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의 영계靈界터미널 북방현무칠수北方玄武七宿. 四神 중에서 북방을 지키며 현무玄武라 불린다. 마고가 마고성에서 인류를 추방할 때 천손족을 이끌고 천산주天山洲로 간 황궁黃穹의 좌정처坐定處로 황궁의 후손인 동이족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산신각에서 나와 집에 돌아오자 답답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해야 하였다. 나는 마누라에게 사기꾼이 자체발화로 불에 타죽었다고 말하였다. 마누라는 눈물을 흘렸다.

“이제 사기꾼이 죽었으니 돈을 받는다는 희망이 사라졌어. 나는 산신각에 가서 사기꾼을 왜 죽였느냐고 따져야 하겠어.”

마누라가 산신각에 갈 기세였다.

“밤이 늦었어. 가도 내일 가구려.”

내가 말렸다. 마누라가 주저앉았다. 다음 날 나는 고대역사를 바로잡는 거창한 작업을 하다가, 날이 어두워져 인적이 끊어질 시간에 마누라와 함께 고물차 라노스를 이끌고 산신각으로 갔다. 사기꾼이 불에 타죽은 산신각은 어둠에 휩싸여 음산하고도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차를 산신각 문 앞에 바짝 대고  내렸다.

기적이 자물통에서 일어났다. 굳게 잠겨 있어야 할 자물통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문을 열었다. 달이 없을 시간에 달빛이 산신각 안을 비추고 있었다. 산신상과 동자상과 동녀상이 살아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백호도 그랬다.

“미안합니다. 집사람이 오자고 하여 왔습니다.”

나는 감응신령에게 양해를 구했다.

“여보! 쌀을 누가 또 갖다놓았군요.”
 
마누라가 탄성을 질렀다. 뜯지 않은 쌀부대가 신단 앞에 놓여 있었다. 환인현에서 생산되어 포장한 쌀부대였다. 분명히 유 선생의 친구가 갖다 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가 갖다 놓았단 말인가?

“이 안에 화수분이 있나?”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화수분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래이 Society에서 갖다놓은 것이 분명할 듯싶었다. 마누라는 감응신령을 향하여 절하였다.

“산신님 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와서 청소도 해 드리고 옥수도 놓아 드리겠습니다.”

마누라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있었다. 감응신령이 실눈을 번쩍 떴다. 

“그대의 처를 내가 믿어도 되는가?”

감응신령이 내게 물었다.

“믿으셔도 됩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쌀을 가져가도 좋다.”

감응신령이 승낙하였다. 나는 환인 쌀부대를 들어다 차의 뒷좌석에 실었다. 이제 집에서 두어 달 동안 쌀이 떨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당신의 산신님은 영검하시군요.”

마누라가 말하였다.

“대단히 영검하신 분이야.”

마누라는 안심하는 눈치였다. 나는 마누라를 먼저 보냈다. 혼자서 갈 생각이었다. 마누라에게 영계의 비밀을 너무 많이 노출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내가 산신각 안으로 다시 들어오니, 감응신령 앞에 처음 보는 종이가 한 장 떨어져 있었다. 낡고 오래 된 종이 같았다.
 
“언제 누가 갖다 놓은 발원문發願文인가?”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걸 읽어.”

감응신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눈이 부실하여 안경을 껴야만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상의 안주머니에 있는 안경집에서 안경을 꺼내 귀에 걸었다. 초에 불을 붙였다. 주위가 밝아졌다. 글씨가 확대되어 보였다. 이 정도라면 읽을 수 있었다.      

▲ 조선朝鮮을 멸망시킨 진秦과 한漢, 래국萊國을 멸망시킨 제齊 3대가 이삼족법夷三族法을 시행하여 중원中原에서 동이족東夷族을 멸족滅族시키려 하였다. 이삼족夷三族은 동이족의 부자손父子孫의 삼대를 말한다.

