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화원 사람들' 인터뷰 시리즈의 여섯 번째 주인공은 충북 영동군 심천면 마곡리에서 '신시농원'을 운영하는 김수현 대표다. 지난 7월 10일 여름이 한창이던 천모산 초입 옥계폭포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함께 자리한 일지명상센터 천화원(이하 천화원) 쪽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한껏 멋을 부리고 오신 걸 보니 단단히 마음먹고 오신 모양'이라는데 정작 기자 앞에서는 너무 쑥스러워하신다. 덕분에 이리저리 돌고 돌아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농사 이야기 자연 이야기 사는 이야기까지 청산유수가 따로 없다.
 

▲ 신시농원 김수현 대표


 신시농원 김수현 대표와 농사의 인연은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꿀 따는 양봉에서 시작해 벼, 고추, 약초, 감, 나무까지 어느새 복합영농으로 거듭났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배우는 마음으로 시작한 농사였지만 2006년부터는 독립적으로 모든 경영을 도맡아 하고 있다. 신시농원이 그야말로 '복합영농조합'이 된 것이다.

 벼농사 2,300평, 감나무밭이 1,500평, 고추밭이 2,000평이라고 한다. 게다가 지난해 수해를 입고 공사를 못해 올해는 농사를 쉬는 휴경지만도 2,000평이라고 하다. 혼자서 저 많은 작물을 어떻게 다 하나 했더니 규모도 장난이 아니다. 텃밭도 힘든데 웬만한 마음가짐으로는 해내기 힘들지 않을까.

 "농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의식주', 그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문제인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에요. 엄청 중요한 일이죠. 먹는 것을 해결해야 그다음으로도 갈 수 있거든요."

▲ 충북 영동 심천면 마곡리 '신시농원'에서 자라는 풋고추. '홍익' 농사꾼 김수현 대표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가 말하는 '그다음'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사람을 돕는 것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을 실천하는 것도 세 가지 단계가 있어요. 첫째, 배고픈 사람에게 먹는 것을 주는 거죠. 우선은 내가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남을 도울 마음도 나는 거예요. 내 밥벌이도 못하면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일단 농사를 지으면 1단계는 자동으로 통과하는 거죠.
 두 번째는 바로 육체가 건강하게 도와주는 일입니다. 건강한 생활 습관, 식습관, 운동법, 건강관리법 등을 전하는 거죠. 농사를 양심적으로 지으면 또 2단계 역시 통과할 수 있어요.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삶의 철학으로 '홍익'을 전하는 일입니다. 인간으로서 정말 제대로 잘 사는 '법'을 전하는 거죠.
 그냥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다고 양심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라, 저는 농사를 통해서 '홍익'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한참을 주저한 뒤에 시작한 인터뷰이거늘, 시작하자마자 인터뷰가 끝이 난 듯했다.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싶다는 정도의 이야기에서 그칠 줄 알았던 이야기였는데 의외였다. 이런 철학을 항상 품고 살기 때문인지 김 대표는 스스로 "수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도시 사람들은 대부분 먹는 문제를 시장이나 마트에서 해결하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먹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염되지 않은,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내가 직접 재배하는데, 좀 더 많이 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문득 이런 '농부'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농사를 지어서 먹을거리를 마련하지는 못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람이 키워내는 먹거리가 내 식탁에 더 많이 올라오면 좋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 한 껏 멋을 내고 나왔다는 김수현 신시농원 대표. 그는 옅은 상아색 셔츠와 하늘색 체크무늬 바지를 입어도 고추밭에 들어가자 마자 바로 작업모드를 보였다.


 이런 이유에서 김 대표는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양심적으로 농사를 지어 먹거리를 생산해내고 싶지만 한 해 한 해 지구 환경이 달라지는 것을 농사를 지으면서도 느낀다고 한다.

 "인간의 욕심이 커지면서 점점 더 자연을 무시하고 짓밟다 보니 인간과 자연 사이에 전에 없던 벽이 많아졌어요. 공기부터 산 바다,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게 없어요. 옛날 사람들은 요즘 우리가 물을 사 먹는다고 하면 웃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정말 당연하게 물을 사 먹죠. 그런데 나중에는 공기를 사서 마셔야 할지도 몰라요.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당연하던 일들이 점점 특별한 일들이 되어버릴 겁니다.
 그래서 온갖 친환경 농법을 배우고 또 적용해보고 또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고 그러는 중이에요. 논에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우렁이, 오리를 풀어보기도 하고 쌀겨를 뿌리기도 하죠. 단번에 성공할 수는 없겠죠. 친환경 농법도 안정적으로 단계별로 정착시켜 나가는 중이에요."

 그가 말하는 '홍익'으로 사는 '법'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건강한 육체'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워낙 세상이 오염되다 보니 그의 계획에 '지구 환경 복원'이 추가되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거늘 요즘은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이 세상 자체가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뜻을 갖고 살아가는 것만큼 의미 있는 삶도 없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디서 재미를 찾을까 궁금해졌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농사' 생각만 한다는 그는 도대체 어디서 재미를 찾을까.

 "몰라서 그렇지 이게 얼마나 재미있다고요. 농사는 씨 뿌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수확하는 그 순간까지 다 재미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자라나는 그 모양새 하며 작물이 커가고 벌들이 커가고 변해가는 그 하나하나가 기쁨입니다. 농사를 지으면 자연과 맞춰서 살아야 하니 몸도 건강하고 정신도 건강해지죠."

▲ 난생 처음 해보는 '인터뷰'에 어색해 하던 김 대표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멋쩍어하는 그의 웃음이 멋스럽다. (작은 사진) 이 손으로 만 평에 가까운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20평 집 하나 구하기 힘든 도시 생활과 비교하자니 그의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싶다.


 햇수로 13년째 오롯이 '자연인'으로 살아온 그는 요즘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기쁨'을 창조하려 애쓰고 있다고 했다. 바로 '사람'이다.

 "이제까지는 자연하고 부대끼며 살았어요. 벌하고 논하고 밭하고 씨름하며 살아왔죠. 그런데 이제는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야죠.
 사람들에게 '홍익으로 사는 방법'을 전하고 또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먹을 것 주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좀 더 크게 보고 살고 싶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사는 기쁨을 함께 창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