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모산유기영농조합 학산가공장의 1월부터 12월까지 1년 365일 작업 일정을 들어보니 달타령이 나올 법하다. 12월에는 콩으로 메주 만들고 발효시키는 것으로 시작해서 2월에는 된장, 간장을 담근다. 11월부터 3월 사이에는 고추장을 담근다. 죽염을 건조시킬 때 그 불 때면서 겨울을 난다고 한다. 9월부터 10월에는 포도즙, 10월부터 11월에는 배즙이 나온다. 매월 1~2번 함초와 천마진액 만들기도 빠질 수 없다.

 그런데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달타령의 등장인물은 단 두 사람이다. 키 크고 사람 좋아 보이는 황정선 팀장과 야무지고 똑소리 나는 고민정 씨. [천화원 사람들] 그 일곱 번째 주인공 황정선 팀장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천모산유기영농조합 학산가공장을 책임지는 황정선 팀장 

 이야기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서울대 공대 출신의 수재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바로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충북 영동 심천면 마곡리 산골짜기 너머에 있는 천화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무릉도원 같았어요. 무엇인가 몽롱하고 환상적인 곳. 무엇보다 천화원을 터전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정말 멋있어 보였어요. '이렇게 사는 게 정말 사는 것이구나.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똥을 푸는 일을 하더라도 여기서 살고 싶다' 생각했었죠."

 국책연구소 연구원으로 앞날이 창창하던 그가 돌연 연구실에서 산골짜기로 인생의 방향을 급선회했다.

 "(연구원으로서) 5년 뒤, 10년 뒤, 30년 뒤 인생이 예상 가능한 삶이었죠. 내 인생을 상상해보니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스스로에게 물었는데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이 안 나오더군요.
 결정적인 이유는 사람이었어요. 천화원 사람들은 '웃을 때 정말 웃는다'는 느낌을 줬거든요. 세상 속 보통 사람들은 웃으면서 정말 웃지 않아요. 웃으면서도 온갖 생각을 하고 온갖 걱정을 하죠. 웃을 때 정말 웃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연구원으로 산업체에 근무하면 병역특례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진짜 웃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연구원을 떠나 입대했다. 그리고 '천화원 사람'이 되었다.

▲ 천모산유기영농조합 학산가공장 입구. 폐교를 고친 덕분에 학교가는 기분이 든다.

 '천화원 사람'으로 가장 먼저 하게 된 일은 다행히 '똥 푸는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저, 농사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천화원만 해도 '무릉도원'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평생 사무실에 앉아 있던 제가 장화 신고 논밭으로 나왔더니 환상이 현실이 되더군요. 실험은 바로바로 결과가 나오는데 농사는 서툰데다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보고 가야 하니 힘들었어요."

 황 팀장은 '보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S대 공대의 재능을 십분 살리기로 했다. 바로 생산된 농산물로 친환경 가공식품을 만드는 일이다. 일지명상센터 천화원이 자리 잡은 천모산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천모산유기영농조합'을 통해 2004년 가공식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죽염과 함초환을 중심으로 작게 시작한 일이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상품 수가 많아지자 천화원에서 '분가'했다. 폐교된 봉산초등학교 자리에 '천모산유기영농조합법인'이라고 버젓이 간판을 달고 학산가공장 문을 열었다. 조합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 40%를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 폐교를 활용하다 보니 조금은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왼쪽 사진) '천마진액'은 '사랑반', 'HSP함초환'은 '자유반'에서 만드는 식이다. (오른쪽 사진) 복도 안 교실 풍경도 정겹다. 넓은 탁자와 나무로 된 의자가 정겹다. 칠판 끝에 걸려 있는 작업용 위생모자 두 개가 눈에 띈다.

 언뜻 듣기에 '친환경'과 '가공'이 만났다니 그 조합이 어색할 법도 하지만 12년째 한 길을 걸어오는 그만의 철학을 듣노라면 '친환경 가공식품'이라는 말에 절로 수긍이 된다.

 "처음에는 상품을 개발하고 또 만들어내면 '완성'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게 착각이더군요.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지 최종본은 아니라는 것을 요즘 느껴요. 그때의 날씨, 상황, 환경이 바뀌듯이 상품도 변화하고 또 성장해야 하는 거죠. 우리 몸도 지난달과 지금이 다른 것처럼요. 항상 같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지금이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입니다.
 시중에 나오는 많은 가공식품들이 제품을 새롭게 선보이면서 포장이나 겉모양만 바꿔서 신제품이라고 선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포장이 아니라 그 상품 자체가 변화하고 또 성장해야 해요."

▲ 학산가공장을 책임지는 최고의 파트너, 황정선 팀장과 고민정 씨다. 배려 넘치는 황 대표가 자신과 키차이가 큰 민정 씨와 보기 좋게 사진에 나오게 해달라며 다리를 벌리고 서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일명 '매너다리'다.

 그는 '변화'와 '성장'을 강조했다. 수백 년 전 사람의 몸에 맞춘 <동의보감>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100% 맞을 수 없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정보가 빨라지면서 몸의 변화도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화원에서 재배된 친환경 농산물을 가공하는 그 역시 더 바빠지고 있단다.

 "'이 세상에 맛있는 음식의 수는 어머니의 수와 같다'는 말이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이라는 거죠. 예전에는 그저 바빴어요. 친환경 농산물로 무엇인가 특이한 것,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었죠. 그런데 지금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화려하고 복잡한,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거죠.
 '힐링식품'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특별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먹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힐링이 되고 또 홍익이 되는 그런 식품이 '힐링식품'이죠. 이왕이면 쉽고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면 더 좋겠죠."

 그래서 그는 먹을 것으로 장난치는 사람들이 제일 싫다고 했다. 먹거리를 만드는 이들이 '사람' 이전에 '돈'을 우선시하는 일부 가공업자들의 행태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 가공장 한 가운데에는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 간장들이 장독 안에서 맛 들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천모산유기영농조합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농산물을 어떻게 하면 자연이 가진 그 기운 그대로 기본을 지키면서 손 쉽게, 그리고 건강하게 먹을 제품을 만들 지 늘 고민하고 또 연구하고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그리고 마음인 것 같아요. 사람을 향하는 그 마음을 담아, 홍익인간의 그 정신을 담아 고추장도 된장도, 죽염도 천마진액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