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끝이 좋으면 다른 모든 것들도 여기에 짜 맞추고, 끝이 나쁘면 이전의 모든 치적과 공적이 묻혀 버리고 개인의 인격까지 철저하게 짓밟히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바로 보고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간 <그들은 어떻게 시대를 넘어 전설이 되었나>는 과거의 역사를 호출해 현재를 묻는다. 그 방식이 재밌다. 역사에서 상반된 평가를 받은 인물을 라이벌 구도로 맞춘 것이다. 이를테면 선덕여왕과 의자왕, 궁예와 왕건, 광해군과 인조, 김부식과 묘청 등이 그들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자주 출연했던 인물들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선덕여왕와 의자왕을 살펴보자.

한민족 최초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드라마 <선덕여왕>은 높은 시청률 만큼이나 역사 속의 평가도 후하다. 반면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은 어떠한가? 포털사이트에 의자왕이라고 검색하니 관련어로 삼천궁녀가 붙는다. 삼청궁녀와 놀아난 의자왕의 이미지는 무능한 캐릭터다.

이에 대해 책은 통치자들이 실제로 했던 처신과 남의 눈에 비친 모습은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선덕여왕은 즉위하면서 어려운 백성을 도와준 점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분황사를 짓고 황룡사 9층 목탑을 새로 세웠다. 사찰을 세우면 사람이 모여 시장이 활성화되고 유사시에는 스님들을 승병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구려왕이 신라를 치려 하다가 신라 삼보(三寶, 진흥왕 때의 황룡사장륙상, 진평왕의 천사옥대, 선덕여왕 때의 황룡사 구층탑)의 이야기를 듣고 계획을 포기했다는 설화도 있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최초라는 수식어에 가려진 것이 많았다. 당시 기록에는 신라의 승병이 국가의 전란에 활약했다는 기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고구려왕이 황룡사 9층탑 때문에 쳐들어오지 못했다고 믿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또한 사찰을 세우는 것은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다. 당시 선덕여왕은 분황사를 세우기 이전에도 황룡사 같은 대규모 사찰이 이미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도 634년 분황사, 635년 영묘사를 세웠던 것이다.

반면 의자왕은 백제의 마지막 왕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된 측면이 많았다. 당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와 신라의 기록에 따르면 의자왕에 대한 평판은 나쁘지 않았다.

『삼국사기』에는 ‘웅걸차고 용감하였으며 담력과 결단력이 있었다.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기고 형제와는 우애가 있어서 당시에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렀다’라고 되어 있다.『구당서』「백제전」에서도 ‘의자는 효행으로 부모를 섬겨 이름이 알려졌고 형제와도 우애가 깊어 사람들이 해동의 증(曾)․민(閔, 증삼과 민손 중국 춘추시대의 대표적인 효자)이라 불렀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의자왕에 대한 평가는 집권 15년 이후부터 나빠지기 시작한다. <삼국사기>를 쓴 사관들 때문이다. ‘태자궁(太子宮)을 극히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해 책은 의자왕이 사치를 통해 나라를 망쳤다고 본다면 대외적으로 어려운 와중에 황룡사를 비롯하여 많은 사찰을 지은 선덕여왕 때 신라가 망했어야 할 판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의자왕이 술과 향락에 빠졌다고 오명이 있는데, 당대 기록에는 의자왕이 술과 관련된 문제가 있었다는 말은 없었다. 의자왕이 말년의 정치를 두고 ‘전투에 잇따라 승리한 의자왕은 어느덧 자만심에 빠져 독재적인 통치 스타일로 기울어졌다’라는 평가도 뒤집어 말하면 즉위 초의 정치가 별로 나무랄 데가 없었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즉위 초기에 많은 왕족을 귀양 보낸 사실이 있다. 의자왕은 많은 왕족을 숙청했지만 이후 백제는 10년이 넘도록 순항했다. ‘독선적인’이라는 표현보다 ‘결단성 있다고 볼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의자왕에 대한 평가는 여러 치적에도 불구하고 당대와 달리 후대에 ‘나쁜 왕’이라고 몰리고 있다. 이는 유교적인 역사의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나라가 망한 원인을 지배층의 도덕적 타락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망한 나라의 마지막 통치자에 대해 좋게 평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책은 “지나간 역사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기 위해 다양한 기록물을 검토하며 분석해보지만 역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패자는 좋지 못한 이미지로 각인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한 점은 곱씹어볼만하다.

그들은 어떻게 시대를 넘어 전설이 되었나/이희진·은예진 지음/아름다운날/328쪽/1만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