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희비가 엇갈리겠지만 해방감은 공통적이지 않을까? 수험생과 가족들에게 유쾌한 웃음과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를 찾았다.

현재 다양성 영화관객 1위를 달리며 주목받는 ‘어떤 시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라 다소 진부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런데 웬걸? 웃음과 눈물로 가슴을 적시는 작품이 3개나 된다.

순수한 우정을 만날 수 있는 <두한에게>, 노인과 꼬마의 좌충우돌 스토리가 배꼽 잡게 웃기는 <봉구는 배달중>, 입대를 앞둔 아들과 어머니의 사연을 감동적으로 풀어낸 <얼음강>이 그것이다.
 
특히 아역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3개의 시선을 모두 긍정할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다. 그것은 감독의 시선일 뿐이다. 단지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듯, 이웃들의 삶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된다.

 

# 친구

첫 번째 영화 <두한에게>는 지난 2010년 <무산일기>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대상을 비롯해 부산영화제, 도빌아시아영화제를 휩쓴 박정범 감독이 내놓은 작품이다.

영화는 뇌병변 장애를 가진 두한(임성철)과 비장애인 친구 철웅(김한주)의 우정이 태블릿 PC가 없어지며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누가 옳고 그르다는 도덕적 심판을 내리기에 앞서 이들의 마음속에서 겪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박 감독은 ‘두한이는 실제 친구 이름’이라며 자전적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보통 가난과 잘 연결된 장애인 집과 달리 두한이가 사는 집은 부유하다. 반면 철웅은 형이랑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만큼 가난하다.

뒤뚱거리며 걷는 두한이는 교사, 친구, 이웃들로부터 고립된 존재다. 아무도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두한의 말을 알아듣는 철웅을 통해 소통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마지막으로 둘이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어 해맑게 웃는 모습은 친구란 무엇인지 묻는다. 가난, 부자, 장애, 비장애로 칸막이 칠 수 없는 순수한 우정을 전한다.

 

# 노인

웃음이 터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빵빵 터진다.

이상철․신아 두 감독이 제작한 <봉구는 배달중>은 실버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는 71세 봉구(이영석)가 혼자 길에 남겨진 6세 행운이(황재원)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다가 졸지에 유괴범이 된 하루를 그린 영화다. 그런데 왜 웃음이 나오냐고? 외롭고 힘든 독거노인의 삶을 유쾌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회문제로만 지적되는 ‘고령화’나 ‘독거노인’ 문제를 봉구와 행운이 겪는 좌충우돌 스토리로 흥미롭게 그렸다.

다소 과장된 표정이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더 인간적으로 와 닿는다. 버스 환전을 놓쳐서 교통카드 잔액이 부족해진 모습이나 글을 몰라 스마트폰에 도착한 문자를 볼 수 없는 모습 등은 독거노인의 삶 그대로다.

‘나도 너만한 손주가 있어’라고 말하는 봉구 씨는 이민 간 딸의 가족이 보고 싶다. 그의 소원은 복권당첨이다. 딸을 만나려면 미국으로 가야 한다. 행운이가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영상편지를 본 봉구. 그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 군대

민용금 감독이 제작한 영화 <얼음강>은 입대를 앞두고 여호와증인 신도로서 병역 거부를 선택한 선재(공명)와 감옥에 보낼 수 없는 어머니(길해연)의 갈등을 그렸다.

민감한 주제다. 그래서 익명 댓글로 “군대 가지 않으려면 이민 가라”고 욕부터 나올 수 있다. 여호와 증인은 기독교에서도 이단으로 배척받는다. 그래서 국가 내 왕따가 종교계 왕따로 이어진다. 작품은 이러한 사회적인 갈등을 잠시 보여줄 뿐이다. 단지 병역거부자 아들과 어머니가 겪는 가족의 고통에 집중한다.

첫 장면은 선재가 얼어붙은 한강을 발로 밟으면서 시작한다. 신앙심과 국가관의 충돌. 그 중간지대는 허용할 수 없다는 사회에 대한 도전을 표현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군 복무를 요청한다. 어미 가슴에 못질을 하지 말라는 부탁이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선재는 신앙을 고수한다.

그런데 이들과 다른 시선으로 카센터 사장(정인기)이 있다. 그는 입대 날에 사라진 선재를 찾는 어머니를 돕는다. 선재를 카센터 사무실에 가둬놓는다. 하지만 아들을 찾은 어머니는 자신을 도와준 사장의 뺨을 때린다. “왜 죄 없는 아들을 가둬 놓느냐”라는 말과 함께. “왜 그러세요?”라고 외치는 사장의 말이 공허해지는 순간이다.

아들만 바라보는 어머니, 신앙만 바라보는 아들. 이들을 바라볼수록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마치 선재를 좋아하지만 고백하지 못해서 맴도는 연주(박주희)처럼 영화가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노인, 장애인, 병역거부 3개의 단어에는 ‘문제’가 꼭 따라붙는다. 그래서 사회적인 차원에서 다뤄진다. 그러나 영화 <어떤 시선>은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친구, 할아버지와 아이,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통해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한다.

물론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대신 차이가 차별이 될 때 갈등과 폭력이 발생하고 이는 반복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가치를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영화는 유쾌한 웃음과 함께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어떤 시선>, 109분. 12세 관람가

[사진=영화 <어떤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