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에 앞서 기자를 가장 먼저 맞이한 '하늘농원 단호박'. 수박보다 훨씬 예쁘다. 

 세상에 호박이 못 생겼다는 말은 누가 하기 시작한 걸까. 생각해보니 호박이 억울하겠다 싶다. 이렇게 예쁜 호박인데 왜 우리 조상들은 '호박에 줄 그으면 수박 되랴'는 말까지 했을까.

 하늘농원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밭에서 따온 단호박을 바구니에 담아서 냉장창고에 넣는 것이었다. 내리쬐는 햇볕을 받은 호박들이 어찌나 탐스럽고 예쁘던지 한참을 쳐다봤다. 그런데 내리쬐는 볕을 호박과 한참을 같이 받아가며 싣고 나르고를 반복했더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호박은 그냥 호박이더라. 그때 문득 궁금해졌다.

 "안 지루하세요? 한두 개도 아니고 매일매일 농사지어서 나오는 호박 키워다가 따다가 냉장고 넣었다가 또 포장했다가…. 매일 비슷비슷하잖아요."

 "에헤이, 뭐가 비슷해요.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데. (웃음)  아기들 크는 것, 자식 낳아서 기르는 것하고 같아요.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으니까. 정성이에요, 정성."

▲ 정성과 부지런함으로 곱게 키워낸 단호박을 들고 포즈를 잡은 하늘농원 한경수 대표.

 한경수 대표가 충북 영동 산골짜기로 '귀농'을 한 것은 지난 2000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과 2001년을 꽉 채운 뒤 2002년 본격적으로 '하늘농원'이라는 이름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진짜 '귀농(歸農)'이었다. 배 농사로 시작해서 콩 단호박 고추 농사도 짓고 있다. 가을에는 곶감도 만든단다.

 "13년째 농사를 짓고 있어요. 농부로 치면 이제 유치원 다니고 초등학교 졸업 앞둔 거죠. 이제 중학교, 고등학교 계속 공부해야지. (웃음)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해요. 작목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하고 신기술이 나오면 그것도 알아야 해요. 재미있어요."

 한 대표의 하늘농원은 충북 영동군으로부터 '친환경 농산물 재배 포장' 중에서도 '저농약' 농원으로 인증을 받았다. 과일 농사를 지으면 농약을 전혀 안 뿌릴 수는 없다고 한다. 대신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양만 쓴다. 한 대표가 계속해서 공부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하늘농원은 영동군으로부터 '친환경 농산물 재배 포장' 중에서 '저농약' 농원으로 인증을 받았다. 저 뒤로 펼쳐진 4,500평 배나무 밭이 까마득하다.

 "요즘 먹거리 문제가 참 많잖아요. 공산품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재배한 과일이나 채소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제대로 키우고 제대로 수확하는 일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올해는 화학비료를 하나도 안 썼어요. 유기농 거름 쓰고 인근 축사에서 퇴비를 받아와서 비료로 사용하죠. 그런데 작물 중에서는 이런 유기농이 안 되는 작물도 많아요. 계속 작물 공부하고 친환경 농법 공부하는 것도 다 이것 때문이에요. 먹는 거라도 마음 편하게, '안심(安心)'하고 먹어야죠."

 화학비료나 농약 없이 농사가 잘될까 싶었지만 자연에 대한 한 대표의 확고한 신념을 듣고 나니 가능한 일이구나 싶다.

 "땅은 그 자체로 완벽한 공장이에요. 그 땅의 통기성이나 수분 정도, 흙의 종류에 딱 맞는 작물을 심으면 완벽합니다. 땅 자체가 그 작물에 가장 좋은 공장이 되어주는 거죠. 그래서 필요한 게 정성이에요. 처음 농사를 시작하는 분들은 홍수나 가뭄, 태풍처럼 자연재해 걱정이 많아요. 그런데 자연재해는 한 걸음만 앞서서 준비하면 다 막을 수 있어요. 여기서도 정성이 필요한 거죠. 부지런하게."

 부지런함을 바탕에 깔고 정성으로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가 태어나는 하늘농원은 무려 12,000평에 이른다. 배나무만 800그루 4,500평이다. 골짜기 아래부터 산꼭대기까지 눈으로 보기만 해도 한참 걸리는 이 넓은 땅에서 한 대표의 한 땀 한 땀 어린 정성에 건강한 과일 채소들이 자라난다.

 한 대표의 정성은 하늘농원 밖에서도 빛을 발한다. 영동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 대청호 보존운동본부에서 환경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우리 민족 선도수련법을 정립한 국학기공을 지도하는 선생님으로도 활약 중이다.

▲ 한 대표가 직접 지은 황토집. 왼쪽이 최근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귀농을 제대로 하려면 집도 지어야 하는데 황토집 짓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한다. 어려워 보이는데 말이다.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한 대표가 가장 열정을 갖고 준비하는 일은 바로 '귀농'한 사람들이 모여 몸도 마음도 정신도 모두 건강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이를 '신선고을'이라고 말했다.

 "요즘 귀농인구가 많이 늘었다고 해요. 실제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그만큼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아요. 이유는 농촌 생활에서 미래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죠. 꿈이 없으니까 적응도 못 하고 쉽게 제풀에 지쳐서 복작복작한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연처럼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집도 직접 짓고 농사도 직접 지어서 스스로 자급자족하면서 몸도 마음도 정신도 건강하게 신선처럼 사는 '신선고을'이죠.
 귀농은 단순히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게 아니에요. 귀농은 자기가 시작한 자연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13년 전에 먼저 시작했으니 앞으로 귀농하게 될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제 꿈이에요."

▲ 하늘농원에서 함께 생활하는 한경수 대표의 가족들. 왼쪽 검은 개 이름이 '단이', 오른쪽 작은 강아지 이름이 뭐냐고 묻자 "그거요!"라고 한다. 알고 보니 오른쪽 흰 개의 이름은 '아지'였다. '강아지'

 사람은 머리보다 몸이 바빠야 더 건강하다고 한다. 도시야 워낙 병원이나 건강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도시 사람들이 더 건강해 보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아주 잠깐 일 도왔다고 인터뷰 마치고 가는 길에 잘 생긴 단호박하고 감자하고 쌈 채소 한 웅큼을 챙겨주신다. 하늘농원을 나서는 길에 귀엣말로 한 마디 드리고 나섰다.

 "나중에 한 자리 부탁드립니다."
 "(웃음) 오기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