“이 산신각과 인연이 있는 분은 반드시 이 글을 읽고 실천에 옮겨 주시기를 빕니다. 제 이름을 밝히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래이萊夷 Society의 회원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래이 Society를 대표해서 죄송스럽게도 어려운 청을 드리려 합니다. 저희 래이 Society에서 최근에 오컬트 수련 도중에 영계靈界 터미널 현무로부터 이상한 정보를 수신했습니다. 이 정보에 따르면, 저희 래이 Society 회원 중에서 미래에 인류를 구원하러 올 메시아인 도부신인桃符神人을 임신하여 낳을 여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여자 회원이 없는 저희 회에서 이 여인을 찾는 일입니다.  어려운 부탁인 줄 아오나 오컬트에 탁월한 능력을 타고난 분이 계시다면 저의 청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래이 Society에 협조해 주실 의향이 있는 분은 쌀을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쌀로서 약속의 징표로 삼겠습니다. 래이 Society 대표”
“제가 어떻게 하면 레이 Society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감응신령에게 물었다.

“하백녀 마애상에게 가보라.”

갑자기 편지가 부실 부실 부서지더니 흔적이 없이 사라졌다.

“편지가 사라졌습니다.”

내가 낙심하여 말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아직 알려서는 아니 되기 때문에 정보지가 없어진 것이야.”

사정이 그렇다면 받아들여야 하였다. 나는 어둠을 뚫고 소래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내가 근화와 둘이서 만나보았던 하백녀 마애상이 있었다. 대단히 거대하고 풍만한 여신상이었다.  나는 하백녀의 왼편 엄지발가락에 오른손을 대고 하백녀신상을 올려다보았다. 내 눈 앞에 사라진 편지가 다시 떠올랐다. 내가 읽지 못한 뒷부분이 보였다. 그것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내게 무엇인가 생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래이족을 만나고 싶습니다. 래이족을 만나면 제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소래포구에 역사관이 있다. 그곳에 가면 래이족을 만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회를 먹으러 소래포구에 가서 역사관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 역사관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아마추어 수준의 자료를 가지고 있는 역사관이었다. 문득 기억이 한 개 떠올랐다. 역사관에서 만난 노숙자에 대한 기억이었다. 역사관의 구석진 곳에 노숙자가 들어와 앉아서 지나가는 비를 피하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세차게 쏟아져서 탈출이 불가능한 공간에 감금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었군.”

누군가 그런 말을 하여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사진과 설명문이 벽에 붙어 있는 실내에 있는 사람은 나와 노숙자와 역사해설가 세 사람뿐이었다. 노숙자가 한 말이었다. 나는 갑자기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역사에 대하여 잘 아시오?”

나는 건방진 질문을 던졌다. 그가 내 마음에 드는 답을 준다면 회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대접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선생이 훌륭한 역사가라면 이런 데엔 오지 않았겠지.”
 
노숙자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였다.
 
“노숙자 선생, 역사를 전공하셨소?”
 
나는 또 물어야 하였다.

“소래蘇萊라는 문자를 해석하면 역사박물관을 하나 짓고도 남겠소.”

문자 알고리듬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이런 말을 하지 못한다. 고대사를 전공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에게 회 한 접시와 소주 1병을 대접한다고 해도 아깝지 않았다. 그래서 회와 소주를 사주었다.  나는 노숙자를 찾으면 무엇인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지금의 소래는 어시장魚市場이 있고, 전철역電鐵驛이 있고, 역사박물관歷史博物館이 있고, 아파트도 있고, 고속도로와 철교가 있는 복잡한 곳이다. 그러나 옛날의 소래는 한적한 포구였다.

“하백녀께서는 노숙자에 대하여 알고 계시지요?”
“잘 알지.”
“그가 누구입니까?”
“가끔 비류왕의 신명이 들어와서 춤을 추며 소래를 배회하는 딱한 사람이다.”
“그렇습니까?”

나는 비류의 신명이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래蘇萊라는 문자를 연구해 봐. 대박이 터질 것이다.”

하백녀가 노숙자와 비슷한 말을 하였다.

“대박이요?”

나는 대박이라는 말이 혹시 고대어가 아닌가 싶어서 물었다.

