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망한 것은 비단 무력이 약하고 경제가 가난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정신이 약해서 망한 것이다. 역사 정신이 약해서 망한 것이다. 왜 민족정신이라 하지 않고 역사 정신이라 하는가. 역사는 우리를 배신했다. 그런 역사를 왜 믿는가. 그러나 우리가 바로 그것 때문에 망한 그 정신은 우리 역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우리를 망치고 우리를 다시 살려준 정신이 우리 역사였던 것이다.”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인의 역사정신(석필)>을 펴내며 이같이 말했다. 역사는 단순한 정치사, 경제사, 문화사, 사회사가 아니라 정신사라고 강조한다. 사람의 몸에 70%가 물로 가득차 있다면 역사 속에 정신이 70%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 정신은 역사가의 가슴 속에 있다고 밝힌다. 저자는 역사정신을 가슴으로 느끼고 깨닫고 외친 민족사학자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 위당 정인보 등을 소개한다.

백암이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쓴 까닭은 국혼을 잃고 나라를 잃으면 민족이 다시 망한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다.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역사는 멸할 수 없다’라는 말은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정신이니 형체는 죽어도 정신만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의병과 항일투쟁 그리고 3․1운동 등에서 나타났다.

저자는 국혼이 광복 이후에도 중요하다고 밝힌다.

 “민족이 넋을 잃고 얼이 빠지고 정신이 나간 탓에 나라가 망한 것이지 몇몇친일파가 나라를 망친 것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국혼을 갖고 국민모두가 독립운동을 해야 하며 독립이 된 뒤에는 망국을 교훈 삼아 절대 다시는 국혼을 잃어서는 안 된다. 독립되었다고 해서 다시 온 국민이 국혼을 잃어버렸다면 나라는 다시 망하는 것이다.”

단재는 역사란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아>를 우리민족으로 <비아>를 다른 나라의 민족으로 해석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아>에는 <대아>와 <소아>가 있는 것에 주목했다.

“대아는 정신적 <아>요. 영혼적 <아>이다. 물질적 <아>와 육체적 <아>는 <소아>이다. <소아>는 사死하나 <대아>는 불사不死하니라.”

즉 <아>란 <소아>가 아니라 <대아>인 것이다. 대아와 소아를 혼과 백이라고 한다면 대아는 민족혼이요 국혼인 셈이다.

이는 국가를 정신상의 국가와 형식상 국가로 나뉜 것에도 적용된다. 정신상 국가는 ‘민족의 독립할 정신’, ‘자유로울 정신’, ‘생존할 정신’ 등을 말한다. 형식상 국가는 강토, 주권, 대표, 육해군 등 유형적인 집합체다.

단재는 정신상 국가가 망하면 형식상 국가는 망하지 않았어도 그 나라는 이미 망한 것이며 정신상 국가가 망하지 않았다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은 나라라고 설명한다. 이는 정신사의 국가 즉 대아大我가 살아야 나라가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위당이 단군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밝힌 5천 년간 조선의 얼, 일제의 조선사 편찬에 뿌리를 둔 일제식민사학 등을 담았다.

박성수|한국인의 역사정신|석필|415쪽|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