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입시를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요즘처럼 국제중학교도 없었고 영어학원 수학학원 논술학원이 이렇게 많지도 않았다. 참, 그때는 수행평가를 가르쳐주는, '줄넘기학원' 같은 것도 없었다.

 내 또래들 사이에 유행했던 사교육은 바로 피아노학원과 미술학원이었다. '바이엘'을 떼고 '체르니'를 몇 번까지 쳤느냐가 당시 우리끼리 서로의 피아노실력을 가늠하던 기준이었다. 나는 피아노보다는 피아노학원에 모셔진 <슬램덩크> 만화책에 혹해서 열심히 학원을 다녔지만 말이다.

 다행히 미술학원은 제법 열심히 다녔다. 삼촌이 미술학원을 차려 공짜로 다녔던 것도 한몫했던 듯하나, 미술에는 꽤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라 그려봤자 4B연필로 크로키를 하거나 수채화로 풍경화나 정물화를 그리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진지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그린다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자라난 것 말이다. 같은 것을 보아도 누가 그리느냐,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그리느냐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리는 그림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것이다.

 그림을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사회인이 되고 나서 나에게서 그림은 상당히 멀어진 느낌이다. 음악이야 '대중가요'라는 이름으로 흔하게 듣게 되었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개봉 영화를 보는 것도 평범한 유흥 수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동경했던 그림을 접할 기회는 아주 드물었다.

▲ <명화를 만나다 -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사진=강만금 기자]

 그러던 중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그만 다니게 된 미술학원에서 품었던 그림에 대한 동경을 해소할 만한 전시가 열렸다. <명화를 만나다 -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전이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그림 100점을 선정하기 위해 꼬박 1년을 투자한 결과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57명의 작가가 그린 수묵채색화 30점, 유화 70점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시작하여 내년 3월 30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에 적어도 두 번은 더 올 것을 다짐하며 아래에 두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림과 함께 담긴 그림을 그린 이의 이야기를 함께 옮긴다.

 

❏ 천경자, 초원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천경자' 中 - 박경리

 친구였던 소설가 박경리는 '천경자'라는 제목의 시에서 화가 천경자를 이렇게 표현했다. 꽃이나 여인, 여행에서의 풍광을 화폭에 담는 그는 화려하고도 감각적인 그림을 그려온 작가이다.

 이 그림은 작가가 아프리카를 여행했을 당시 초원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림 속 맹수인 사자와 초식동물인 코끼리 기린 얼룩말 모두 평온하기 그지없다. 그림 속에서 평온하지 않은 것은 코끼리 등에 나체로 올라탄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 여인, 작가뿐이다.

 누구보다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그의 그림은 미술품 시장에서도 단연 인기다. 그러다 보니 <소> 시리즈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에 이어 가짜그림이 많은 작가가 바로 천경자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3대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지난 2007년과 2009년 그의 작품 '초원 ll'이 12억 원에 낙찰되며 언론지상에 오르내린 바 있다.

 

❏ 운보 김기창, 아악의 리듬

 운보 김기창 화백은 일곱 살 나던 해에 장티푸스를 앓아 여덟이 되던 해부터 귀가 들리지 않았다.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으나 그림에 대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는 그를 이당 김은호 화백 슬하에 들어가 그림 공부를 하도록 했다.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의 어화를 그린 이당 아래에서 그는 문하생이 된 지 6개월 만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상을 하며 미술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운보는 들리지 않는 대신, 그 들리지 않음을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이 그림은 전통음악인 아악을 귀가 아닌 몸으로 듣고 화폭에 옮겨낸 것이다. '듣는 것'을 '보는 것'으로 감각을 전환시킨 그의 작품은 어찌 보면 그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림에 드러난 들리지 않는 그의 절실함도 함께 말이다.

 단, 27살이 되던 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추천작가가 된 이후 광복이 되던 해까지 친일활동을 했던 작가라는 것은 오점이다. 그가 1만 원권 지폐의 세종대왕 인물도안을 그린 것에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 이유도 일제의 행위를 미화한 그림을 그린 그의 행적과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