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으로 들어 가보(甲午)세.”

2014년은 1894년 이후로 두 번째로 맞이하는 甲午年으로 말의 해이다. 특히 갑오의 ‘갑’이 청색을 나타낸다고 해서 청마(靑馬)의 해로 불린다. 그래서 힘차고 진취적인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역사 속 ‘갑오년’은 말처럼 역동적인 한 해이었다.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가 바로 우리 역사 속‘갑오’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을 비롯한 중국ㆍ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패권 다툼이나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최근 중국 정부에서는 만주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이것은 지난 6월에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 표지석이라도 세워 달라는 요구에 기념관 건립으로 화답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환영하고 있지만 일본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개관한 것에 대해 “안중근은 일본 초대 총리를 살해, 사형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는 ‘역사의 양심에 눈감은 스가 일본 관방장관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대변인 명의 논평에서 “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 독립과 동양의 진정한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치신 위인”이라며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존경받는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 대한제국에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무력을 동원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침탈을 주도했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짓밟고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해악을 끼친 원흉"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만주 하얼빈역에 세워진 안중근의사기념관의 진정한 역사적 의의는 안중근 의사가 쏜 대상이 이토 히로부미 한 개인이 아니었고 동양 평화에 해악을 끼치는 제국주의를 향해 쏜 것이며, 그 뜻을 기리고자 기념관을 건립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ㆍ중국ㆍ일본 등 동아시아 3개국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특정한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에 대해서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거듭 보여 왔었다. 중국은 동북공정 등으로 지속적으로 역사 도발을 해오고 있고 일본은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을 줄기차게 하고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표현한 것은 몰상식하고 몰역사적이며 아직도 제국주의 침략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퇴행적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즉 아전인수적이고 일관되지 못한 역사인식을 답습하고 있음에 답답할 따름이다.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총리 등 지도급 인사들이 참배하는 행위를 멈추고 하루속히 과거 일본 제국주의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겸허한 마음으로 역사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한ㆍ중ㆍ일 삼국은 역사 이래로 서로 일정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어 왔기 때문에 관계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계사를 말할 때 서로 망원경을 마주 보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한쪽은 과대평가하고, 다른 한쪽은 과소평가한다는 뜻으로 서로 상대를 정확하게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서로 올바른 관계정립은 어려워지고 관계만 악화되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반일 보다는 극일이 하나의 대안일 수도 있음을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 이다. 요즈음 한ㆍ중ㆍ일 역사인식의 대립 양상을 보면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120년 전 갑오년인 1894년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1894년 갑오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근대사의 한 획을 긋는 세 가지가 있었다. 반봉건과 반외세를 천명하였던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동학농민군들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청나라와 일본은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을 벌였으며, 조선왕조는 비록 일본 주도하에 이루어진 개혁이긴 하지만 갑오경장이라고도 불리우는 갑오개혁을 통하여 다 쓰러져 가는 국운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결과적으로 1894년 갑오년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조선의 자주성은 땅에 떨어지고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반면에 이것에 반대하는 민족정신수호의 저항정신은 그 빛을 발하게 되었다. 1800년대, 즉 19세기 조선은 격동의 세월을 보내며, 지배자들이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정치행태를 보여줌으로써 참다못한 농민들이 홍경래의 난과 같은 지역 민란을 시작으로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열망으로 전국 단위 농민전쟁으로 확대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이자 동학농민전쟁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일본의 치밀한 조선 침략 야욕과 청나라 위주의 동아시아 패권과 질서가 재편되어 일본이 새로운 동아시아 강자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구 열강들의 아시아 진출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과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왜 우리 역사는 근대화의 시작을 맞이하게 되는 19세기를 이렇게 참담하게 맞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우리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 시작은 정조의 사후인 18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조는 할아버지인 영조와 함께 조선의 마지막 부흥기를 이끌었던 개혁군주이었다. 정조가 꿈꾸었던 개혁은 미완으로 끝나 18세기를 마감하고 19세기 시작을 나이어린 순조의 즉위와 함께 영조의 계비이자 정조의 계모인 정순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다시 정권을 잡은 노론 벽파에 의해 소위 정조의 파로 일컫는 시파들을 탄압하게 되었다. 그 탄압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가 안동김씨인 김조순이다. 김조순의 딸이 순조비로 간택되면서 외척이 되었고, 정순왕대비 사후에 권력을 잡아 정조에 반대했던 노론 벽파들을 제거하고 거의 60년 동안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펼쳐지게 된다. 결국 이것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여 조선왕조의 몰락을 가져오게 되었다. 원래 세도(世道)정치는 어진 성군이 어진 재상으로 하여금 세상의 도로 정치를 하고자 했던 데에서 유래되었지만 권력만을 탐하다 보니 세도(勢道)정치가 되어 온갖 악행과 비리가 만연하게 되어 기존의 질서 안에서는 제대로 살 수가 없었던 농민과 같은 민중들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한 민중들의 사상적 기반이 되어 준 것이 동학이었다. 동학이라는 종교 및 사상적 기반과 조직에 힘입어 동학농민군들의 혁명이 가능했던 것이다.

반면 지배계층인 정치권에서는 다른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다. 서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그들이 외세를 끌어 들인 것 보다는 외세가 그들을 이용하여 조선침략의 야욕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갑신정변이다. 김옥균, 홍영식 등 급진개화파가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일으킨 정치적 사건이다.

결국 청나라의 개입과 일본의 배신으로 3일 만에 끝났지만 그 결과로 청나라와 일본의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이 극심해졌다. 그리고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에 군대를 파병할 경우에 상대국에 알려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텐진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것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조선 조정에서 청군 파병 요청하였을 때 일본군도 함께 조선에 주둔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고 외세의 내정간섭이 심하여 이미 완전한 독립 국가라고 할 수 없었던 시기가 10년이 지난 후에 결국 1894년 갑오년 고부에서 동학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농민들의 봉기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반봉건ㆍ반외세를 부르짖으며 ‘무장기포’라고 해서 전국의 동학교도들과 농민들이 합세한 대규모 농민항쟁을 선포하게 되었고 급기야 백산봉기에서는 전국에서 1만 명의 농민들이 모여 서울로 진격해 지배 권력은 물론 일본이라는 외세까지 없애겠다는 결전 의지를 밝힘으로써 조선 정부를 상대로 한 선전포고를 하게 된 것으로 고부 민란이라는 군 단위의 항쟁을 시작으로 무장에서의 기병을 거쳐 백산에 이르러 1만 여명을 헤아리는 연합부대의 위용을 갖춘 농민군은 우선 전주를 향해 진격했다. 그것은 농민군과 정부군 간의 내전으로 시작되었으나, 종국에는 청과 일본이 맞부딪치는 청일전쟁으로 이어진 1894년 동아시아 전쟁의 서막이었다.

단기 4347년 1월 23일
국학박사 민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