“내게 기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라 나도 써 본 것이다.”

하백녀가 빙그레 웃었다.

“소래라는 문자를 연구하겠습니다.”
“그대가 나를 찾아와 역사에 대하여 물었으니 충고를 하나 하겠네.”
“감사합니다. 말씀 하십시오.”
“그자가 무례하게 굴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있지. 그의 몸에 비류의 쿼크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데, 비류의 쿼크가 들어와 있으면 난동을 부려. 원한을 풀지 못하여 그런 것이니 노숙자에게 잘못이 없네.”
“비류왕이 난동을 부립니까?”
“그대가 비류왕의 원한을 풀어 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 난동을 부리지 않겠지.”  “딱하군요.”
“감응신령께서 그대의 몸에 백양보의 쿼크가 붙는다고 하던데 그런 말씀하지 않던가?
“하셨지요.”

나는 하백녀의 왼편 엄지발가락에서 손을 떼려 했지만 무엇인가가 손을 누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소래에 가서 노숙자를 찾아야 해.”
“노숙자가 제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가 이 나라의 멸망에 관한 정보를 줄 것이다. 그대는 그 정보를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해. 알겠어?”

설사 정보를 얻는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전달이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일개 서민이 대통령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보가 전달되지 못하면 이 나라는 중국에 망하거나, 일본에 망하거나, 북한에 망하게 될 것이다.”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영계인에게 망할 수도 있어.”

하백녀상이 아무도 들어서는 아니 된다는 뜻으로 쿼크대 쿼크의 통화법으로 내게 말하였다.  나는 하백녀와 작별하고 장군바위를 떠났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감응신령이 내게 입력시켜 준 역사자료 방으로 들어갔다. 소래蘇萊를 쳤더니 래국萊國이라는 문자가 떴다.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나는 중국의 [바이두 검색창]으로 들어갔다. 검색창에 정정丁鼎 정홍程红이라는 사람이  쓴 「래이와 래국사연구종술莱夷及莱国史研究综述」이라는 글이 떴다. 

▲ 왼쪽) 수인선水仁線 협궤열차挾軌列車가 오가던 소래철교蘇萊鐵橋와 (오른쪽) 소래역사관 앞에 언제 떠날지 모르고 서있는 허가-7호 소형기관차. 소래철교와 수인선 협궤열차는 세월의 흐름 따라 쓸모가 없어져 용도폐지 되었다.

“래이萊夷는 우리나라(주, 지금의 중국)의 선진시기先秦時期에 동부연해지구東部沿海地區에서 활동한 동이족의 한 지파로 산둥 반도山東半島에 토착하여 살았던 민족이다. 대략 상조후기商朝後期에 래이족이 자기의 국가를 건립하였다. 그 나라가 래국萊國이다.(莱夷是我国先秦时期活动于东部沿海地区的东夷族的一支,是山东半岛的土著居民。大约到商朝后期,莱夷族建立了自己的国家——莱国。)”

이 글은 수정이 필요하다. 동부연해지구는 산둥 반도로 조선시대에 여기에 번조선을 구성하는 동평국東平國, 청주靑州, 동래東萊가 있었다. 청주는 익도益都, 서울西菀, 청주부靑州府로 불렸던 조선의 국도國都를 뜻한다. 상조후기商朝後期에 래이족이 래국을 세웠다고 했는데, 이때는 진시황 8년으로 조선이 진에게 멸망했을 때이다. 조선이 멸망하자 동이족의 한 분파인 래이가 조선의 후신으로 래국을 세운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래국이 제齊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술책에 걸려 멸망하였는데, 이때, 제가 진秦이 시작하여 한漢을 거쳐 제齊로 이어져 내려온 이삼족법夷三族法을 동이족에게 시행하였다. 이삼족법은 동이족을 멸족시키기 위하여 만든 법이었다. 제는 진과 한이 동이족에게 했던 것처럼 동이족을 찾아 오구형五具刑이라는 형벌을 가하였다.

