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 시리즈 영상이 화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김진혁 PD는 단재의 어록을 딴 <미니다큐 Five minutes - 역사를 잊은 민족> 시리즈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전한다.

김 PD는 EBS에서 지식채널e과 다큐프라임 등을 제작해 반향이 높았다. 그러나 반민특위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의 제작이 중단된 것에 관련해 사표를 제출했다. 현재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 <김진혁의 미니다큐>를 만들고 있다.

▲ ‘역사를 잊은 민족’ 시리즈(영상 캡쳐)

이 시리즈의 등장인물은 대일항쟁기 문화통치를 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1858-1936)와 그를 암살하려던 강우규 의사(姜宇奎, 1855-1920)이다.

일제는 조선을 강제 합병하고 무력통치를 펼쳤다. 그러나 조선은 1919년 삼일운동으로 저항한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밤이 되어도 전등을 켜지 않았다고 한다. 민중의 습격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삼일운동을 계기로 일제는 무력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방향을 바꾼다. 이때 조선을 통치할 적임자로 미국 유학파 사이토 마코토가 등장한다. 그는 세련된 화술과 매너를 지녔고 소탈한 서민적 풍모로 가졌다. 조선총독부 3대 총독으로서 사이토 마코토는 조선인 교육 기회 확대, 언론과 출판의 자유 허용을 내건 문화통치를 주도했다.

그의 전략은 주효했다. 조선인 사이에 ‘나도 노력하면 일본인이 될 수 있다’는 의식이 싹튼 것이다. 당시 헌병 보조원과 공무원에 대한 조선인들의 경쟁은 치열했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일제는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식민지 역사교육기구인 ‘조선사편수회’가 그것이다. 친일파 이완용과 박영효가 조선사편수회 고문이었다. 도쿄대 출신 일본 최고의 사학자들이 투입된다. 총 사업기간 16년이었고 백만엔(현재가치 200억원) 예산을 들여 총 35권의 조선사를 편찬한다.

이때부터 조선의 시작은 단군 조선이 아니라 신라라고 날조된다. 조선은 항상 외세의 침략을 당했다고 왜곡했다. 독자적인 역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조선사편수회 방침이었다.

일제의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는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미화했다. 친일파도 앞장섰다. 일제가 징병제를 실시하자 교육자 김활란은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라고 말했고 작가 최남선은 “보람있게 죽자”고 선동했다.

제작진은 사이토가 총독으로 취임한 1919년 9월 2일을 주목한다. 백발이 성성한 강우규 의사(62세)가 서울역 광장에서 사이토 일행을 향해 폭탄을 던진 것이다.

비록 사이토를 암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일본 경찰 37명이 죽거나 다쳤다. 강 의사는 이듬해 11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는 강 의사 의거 92주년을 기념해 구 서울역 앞에 동상을 건립했다. 다음은 1920년 11월 선생이 죽음을 앞두고 대한의 청년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