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거세 선생과 근화가 가겠다고 인사하였다. 

“가겠습니다.”
 
내가 감응신령에게 말했다. 
 
“민원 처리는 언제 할 것인가?”
 
감응신령이 내게 물었다.
 
“창조경제 신도시 건설 마스터플랜이 완성되는 대로 곧 착수하겠습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서둘러야 할 거야.”
 
우리는 산신각을 나왔다. 
 
“근화 씨,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소래산 장군바위가 있는데, 장군바위에 가 보았어?”
“가 본 적이 있습니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기도해 보았어?”
“해 보았지요.”
“뭐 느끼는 것이 없었나?”
“왜, 없었겠어요.”
“무엇을 느꼈는데?”
“기가 세다는 것을 느꼈어요.”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대답이 아닌 김빠진 맥주 같은 대답이었다. 
 
“다른 것은?”
“없었어요.”
“환상을 본 적은 없었어?”
“없었어요. 선생님은 보신 적이 있어요?”
“나야 본 적이 있지.”
 
나는 청동팔주령을 상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꺼내어 근화에게 주었다. 가볍게 진동이 오고 있었다.
 
“이 청동팔주령을 마애신상을 향하여 흔들면 환상을 볼 수 있을 거야.”
 
근화는 청동팔주령을 받아 몇 번 흔들더니 대번에 신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제가 흔드는 것이 아니라 방울이 저를 흔들어요.”
 
근화가 비명을 질렀다.
 
“가끔 그런 일이 있어. 놀랄 것 없다고.”  
 
나야 수시로 진동을 당해 왔으니 놀랄 일이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요?”
“마애상이 감응한다는 증거야. 마애상에 지금 어떤 고귀한 여자의 에너지가 들어와 있어. 그의 에너지가 보내는 파장이 감응을 일으키는 것이야.”
 
그는 신문사 문화부 기자 출신의 무당이므로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였다. 
 
“아무래도 마애상에 가 보아야 하겠어요.”
 
근화가 내게 청둥팔주령을 돌려주며 말하였다.
 
“혁거세 선생, 함께 가시겠습니까?”
“가서 할 일이 있습니다.”
 
혁거세 선생이 먼저 떠나고 나는 근화와 함께 마애상을 찾아갔다. 마애상은 산 정상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마애상이 있는 곳의 주소가 시흥시始興市 대야동大也洞 산140-3이었다. 시흥시란 새로운 인류가 태어나서 흥하게 되는 도시라는 뜻이고, 대야란 거대한 마고의 여음이라는 뜻이니, 앞으로 이곳에서 태어나는 인류는 마고의 자손으로 불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에서 이 마애상을 2001년 9월 21일자로 국가보물 제1324호로 지정하였다. 스마트폰의 인터넷을 검색하니 시흥시에서 올린 글이 있다. 
 
“마애상은 상의 전체 높이가 14m, 보관의 높이가 1.8m, 발의 길이가 1.24m, 발톱의 길이가 15cm, 귀의 크기가 1.27m, 눈의 크기가 50cm, 입의 크기가 43cm, 머리의 높이가 3.5m, 어깨의 너비가 3.75m이다. 
 
선각線刻으로 조각한 상인데, 머리에 연화문蓮花紋을 새긴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보관은 위가 좁은 원통형으로 당초문이 장식되어 있다. 둥근 눈, 코, 입이 큼직하다. 양쪽 귀가 길게 늘어져 있으며 목에 삼도三道가 둘러 있다. 양쪽 어깨에 천의天衣를 걸치고 있는데, 몸을 휘감고 있다. 가슴 밑에 결대結帶가 있고, 그 밑으로 유려한 곡선이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손바닥을 안으로 하였다. 왼손은 오른 팔꿈치 부근에서 손바닥을 위로 올렸다. 발은 연화대좌蓮花臺座 위에 양쪽으로 벌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애상이 주는 인상은 한마디로 말해서 장중하다.”
 
이러한 마애상 조각이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다고 안내판에 기록하였다. 아마 고려시대에 만든 마애상들은 도가의 여신상이거나 불가의 보살상일 가능성이 높은 신상들일 것이다. 
 
“마애상이시여! 내가 당신의 민원을 해결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나는 마애상에 감추어져 있는 쿼크에게 물었다. 나의 쿼크가 쿼크 대 쿼크로서 물은 것이다. 
 