삼족을 멸한다는 말은 진한제秦漢齊 3대가 이삼족법을 시행하면서 생긴 말이다.  전국시대 말기에 동이족으로 구성된 래국 사람들이 대량으로 산둥 반도를 탈출하여 한반도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산둥 반도를 탈출한 동이족이 한반도의 소래, 화성, 고창에 상륙하여 정착하였다. 래이족이 마한을 세웠고, 삼한시대가 시작되었다. 래이에 속했던 소서노가 백제를 세웠다. 

▲ 본 소설의 화자인 나와 비류왕쿼크를 대리하여 노숙자가 비류왕의정서를 작성하였다.

래이족이 한반도로 진출하는데 교두보로 삼은 곳이 소래포구였다. 소래포구는 전국시대 말기인 B.C. 408년경에 중국 본토를 탈출한 동이족이 대량으로 상륙하여 산둥 반도에서 한반도로 들어오는 교두보가 된 곳이다. 이 교두보가 제齊 이후의 국가와 삼한三韓 이후의 국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으로 한반도로 들어와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이 상륙한 곳도 이 소래포구였다.
 
소래포구에 가면 인천시에서 세운 역사박물관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역사 설명문과 사진 몇 장이 벽을 꾸미고 있는 박물관이다. 건물의 크기에 비하여 내용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박물관 입구에 서있는 퇴역한 증기기관차의 화통이 소래의 지나간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지금도 노숙자가 옵니까?”

나는 역사 해설가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비가 올 때만 옵니다.”
“그래요?”
“그런데 왜 노숙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시지요?”
“그분은 나의 스승입니다.”

소래역사해설가는 내가 노숙자를 스승이라고 하자 놀라는 눈치였다.
 
“그분을 만나려면 비가 올 때까지 기다리셔야 할 것입니다.”
“왜요?”
“비가 올 때만 나타나니까요.”
“무슨 사연이 있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혹시 소래 철교 근처에 그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래철교에 가시겠어요?”
“어떻게 가지요?”
“소래역에서 갈 수 있습니다.”

▲ [양직공도梁職貢圖]에 나타난 백제국사百濟國使.“백제는 옛 래이來夷”라 하였고, “래이는 마한에 속한다”고 하였다. 래이來夷는 ‘어디에선가 온 이족夷族’이라는 뜻이고, 래이萊夷는 ‘산동반도에 정착한 래이來夷’라는 뜻이다.

그가 박물관 안에 있는 초소를 가리켰다. 지금은 없어진 옛날의 소래역을 재구성해 놓은 목조 건조물이었다. 미니추어 역무원이 목조 건조물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저기가 소래역이군요. 저 소래역에서 어디에 갈 수 있다고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포구의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차표를 사서 역무원에게 주면 갈 수 있습니다.”

역사해설사가 농담 같은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였다.

“정말 출발이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선로를 다 치워버렸지 않아요? 역도 가짜던데. 사람은 인형이고.”
“그러나 역무원이 열차표를 받는 순간에 쿼크가 활성화 되어 모든 것이 재생될 것이고 손님은 편하게 갈 수 있을 겁니다.”

역사해설사가 고집스럽게 말하였다. 나는 두리번거렸지만 객차는 단 한 량도 없고, 화통만 서있었다. 화통도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화통이었다. 화통에서 불쑥 사람의 머리가 하나 나왔다. 그는 기관사였다.

“어서 타시오.”

그가 내게 말했다.

“어디로 갑니까?”
“소래철교로 가고 싶소?”
“그렇소.”
“소래철교는 왜 가려 하시요?”
“노숙자를 찾고 있습니다.”
“아, 그 노숙자.”
“어디에 가야 그 사람을 찾지요?”
“소래를 구석구석 찾는 수밖에 없지.”

기관사가 딴청을 부리고 있어서 나는 열차 타는 것을 포기하여야 하였다. 나는 어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노숙자를 찾을 수 있었다. 노숙자의 행색 그대로 얼굴은 땟국이 흘렀고 옷은 지저분했다. 그는 한 상가喪家의 문 앞에 있었다. 어부로 혼자 살다가 죽었다는 사람을 장사지내는 상가였다. 그가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얻어먹으려고 기웃거리고 있었다. 나는 웃옷의 오른 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청동팔주령을 잡았다. 묵직하게 진동이 오고 있었다. 하백녀와 내가 연결되었다. 통화가 가능하였다.

