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데가 다리를 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 그 답을 추적하려는 사람은 놀랍게도 신경과 의사인 김종성 교수다. 김 교수는 『뇌과학 여행자: 신경과 의사, 예술의 도시에서 뇌를 보다』라는 저서를 통해 뇌과학과 예술 기행의 경계에서 이루어진 독특한 여정을 담았다.

 프로방스 전원에서 도는 풍차를 바라보며, 오래 전 읽은 알퐁스 도데의 단편 소설 「코르네유 영감의 비밀」을 떠올린 그는,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에서 하이네와 전혜린에 이르기까지 예술가의 뇌를 들여다본다. 『뇌과학 여행자』에서 저자는 뛰어난 신경과 의사로서의 전문적인 설명은 물론이고 그와 연관된 다양한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까지를 조명하는 해박한 지식을 풀어 놓았다. 잦은 출장과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을 지키는 부지런한 평소 성격과 더불어 문학과 미술, 음악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저자의 열정이 독자를 새로운 여행길로 인도하고 있다.

"옛 예술가들이 살던 집과 거리를 더듬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느냐만, 신경과 의사인 나는 그들의 질병을 함께 곰곰이 생각하며 이런 뇌질환들이 그들의 삶과 예술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일반인과는 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예술가들이 뇌질환에 시달린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뇌졸중, 파킨슨병, 치매, 간질 같은 질병들은 재클린 뒤 프레나 모리스 라벨의 경우처럼 더 높은 경지의 예술을 추구하려는 예술가의 소망을 야속하게 꺾기도 했다. 반면 베토벤이나 슈만처럼 오히려 이런 질병이 그들로 하여금 작곡에 몰두하도록 한 경우도 있다. 혹은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자신의 병을 소설의 소재로 적절히 사용한 예술가도 있다." -저자 서문에서



 학회 참석차 파리에 도착한 신경과 의사가 향하는 곳은 루브르 박물관이다. 그곳에서 「모나리자」 그림 앞에 선 저자는 「미라보 다리」로 유명한 시인 아폴리네르를 떠올린다. 이탈리아 출신이었던 아폴리네르는 1911년 일어난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기도 했다.

 저자가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그 이후의 사건이다. 아폴리네르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머리에 총을 맞는데 철모 덕에 목숨은 건졌지만 뇌손상 이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예전의 온화한 성품이 사라졌을 뿐더러 애인과도 소원해지고 만다. 그 이유로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있는 오른쪽 측두엽 손상설이 유력하다고 알려져 왔는데 저자는 다른 의견을 펼쳐 보인다. 저자가 맡은 뇌졸중 환자들 가운데 오른쪽 측두엽이 손상된 환자들을 보아 왔건만 아폴리네르와 같은 증세는 드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오히려 보다 고차원적인 ‘사회적 사랑’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손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김종성 교수의 진료실에 찾아오는 외래 환자들 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 병은 무엇일까? 바로 편두통이다. 편두통은 수 시간에서 수 일간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머리의 통증으로 남성(3%)보다 여성(10%)에게서 월등히 높은 빈도로 나타난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편두통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으로는 월경과 스트레스가 있으며 그밖에 적포도주와 초콜릿, 튀김 등이 있다. 역시 루브르 박물관에서 저자의 눈길을 잡아 끈 초상화의 주인공 퐁파두르 부인 역시 월경성 편두통을 앓았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앓았으리라 여겨지는 측두엽 간질 역시 MRI가 개발되면서 부검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 원인을 짚어낼 수 있게 되었다. 작품 속에서 간질 발작과 환희 상태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두드러지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실제로 간질 발작과 우울증이 있었다. 또한, 끊임없이 글을 쓰는 하이퍼그라피아 증세라는 의견도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에서 김종성 교수는 이에 그치지 않고 도스토예프스키가 쉴 새 없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도박빚)까지를 떠올리며 그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더 큰 감동을 나눈다.

 저자인 김종성 교수는 2002년 대한의사협회에서 발표하는 ‘노벨의학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함춘의학상, 우수 의과학자상, 분쉬 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의학 논문을 써 왔으며(320여 편) 또한 일반인들을 위해서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