“그렇다!”
 
마애상의 쿼크가 대답하였다.
 
“혹시 마애님과 초기백제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까?”
“알고 싶은가?”
“알아야만 마애님이 감응신령에게 제출한 민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알고 싶은 거야?”
“비류왕이 마애상을 조성했는지를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대가 그렇게 본다면 맞겠지.”
 
마애상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포사褒姒의 저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포사의 웃음이라는 말은 들어 보았어도.”
“동이족 여자들 가운데에 사대요희四大妖姬로 불리는 여자들이 있었어. 화이들이 제멋대로 불러온 명칭이야. 화이가 멸망시킨 동이족 나라의 여자 네 사람을 사대요희라고 했는데, 이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나라가 저주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망하게 된다는 뜻으로 쓴 말이야.”  
 
나는 펄쩍 뛸 만큼 놀랐다. 
 
“이 나라의 역사를 꿰뚫어 보시는 군요. 제게 아무도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비류왕의 원한이라는 것도 있지.”
 
비류왕의 원한이라니, 이 말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나는 우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일이 났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얼굴이 어둡군.”
“포사의 저주와 비류의 원한을 풀어야 한다니 걱정입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어떤 조치요?”
“감응신령의 도움을 받는 것이지.”
“좋은 정보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나라에 뒤엉킨 살과 고를 풀어야 멸망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어.”
 
이날 하백녀 마애상이 내게 준 정보는 이 나라에서 어느 누구도 얻을 수 없는 최상의 정보였다. 나는 하백녀 마애상과 작별하고 근화와 함께 차를 세워둔 곳으로 내려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기웃거리며 차 안을 살피고 있었다. 
 
“누구냐?”
 
나는 소리 질렀다. 그들은 내 소리에 놀라 도망쳤다. 잡귀雜鬼 쿼크의 홀로그램들이었다. 근화는 차를 몰아 산신각에 도착하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산신각 안으로 들어갔다. 감응신령 곁에서 백호가 나를 바라보았다. 동자와 동녀가 눈빛을 반짝거렸다. 누군가 신단에 새로운 음식을 갖다 놓았다. 
 
“상의할 일이 있어서 다시 왔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마애상과 나눈 대화를 감응신령에게 보고하였다. 
 
“그대와 하백녀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 긴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갑자기 단군왕검과 하백녀가 무진년(B.C. 2333)에 혼인한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는 조선을 국호로 선포한 해였다. 
 
“두 분이 부부이시지요?”
“그렇다.”
“전국에 있는 산신각마다 하백녀의 상도 합사시켜 드려야 하겠군요.”
“그렇게 해 준다면야 좋지.”
 
단군왕검이 그 말씀을 하자 웅녀가 단군왕검의 제1급비(妃)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 웅녀는 어떻게 할까요?”
 
웅녀는 웅심국왕의 딸로 단군왕검이 13세 때에 혼인한 첫째 부인이다. 웅심국은 한반도에 있었던 개마대국이다.
 
“웅녀도 합사하면 좋겠군.”
“우선 산신각 확장계획을 세워서 지방정부에 제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법이 없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국가멸망의 시계가 작동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방해할 때마다 멸망시간의 속도는 2배로 빨라질 것이다. 백호를 데리고 가서 서류 접수를 지연시키는 자를 잡아다가 화장시켜. 다른 방법은 필요 없다.”
 
나에겐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백제를 창건한 이를 비류왕이고 온조왕이 아니라 하였는데, 학교에서 백제를 세운 이를 온조왕이라 가르치고 있어서 이 왜곡된 역사를 어떻게 바로잡느냐 하는 것이었다. 비류와 온조는 둘 다 우이(우이를 우리는 우태라 발음해 왔다)의 친아들이고 우이를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이었다고 기록하였다. 이 기록이 마음에 걸렸다. (『三国史记』 百济本记中又提出另一种说法,认为百济创建者为沸流王,非温祚王。沸流王与温祚的父亲是优台,而优台是北扶余王解扶娄之庶孙。주, 台는 태로 발음하지 않고 고대의 발음 그대로 이로 발음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台에 夷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왜곡이 국가 멸망에 영향을 미칠까요?”
“역사를 왜곡하면 원한이 싸이기 때문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류왕의 원한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