“저 사람이 그 노숙자가 맞습니까?”
“맞아.”

하백녀가 확인해 주었다. 나는 노숙자 앞으로 다가섰다.
 
“내가 저녁을 사려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내가 노숙자에게 물었다.

“무슨 이유로 내게 저녁을 사겠다는 것이요?”

노숙자가 퉁명스럽게 반문하였다.

“선생을 괴롭히는 귀신과 대화하고 싶어서입니다.”
 
나는 정중하게 말하였다.
 
“내 몸에 귀신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소?”

노숙자가 나를 경계하며 물었다.

“나는 귀신이 무서워하는 사람입니다.”
“퇴마사요?”
“그렇습니다. 어떤 귀신도 나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그는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임금님 귀신도 꼼짝 하지 못하게 할 수 있소?”
“물론이요.”

나는 노숙자를 관찰하였다. 근화의 눈을 보았을 때와 달리 그의 눈에 지체가 높아 보이는 귀신이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술에 취한 모습이었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귀신이었다.


내가 물었다.
 
“지체가 높아 보이는 분이 어떤 사유로 노숙자의 몸에 들어와 계십니까?”

“내가 들어와 있고 싶어서 들어와 있겠소?”

귀신은 나를 경멸하는 투로 말하였다.

“나와 싸울 생각이 없다면 이 사람에게서 나오시오. 이야기 좀 하십시다.”
“나와 무엇을 이야기하겠다는 것이요?”
“비류왕 쿼크와 이야기하려는 것이요.”
“비류왕 쿼크라…….내가 비류왕이지.”
“비류왕이라면 나오시오,”
“내 몸에 허락 없이 들어와서 주인행세를 하는 귀신이 비류왕이로구나.”
 
노숙자가 탄식하였다.

“왜 임금님 귀신이 나 같은 힘없는 자를 괴롭힙니까?”
 
노숙자가 항의하였다.

 “그대를 분노의 화신으로 만들려고 했지. 이제 나의 정체가 들통 나 버렸으니 그대를 괴롭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분노의 화신이라니요?”
“잘 들어 두어라. 이 땅은 비류왕의 땅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내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내가 화를 내는 것이야.”
“이제 제가 원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대가 나의 원한을 풀어주겠다고?”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자신이 있습니다.”
“믿어지지 않아.”
“저를 도와주시면 방법이 생길 것입니다.”

나는 청동팔주령을 웃옷 주머니에서 꺼내어 흔들었다.

“진동이 갈 것입니다.”
“진동이 와.”
“진동이 징표입니다.”
“알았어. 나가지.”

비류왕 쿼크가 노숙자의 몸에서 나왔다. 그러자 노숙자가 긴장에서 풀려났다. 나는 감응신령이 계신 산신각으로 비류왕 쿼크를 모시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으로 가시지요. 제가 저녁을 대접하겠습니다.”

나는 비류왕 노숙자에게 말하였다. 그가 나를 따라나섰다. 나는 재래 어시장 입구에 늘어서 있는 횟집 중에서 한 집으로 들어갔다. 노숙자의 몸에서 역한 냄새가 났지만 참기로 하였다.

“무얼 드시겠습니까?”
 
나는 노숙자의 의사를 물어보았다.
 
“회하고 소주나 한 병 사시오.”
 
비류왕 노숙자가 말하였다. 나는 그가 요구하는 대로 주문하였다.

“의정서를 써서 증표로 삼아야 하겠다.”

비류왕 노숙자가 말하였다. 비류왕 쿼크가 말한 것이다.
나는 필기구와 종이를 갖고 있지 못하였다. 그래서 스마트 폰을 내놓았다.

