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영향력은 글보다 효과적이다. 스토리는 기억해야겠지만, 노래는 흥얼거리면 되니깐. 전달매체로서 이만한 게 없다.

<레미제라블>에서 Do you hear the people sing?(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는 혁명의 노래로 시대를 초월한다. <겨울공주>의 OST Let it go(렛잇고)는 어떠한가? 국경을 넘어 불리고 있다. 유트브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버전이 그렇다. 스토리와 상관없이 흥행몰이하고 있다.

<인사이드 르윈>의 주인공은 뮤지션이다. 이야기에 기대기보다 추억의 포크송을 듣는 마음이면 좋다. 그러니깐 말이 극장이지 콘서트장을 다녀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29일 개봉해서 설 연휴만 2만 8,702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봤다. 예술영화시장에서는 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예술영화는 2만 명에서 3만 명 정도만 모아도 흥행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7만 명을 돌파해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 영화 인사이드 르윈에서 무명의 포크 가수 르윈 데이비스

음악도 인생도 실패한 남자

무명의 포크 가수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는 집도 얻고 직장도 없다. 그의 재산은 기타가 전부다. 카페에서 노래하다 밤이 되면 이 집 저 집의 소파에서 눈을 붙인다. 뉴욕의 추운 겨울을 코트도 없이 거니는 모습은 애처롭다. 잠자리 신세를 진 골페인 교수의 집에서 나오다가 고양이가 따라 나온다. 어쩌다가 고양이를 키우는 보모의 역할을 떠안게 됐다. 친구의 아내 진(캐리 멀리건)은 르윈의 아이가 임신했을지도 모른다며 온갖 험담을 퍼붓는다. 이쯤 되면 찌질한 남자의 대표주자다.

그런데 그는 가수다. 비록 새 음반이 음반사 창고에서 재고만 쌓이고 과거 함께 활동했던 동료는 자살했다. 어느 날 시카고로 떠나고 그곳에서 유명 프로듀서가 주최하는 오디션도 본다. 그렇다고 뮤지션으로 성공하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다. 안 되면 아버지처럼 항해사로 돌아갈 수 있는 자격증도 있다. 그럼에도 가수로서 놓지 못하는 기타처럼 정체성을 지키고 싶다.
 
자존심은 어찌나 센지 자신을 재워주는 골페인 교수 부부와 친구들 앞에서 노래 한 곡을 부르다가 관둔다. 골페인 교수가 이런 곳에서 강의할 수 있느냐고 나는 노래 못한다고. 며칠 후에 돌아와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잠을 청하는 장면은 웃음이 나온다.

▲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포크 음악의 세계를 만난다고 보면 된다.

돌고 도는 인생, 노래는 영원히

만일 영화가 이대로 끝났다면 허탈했을 것이다. 집시처럼 살아가는 어느 무명 가수의 방황기나 다름 없을 테니깐.

하지만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영화의 힘은 포크에 있었다. 우리나라 양희은, 송창식, 김세환 등으로 대표되는 포크세대의 음악을 미국에서 만난다고나 할까? 미국의 밥 딜런이 포크를 대중화되기 이전의 1950년~1960년대 음악을 만날 수 있다. 눈보다 귀가 즐겁다.

조원희 영화감독은 “인사이드 르윈은 미국의 서편제 같은 영화”라며 “통기타 한 대를 들고 시인처럼 노래하는 포크는 사실 미국 백인들의 민요가 근원이다. 말하자면 미국의 전통음악인 셈이다”라고 말했다.(한겨레 1월 24일)

영화 제목은 실존인물인 데이브 반 롱크라는 포크 가수가 1964년 발표한 앨범제목 ‘인사이드 데이브 반 롱크’(Inside Dave Van Ronk)에서 따온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예술영화의 거장 코엔 형제는 그의 사연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르윈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관객을 알아주는 엔딩은 없다. 코엔 형제는 그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놓는다. 르윈은 다시 노래를 부를 뿐이다. 그리고 첫 장면과 마찬가지로 어느 이름 모를 행인에게 두들겨 맞는다. 그의 괴팍한 성격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르윈과 같은 무명 가수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끝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노래를 통해 그의 생을 연장한다. 가수는 떠나도 노래는 남으니깐. 포크 세대에게 추천한다.

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 2013), 조엘 코엔, 에단 코엔 감독, 105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