼 기존의 학문하는 방법에서 탈출하기를 모색하는 사람들은 이런 포럼에 참석하였다. 그들은 포럼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으려 하였다.  
 
다음에, 내가 부천의 역사를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또 한 사람은 우리의 현실에 없는 분이다. 우리는 그분을 살아 있는 사람을 보듯 보지 못하고,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듯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분의 쿼크를 만날 수 있고, 홀로그램을 만날 수도 있다. 그분이 내게 현신해 주기 때문이다. 내가 그분과 자주 만나게 되었을 때 그분이 내게 물었다. 
 
 “자네의 아우라를 내게 빌려줄 수 없겠나?”
 
나는 내게 아우라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아우라는 생명체가 뿜어내는 영광靈光이다. 나의 몸에 속한 영혼이 발산하는 광체인 것이다.
 
 “어떻게 빌려드리지요?”
 “내가 쿼크로 변할 때 내 쿼크가 은신할 수 있도록 아우라의 미세한 공간을 빌려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야.”
 “무겁지 않을까요?”
 “쿼크는 무게가 없는 존재야.”
 
나는 나의 아우라에 감응신령의 쿼크가 은신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그가 내 아우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쿼크의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그분이 3월 중순의 목요일에 한민족원로회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주산행 열차를 탔다가 만나게 된 분이다. 그는 소래산의 산신각에 좌정하였다. 그는 놀랍게도 산신으로 좌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그분이 오신 곳이 북극오성에 속한 태자성이었다. 나로선 믿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그분과 만난 이후에 이상하게도 그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