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20대였던 그는 그때까지 평생을 시골에서 살았다. 자연이 곧 그의 일상이었고 그가 가진 기억 전부였다. 그러던 중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도시의 삶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지만 뭔가 힘에 부쳤다. 복잡한 거리, 빼곡한 사람들, 자연스러움이 없는 도시의 생활에 그는 지쳐갔다.

 "선택을 해야 했어요. 마음공부를 더 하고 싶었죠.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농사를 짓고 싶었어요. 제 고향이 전북 순창이거든요. (웃음)
 자연스러움에 대한 갈망이 컸어요. 우리 고유의 문화, '한문화'에 대한 관심도 컸고요. 그래서 결심했죠. 살아도 시골에서 살겠다구요."

▲ 폭포가든  모정순 대표.                                

 천모산유기영농조합에서 식당 '폭포가든'을 맡아 운영하는 모정순 대표는 시골 이야기만 해도 그렇게나 좋아했다. 땅 일구고 씨 뿌리고 물주고 수확하는 농사가 정말 좋단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란 기자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연이 좋기는 하나 도시가 주는 편안함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이 왜 좋으세요?"

 "농사, 무지하게 힘들죠. 새벽같이 일어나서 해질 때까지 정말 부지런해야 해요. 어렸을 때 생각해보면 아침에 눈 떴는데 부모님 얼굴을 본 적이 없을 정도라니까요. 그런데 흙 만지면서 살아보면 알아요. 그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맑은 공기 마시고 벌레 소리 들어가며 흙을 만지고 살면 어느 순간 나도 자연 그 자체가 돼요. 내가 사라지는 거죠.
 음…사람이 뇌에도 파장이 있고 심장에도 파장이 있잖아요? 자연에도 파장이 있어요. 자연 속에서 살면 나의 파장이 자연의 파장과 하나가 되죠.
"

▲ 폭포가든의 '우렁쌈밥정식'. 정말 맛있어서 우렁쌈장을  싹싹 긁어먹었다가 "뚝빼기까지 다 먹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우렁쌈장도 끝내주지만, 진짜 최고는 바로 쌈채소였다. 여러 쌈채소를 직접 재배하여 상위에 내놓아 그때그때 가장 신선한 쌈채소를 맛볼 수 있다. 고기 한 점 없어도 된다. 폭포가든에서는 쌈채소가 밥도둑이다.                              

 말 그대로 '자연스러워진다'는 표현이 딱이다. 그는 도시 생활을 모두 접고 지난 1995년 흙냄새 나는 충북 영동에 자리를 잡았다. 오매불망 그리던 시골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그는 "야호!" 쾌재를 외쳤다. 그런데 일이 생각과 조금 다르게 풀려나갔다. 농사지을 생각에 귀농했건만 충북 영동에서 그가 하게 된 건 바로 가공한 식품을 판매하는 일이라니.

 "마음을 고쳐먹었죠. '내가 좋아하는 (농사)일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으니까요. 농사에 대해 태생적인 자신감이 있으니 이 일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감이 생겼죠. 농촌에서 하는 홍익문화운동의 모델을 만들겠다 생각했어요."

 식품 판매에서 시작한 시골생활이 몸에 익은 그는  어느새 영동에서 이름난 맛집 '폭포가든'의 주인이 되었다. 인터뷰를 위해 들렀던 지난 7월 10일은 월요일 점심이건만 어디서 알고 찾아오는 건지 삼삼오오 모인 손님들이 한가득이었다. 옥계폭포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폭포가든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차를 세울 곳이 없었다.

 "지난해 3월에 인수했어요. 원래도 손님이 많던 곳이었어요. 알고서 인수했지만 식당일이라는 것이 만만치가 않네요.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매년 목표를 정했어요. 인수하고 나서부터 1년 차 목표는 '전임 사장처럼만 하자', 그리고 올해 2년 차 목표는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자'예요."

 식당에서 하는 '지속 가능한 경영'이라…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 폭포가든을 책임지는 세 사람. 사진 오른쪽부터 모정순 대표와 주방을 책임지는 손주희 주방장, 홀 담당인 김진영 씨.                                           

 "말이 거창하긴 한데요, 쉽게 말하면 오너도 직원도 손님도 모두 만족하는 식당을 꾸리자는 거죠. '삼원만족'이요. 저희 식당은 '삶 터' 같은 곳이에요. 사장이 있고 종업원이 있지만 다들 유대관계가 남다르죠. 특히 주방을 총괄하는 손주희 주방장님께서 확실히 '왕언니' 역할을 해주세요. 그 외에 홀이나 주방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 모두 끈끈해요. (웃음)"

 충북 영동에 있는 천모산유기영농조합은 크게 몇 개의 단체가 모여 가족을 이루고 있다. 일지명상센터 천화원, HSP명상단식원 천화원분원, 하늘농원, 신시농원, 마고신명도가, 학산가공장, 그리고 그가가 맡은 폭포가든이 그 구성원이다. 모정순 대표는 영농조합이 생산한 식품이나 가공품을 '신선고을'이라는 이름으로 일반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농촌에서 하는 '농촌홍익문화운동'을 하는 일에 앞장섰다고 자부한다.

 "농촌은 기본이 자급자족이에요. 자기 생활을 책임지면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문화운동을 덤으로 하면서 뜻을 전해야 하는 거죠. 이 사실을 깨닫고 또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까지 지난 10년이 걸렸어요. 이제는 다음 단계로 가야죠. 기반을 차곡차곡 다졌으니 앞으로 10년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농촌에서 하는 홍익문화운동을 전파해야죠."

▲ 폭포가든으로 들어가는 길. 폭포가든을 넘어 조금만 걸어가면 하늘 어머니의 자궁 자리인 '옥계폭포'가 나온다.

 귀농하는 인구가 부쩍 늘었다. 그런데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모정순 대표를 인터뷰하며 느낀 것이 있다. 도시의 안락함을 뒤로하고 시골의 자연스러움을 선택하고 싶다면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한다. 바로 시골생활에서의 미래를 얼마나 구체적이고 신념 있게 그릴 수 있느냐다. 명확한 꿈이 있다면, 그리고 그 꿈에 대해 자신이 있다면 그곳이 도시든 시골이든 상관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천화원 사람들] 인터뷰 연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