“여기에 기록하면 되겠습니까?”
“좋다. 기록을 마친 다음엔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세상에 알려야 해.”
“어떤 내용으로 하시렵니까?”
“내가 말하는 대로 적으라.”
“말씀하십시오.”
“의정서 1. 비류왕을 소성백제의 시조로 모신다.”
“소성백제라면 어느 시대를 말합니까?”
“마한시대와 하남백제시대 사이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2. 비류왕의 사당을 성주산 밑에 짓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모신다.”
“성주산 밑이라면 어디를 말합니까?”
“그대가 사는 집이 있는 곳이다. 봄과 가을에 제사를 모신다. 3. 소성백제의 역사서를 만든다.”

나는 분주스럽게 문자판을 두드렸다.

“4. 부천의 이름을 부하로 고친다. 다 되었다.”

의정서는 다음과 같았다.

의정서
1. 비류왕을 소성백제의 시조로 모신다.
2. 비류왕의 사당을 성주산 밑에 짓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모신다.
3. 소성백제의 역사서를 만든다.
4. 부천의 이름을 부하로 고친다.

나는 의정서를 카카오톡으로 사방에 알렸다. 의정서가 카톡! 카톡! 소리를 내며 퍼져나갔다. 이상하다는 반응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비류왕이시여! 공무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문제로군요.”

나는 한숨이 나왔다.

“비가 많이 오면 자연히 해결이 될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홍수가 나서 부천시가 다 떠내려가면 도시를 다시 세워야 하니까 나의 사당도 지을 수 있게 된다는 말이야.”
 
듣고 보니 끔찍스러운 말이었다. 

“그렇다면 비류왕을 위하여 안심입니다. 그러면 원한이 다 풀리는 것입니까?”
“아니”
“그렇다면 큰일이군요.”
“전물이라도 얻어먹고 살게 저를 사당의 관리인으로 임명해 주십시오.”

노숙자가 비류왕 쿼크에게 말하였다.

“그렇게 하자.”

비류왕 쿼크가 대답하였다. 종업원이 우럭회와 소주와 매운탕을 내왔다. 

“먼저 회를 든 다음에 소주를 마십시다.”

내가 비류왕 노숙자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소주를 마시고 회를 씹었다. 문을 열고 한 남자가 청廳 안으로 들어왔다. 래이 Society 대표 한 베어였다. 그가 나와 노숙자 앞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내가 놀라서 물었다.

“감응신령께서 거리검 선생이 지체 높으신 분과 회담을 하시니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어서 오세요. 앉으시지요.”

그가 나와 노숙자 사이에 앉았다.

“저는 래이 Society 라는 단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 베어라 합니다.”

그가 비류왕 노숙자에게 인사하였다.

“제가 귀하신 분을 자주 뵙기는 했는데 알아보지 못하고 오늘에서야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진작 알아 뵙지 못하여 송구스럽습니다.”

한 베어 대표가 비류왕 노숙자에게 사과하였다.

“아줌마, 회 하나 더 주시고 잔 하나 더 주세요.”

내가 중국동포 여종업원에게 말했다. 여종업원이 먼저 잔과 술 한 병을 놓고 갔다가 다시 와서 회가 든 접시를 놓고 갔다. 나는 한 베어 대표에게 술을 따랐다. 그가 술을 마시고 회를 씹었다. 나는 한 베어 대표에게 비류와 노숙자와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해 주는 이야기가 그에게는 충격적이었다.

“부천이 홍수로 떠내려간다니 믿을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멀지 않아서 어떤 징조를 볼 수 있을 테니까 기다리시오.”

미류왕 쿼크가 말하였다. 어느새 술과 회가 다 없어졌다. 노숙자가 술을 더 마시면 아니 될 것 같아서 더 권하지 않기로 하였다. 탕을 놓고 식사하였다. 식사가 끝났다.  
“이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한 베어 대표가 말하였다. 비류왕 노숙자가 갈 곳이 없을 텐데 나는 그것이 걱정되었다.

“이분을 어떻게 하지요?”

내가 한 베어 대표에게 물었다.

“제가 래이 Society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저희 단체에 들렀다 가시지요.”
 

