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에서 백제시대 형태를 온전히 유지한 대형 목곽고(木槨庫 목재로 만든 저장시설)가 최초로 확인됐다. 또 백제 멸망기 신라당나라연합군과의 전쟁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유물이 다수 발굴됐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 충청남도(도지사 안희정), 공주시(시장 오시덕)는 공주대학교박물관(관장 이남석)과 함께 공주 공산성 2014년 제7차 발굴조사에서 백제 시대 완전한 형태를 갖춘 대형 목곽고(木槨庫)를 최초로 확인하였고, 백제 멸망기 나당연합군과의 전쟁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다량의 유물을 발굴하였다.

▲ 공주 공산성에서 백제시대 형태를 온전히 유지한 대형 목곽고(木槨庫 목재로 만든 저장시설)가 최초로 확인됐다.<사진=문화재청>

공산성 백제 왕궁 부속시설 발굴조사는 지난 2008년부터 연차적으로 진행되었고, 2014년에는 부속시설 영역 중앙부에 해당하는 곳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건물지군과 도로, 배수로, 저수시설, 축대 등이 기능과 위계에 따라 구획되어 있어, 백제 시대의 생활공간 활용과 건물 배치 기술까지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발굴조사한 유구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건물지군 북단의 대형 목곽고이다. 크기는 가로 3.2m, 세로 3.5m, 깊이 2.6m이며, 너비 20~30㎝ 내외의 판재를 기둥에 맞춰 정교하게 조성하였다. 바닥면에서 벽체 상부까지 부식되지 않고 조성 당시 모습 그대로의 원형이 남아 있다. 특히, 기둥 상부의 긴 촉이 테두리보 상부까지 솟아나 있고, 내부에서 기와 조각이 다수 출토된 점 등으로 보아 상부에 별도의 지붕 구조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 대형 목곽고 내부 출토품. 기와 조각, 다량의 복숭아씨와 목제 도구, 칠기 따위가 나와 목곽고가 저장시설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사진=문화재청>

그동안 백제 유적에서 목곽고는 대전 월평동 산성, 부여 사비도성 내에서도 발굴되었다. 하지만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으며, 하단의 바닥과 50㎝ 내외 높이의 벽면만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산성 목곽고는 상부 구조까지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목조 건축물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으며, 당시의 목재 가공 기술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백제 시대 건물 복원과 연구 등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내부에서는 복숭아씨와 박씨가 다량 출토되었다. 이와 함께 무게를 재는 석제 추와 생활용품인 칠기, 목제 망치 등의 공구도 수습되었다. 석제 추는 원형으로 중앙에 고리가 있으며, 무게는 36g이다. 칠기는 목재를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표면에 옻칠이 정교하게 칠해져 있다. 또 나무망치를 비롯하여 목제 공이와 손잡이, 목제 가공품 등이 수습되었다. 특히, 원통형의 망치는 너비가 19㎝이고, 손잡이 길이는 15.5㎝로 간단하게 휴대할 수 있는 것으로, 목재를 결구할 때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나무망치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공구로, 현재도 이러 형태가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디자인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

백제인들은 목곽고를 왜 만들었을까?  목곽고의 용도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형태나 구조로 보아  저장시설 또는 우물로 볼 수 있다. 벽면에 오르내릴 수 있는 말목 구멍이 있으며, 외면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점토 다짐을 한 점과 내부의 틈새를 점토로 메운 것으로 볼 때 저장시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저지대에 물이 많이 모이는 지역에 입지하는 위치를 볼 때 우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형 목곽고는 백제의 목재 가공 기술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추와 목기, 씨앗류 등 백제의 생활문화상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타임캡슐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백제 시대 건물 복원과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를 제공한 공주 공산성 발굴현장은 관계전문가 회의를 거쳐 보존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백제 멸망기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저수시설

건물지 북쪽의 저수시설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철제 갑옷, 옻칠이 된 마갑(馬甲), 철제 마면주(馬面冑, 말의 얼굴 부분을 감싸는 도구), 마탁(馬鐸, 말갖춤에 매다는 방울)과 함께 대도(大刀), 장식도(裝飾刀), 다량의 화살촉, 철모(鐵牟), 각종 철판 외에 다양한 기종의 목제 칠기도 다수 수습되었다. 이는 저수지 주변 건물지 대부분이 대단위 화재로 폐기되어 있는 정황을 함께 고려하면 660년을 전후한 백제 멸망기에 나․당연합군과의 전쟁과 같은 상황이 공산성 내에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 저수시설에서 출토된 철제 무기류(화살촉 등). <사진=문화재청>

지난 2011년 발굴 당시 저수시설에서는 ‘정관19년(貞觀十九年, 645년)’이 적힌 옻칠 갑옷과 말갑옷이 나와 주목을 끈 바 있다. 그런데 올해 저수시설 발굴조사에서도 명문이 적힌 옻칠 갑옷이 출토되었다. 명문은 「‘叅軍事’ ‘○作陪戎副’ ‘○人二行左’ ‘近趙○’(‘참군사’ ‘○작배융부’ ‘○인이행좌’ ‘근조○’)」 등 20여 자를 확인하였다. 명문에 대한 정확한 판독이 완료되면 저수시설에서 출토된 유물의 역사적 성격이 더욱 명확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저수시설에서 발견된 유물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백제 유적지에서는 최초로 발견된 말안장 뒤쪽에 세워 기를 꽂는 용도의 깃대꽂이다. 깃대꽂이는 철로 만들어졌으며, 약 60㎝의 크기로 S자 모양(巳行)으로 구부러져 있다. 삼국 시대 깃대꽂이는 가야는 합천의 옥전고분에서 실물이 발견되었으며, 고구려는 쌍영총과 삼실총 벽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제 깃대꽂이는 서산 여미리 출토 토기 문양으로만 볼 수 있었다. 이번 공산성 발굴조사를 통해서 실물이 최초로 출토됨으로써 백제 기승(騎乘)문화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은 공산성이 백제 왕궁지로서 진정성과 가치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발굴성과로, 백제역사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발굴단은 제60회 백제문화제가 진행되는 오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의 기간 동안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발굴조사 현장을 방문하는 국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민은 백제문화 축제 속에서 진정한 백제 문화재를 직접 접할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