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109번지 일원에서 고려청자 생산을 총괄했던 대구소(大口所)의 행정적 사무를 맡는 관리기관인 치소(治所)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최고급 청자조각들이 다량 확인되었다.사당리 8호와 40호 요지(窯址)가 있는 강진 고려창자요지(사적 제68호)는 국내 도자사학계는 물론 중국과 일본 학계에서도 주목받는 고려청자 최전성기의 핵심장소로 평가되는 곳이다.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로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과 강진군이 함께 한 조사는 가마 1기와 폐기장 3개소, 건물지 1기, 고려시대 도로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초기 청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보물 제218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일명 은진미륵) 을 국보로 지정 예고하였다.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도 잘 알려진 이 석불입상은 높이가 18.12m에 달해 우리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고려 말 승려 무의(無畏)가 쓴 '용화회소(龍華會䟽)'라는 글과 조선 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 고려 문인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 등에 이 석불입상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고려 광종(光宗, 재위 949~9
대가야박물관에서 눈에 띄는 전시물은 가야를 대표하는 악기, 가야금이었다. 가야금의 기원은 에 나온다. “가야금은 중국의 쟁(箏)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가야의 가실왕(嘉實王 또는 嘉悉王)이 12개월의 율려(律呂)를 본받아 12현금(絃琴)을 만들고 이에 성열현(省熱懸) 사람인 우륵을 시켜 12곡을 짓게 하였다.”가야금 명인 고 황병기 선생은 “중국 나 위서 동이전에 보면 ‘동이족은 하늘에 제를 지내고 주야로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 ‘한반도 남쪽에 고유한 현악기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며 “중국의 영향보다는
한반도에서 500여 년의 역사를 이룬 ‘가야’. 삼국시대라는 시대구분으로 인해 5백 년이 넘는 가야는 있는 듯 없는 듯 미지의 영역에 머물렀다. 철갑기마무사와 철갑을 두른 말과 같은 군사유물로 대표되는 가야는 오랜 역사 속에서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연맹체로 존재했다가 끝내 신라에 복속되었다. 그들은 누구이고, 왜 통일국가로 나가지 못했을까?지난 12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에 위치한 대가야, 금관가야, 다라가야, 아라가야 고분군과 경남 산청 깊은 골짜기에 7층 적석 피라미드 왕릉을 남긴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릉을 답사했
『삼국유사』·『필원잡기』·『삼국사절요』등에서는 신라 아달라왕대인 157년(아달라 4) 당시 신라문화권이던 포항 일대 바닷가에 살고 있던 연오랑·세오녀 부부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을 전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해조를 따던 연오랑이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는 바람에 일본으로 건너가자 왜인들이 그를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 연오랑의 부인 세오녀는 남편을 찾
선조들이 주목한 단군유적전국 체전의 성화가 타오르다! 고려와 조선의 제관들은 강화도 참성단에서 제사를 지낼 적에 향과 축문을 국가로부터 받고 출발했다. 당시 참성단 제사는 국가행사였기 때문이다. 1년에 2번(봄과 가을) 나라제사를 봉행한 선조들을 따라가 보자. 제관들은 출발하기 전 미리 강화부에 도착날짜를 알린다. 이후 강화부에 도착하고 마리산 아래 재궁(
도깨비 신부 : “아저씨, 나 누군지 알죠?”도깨비 : “내 처음이자 마지막 도깨비 신부”도깨비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모 드라마의 엔딩 장면이다. 흔히 사랑받는 드라마 한 편으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경우를 간혹 보기도 한다. 드라마 한 편이 기존의 도깨비 이미지를 사랑스럽고 찬란한 존재로 바꾸어 놓았다. 물론 드라마와 주연 배우의 인기
청평산(淸平山, 779m)만큼 아름다운 곳도 없으리라. 강원도에서 금강산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여행기록이 남겼기 때문이다. 김상헌의 《청평록》, 박장원의 《유청평산기》, 서종화의 《청평산기》 등이 있다.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7대 명소 중의 하나로 지목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일명 경운산(慶雲山)이라고 한다. 부의 동쪽 44
대일항쟁기에 우리나라는 일본과 총칼로만 전쟁하지 않았다. 펜으로도 싸워야 했다. 일제가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고 정신을 말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제가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들려고 했던 식민정책과도 관련이 깊다. 춘천은 어떠했을까? 이곳에 자리한 우두산이 일본신화에 나오는 스사노오노 미코토(素戔嗚尊, 스사노오로 약칭)가 강림한 성지(聖地
조선은 지리지(地理誌)의 나라다. 조선만큼 지리서를 많이 펴낸 국가도 없다.일본이 독도에 관한 야욕을 드러낼 때마다 울려 퍼지는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 이 노래 가사에는 '세종실록지리지 오십 페이지 셋째 줄'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노래 덕분에 '세종실록지리지'를 우리 모두 잘 알게 되었다. 이 '세종실록지리지'를 포함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