▲ 서주西周시대 래국萊國 출토품. 래국 땅에서 명도전明刀錢이 출토되었다는 것은 래국에서 조선의 유습인 해시海市를 열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회집 밖으로 나왔다. 어둠 속에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한 베어가 래이 Society에 연락하자 단체에서 몇 사람이 차를 가지고 나왔다. 우리가 타자 차가 출발하였다. 해안가의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까 1개 소대 인원 쯤 되는 사내들이 길가에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긴 담장으로 둘러친 연수원 문을 열어놓고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청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차가 도착하자 대원들이 곧 해산하였다. 연수원은 무거운 기운이 돌았다. 한 베어 대표가 부대표를 불렀다.
 
“이분을 목욕시켜 드리고 새 옷을 드린 다음에 정중하게 모시시오. 곧 환영연을 열 것입니다. 이분을 비류왕의 아바타로 모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대표가 비류왕 노숙자를 데리고 갔다.

“혹시 진사성인辰巳聖人으로 오셨습니까?”

한 베어 대표가 내게 물었다.
진사성인이라면 격암 남사고 선생이 진사 년에 성인이 올 것이라고 예언한 그 사람을 말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착각을 했나 봅니다.”
“만약에 진사성인 온다면 먼저 와야 할 분이 있습니다.”

나는 격암 남사고 선생이 예언한 말을 그대로 옮기고 있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격암 선생이 근화조선槿花朝鮮이라 예언한 분입니다.”
“근화조선을 알고 계십니까?”
“그분이 근화조선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근화라는 여자가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근화라……. 뭐하는 분입니까?”
“신문기자를 하다가 사모(巳母, Shaman)가 된지 이제 1년 된 여자입니다.”
“근화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니 때가 되면 한번 모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지요.”

나는 궁금한 것을 질문하였다. 

“도부신인을 임신할 여자를 어디에 가서 찾으실 생각입니까?”
“고민입니다.”
“대야동에 있는 산신각에 가서 기도하면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소래산은 소도에서 래이족이 온 산이라는 뜻이고, 대야는 마고의 큰 여음이므로 소래산 산신각이 영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모임에 여자가 하나도 없으니…….”
“감응신령이 답을 주실 겁니다.”

부대표로부터 비류왕 노숙자를 말끔히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 입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조상 쿼크들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한 베어 대표가 말하였다.

“그렇습니까?”
“제가 최고 비밀을 하나 선생님에게 공개하지요.”

한 베어 대표는 나를 래이 Society 연수원 경내의 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연수원은 부지가 상상을 초월할 수 없을 만큼 넓었다. 거대한 단지처럼 보였다. 어두워서 끝을 볼 수 없었다.

“바닥에 앉으세요. 기다리면 영계 터미널에서 물자와 인원을 싣고 오는 영계인들과 영계선靈界船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다리고 있으려니 소리 없이 영계선이 착륙하는 것이 보이고, 영계선의 밑바닥이 열리더니 사람들이 내려오고 물자들이 하역되는 것이 보였다. 영계선이 대기하고 있던 영계인을 싣고 하늘로 떠올라 사라졌다.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있었고, 그 세계에 영계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냥 넘겨버릴 일도 아니고.”

내가 말했다.

“저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거탑巨塔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들의 눈에는 보이는 거탑입니다.”
“거탑이 무엇입니까?”
“영계와 지구를 연결하는 탑입니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정부에 알리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나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때가 되면 영계인들이 다 알아서 할 것입니다.”
“우리가 저들의 식민지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나는 그곳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소래를 출발하는 마지막 전동차를 타고 성주산역에 와서 내린 것이다. 길고 긴 하루가 지나간 느낌이 들었다. 몸을 씻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자리에 누웠다.
 
내일부터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이 포럼에서 발표할 원고를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하백녀의 민원」과 포럼이 겹쳐서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자판을 두드리자 래이 Society라는 단어가 저절로 쳐졌다. 벽에 걸어 둔 웃옷 오른쪽 주머니에서 청동팔주령이 공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