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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세오녀의 시대상: 단군조선·부여계의 도래와 야요이문명의 개화[국학 학술 특집] 일본으로 건너간 연오랑·세오녀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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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22  03:23:50
정경희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교수  |  k-spirit@naver.com

 『삼국유사』·『필원잡기』·『삼국사절요』등에서는 신라 아달라왕대인 157년(아달라 4) 당시 신라문화권이던 포항 일대 바닷가에 살고 있던 연오랑·세오녀 부부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을 전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해조를 따던 연오랑이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는 바람에 일본으로 건너가자 왜인들이 그를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 연오랑의 부인 세오녀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남편의 신발이 벗어진 바위 위로 올라섰다.  바위가 움직여 일본으로 가는 바람에 부부는 다시 만났고 세오녀는 귀비(貴妃)가 되었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어버리는 변고가 일어났다.  일관(日官)이 ‘해와 달의 정기(精氣)가 일본으로 가버려서 생긴 변고’라고 하자 신라왕은 일본에 사자(使者)를 보내 귀국을 청하였다. 그러자 연오랑은 세오녀가 짠 고운 비단(細綃)을 주면서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하면(祭天) 일월의 빛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고 하였다.  그 말대로 했더니 과연 해와 달이 빛을 찾았다. 신라왕은 세오녀가 보내온 비단을 국보로 삼았는데, 비단을 넣어둔 창고를 귀비고(貴妃庫), 비단을 올려 하늘에 제사한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 했다.(축역)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영일현에서 동쪽으로 10리 떨어진 도기야 인근 연못에서 제천했다’ 하였는데 신라시대는 조정에서, 고려·조선시대에는 지방관이 제천을 주재하였다고 한다.  현재에는 포항지역 시민들이 모여 일월지(日月池) 근방의 일월사당(천제당)에서 제천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 일대에는 지금까지도 영일(迎日·延日)·일광리(日光里)ㆍ일월리(日月里)ㆍ금광리(金光里)ㆍ광명리(光明里)ㆍ옥명리(玉明里)ㆍ중명리(中明里)ㆍ등명리(燈明里) 등 일월이나 밝음에 대한 많은 지명들이 남아 있고『삼국유사』중에 등장하는 도기야(도지들)·도구라는 지명도 남아 있다. 근래에는 인근에 연오랑·세오녀공원까지 만들어져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문화로서 그 인지도가 날로 높아져가고 있다.

 

이처럼 신라초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포항 일대에서 분명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연오랑·세오녀 전승에는 수많은 역사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이번 연재에서는 ‘고대 한반도문화의 일본열도 전파’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보았다.  연오랑·세오녀 전승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의 접근이 가능하지만, ‘고대 한반도에서의 일본열도로의 문명 전파’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출 경우, 일단 제천문화(일월로 상징되는 밝음의 문화)나 직조문화가 그 대상으로 주목된다. 또한 연오랑·세오녀 전승의 표면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이시기 도래문화의 핵심 요소인 금속기(청동기 및 철기) 문화나 벼농사 문화 등도 대상으로 떠오른다. 

 

고대 한반도에서의 일본열도로의 문명 전파로 본 연오랑·세오녀 

 

2세기 연오랑·세오녀 전승으로 상징되는 도래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그 시대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의 시대상은 현재 한국보다는 일본에 더 잘 남아있다.  당시 한국사회는 만주지역에 자리한 거대 국가 단군조선의 와해로 인한 파괴와 혼돈의 소용돌이에 놓여 있었던 반면 일본사회는 새롭게 도래해온 단군조선·부여계 유민들에 의해 단기간에 양·질 면에서 놀라운 수준의 문명개화가 일어났고 이러한 문명개화의 흔적은 어떠한 파괴도 없이 보존되어 동시대 만주·한반도에서 일어났던 변화상들을 거울처럼 비추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일본 고대문명의 개화기로 이야기되는  B.C. 3세기~A.D. 3세기 야요이문화기에 일어난 일이다. 이 시기 만주·한반도 일대 및 일본열도 일대에서는 문명의 파괴와 건설이라는 상반된 문화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B.C. 3세기~B.C. 1세기 무렵 요서․요동 일대는 단군조선의 와해와 그 계승 국가인 부여(북부여)의 건국, 중국 연나라 사람 위만(衛滿)에 의한 위만조선 건국, 한에 의한 위만조선 멸망과 한군현 설치, 부여와 한의 쟁투, 부여의 분열과 고구려·백제의 성립 등 미증유의 혼란 국면이 펼쳐졌다. 이러한 혼란을 피하여 많은 유민들이 한반도 방면으로 밀려들게 되었으니 『삼국사기』중에서 말하는 ‘조선유민(朝鮮遺民)’이다. 한반도로 밀려든 ‘조선유민’들에 의해 한반도 내에 삼한(마한, 변한, 진한)이 세워졌다. 

 

단군조선시대에는 요서·요동 일대가 문화의 중심지였기에 당시 한반도 일원은 변방으로서 문화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었다. 반면 단군조선의 멸망을 즈음하여 수많은 단군조선·부여계 엘리트 세력들이 한반도 방면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한반도, 특히 한반도 남부의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문화수준이 급격하게 향상되는 변화가 있었다.  고고학적으로  B.C. 3세기~A.D. 3세기 무렵의 시기에 한반도 전역, 특히 한반도 남부에서 단군조선·부여계의 흔적, 구체적으로는 금속제 무기와 기마구를 대표로 하는 북방계 기마문화가 발굴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만주·한반도 일대 변동 일본열도까지 변화

 

만주·한반도 일대에서 시작된 큰 흐름은 일본열도까지 변화시켰다.  한반도에서 밀려난 세력들은 일본열도로 건너가 일본문화를 개화시켰던 것이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도래인들은 지속적으로 있어 왔지만, 이즈음의 도래문화는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과 강도로 일본열도로 밀려들었다는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일인학자들내에서도 주목되었으니, 대표적인 학자로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1906~2002)의 기마민족국가설이 있다.  그는 일본 고고학에서 3세기 야요이시대가 끝나는 4세기 무렵 거대한 고분(전방후원분)과 화려한 기마무구를 특징으로 하는 문화가 등장하는 점에 착안, 북방 기마민족의 일파가 한반도로 남하했다가 다시 북큐슈로 상륙했고 이 세력은 다시 기나이(畿內) 지방으로 진출, 4세기말 내지 5세기초 통일국가인 야마토조정을 건국했다고 보았다.  이 주장은 세부적인 논지에는 많은 오류를 갖고 있지만 문화의 흐름에 관한 통찰은 적확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근래 일본학계 내에서 야요이문화의 시기가 크게 앞당겨지고 있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문제이지만, 야요이시대를 통틀어 도래인들은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도래인들에 의한 정복왕조도 지속적으로 교체되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2세기 연오랑·세오녀의 도일, 또 도일후 일본에서 왕과 왕비가 되었던 사실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와 전적으로 합치된다.  당시 포항 일대는 진한 연맹체의 일원인 근기국(勤耆國)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근기국왕이 아닌 사로국왕이 연오랑·세오녀의 빈자리를 두려워해 소환할 정도였다면 그들의 정치적 위상은 근기국 차원을 넘어서는 차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는 제사(제천)와 정치(군사)가 일치하는 제정일치사회였는데 논의가 정치권력의 문제가 아닌 제천의 문제 중심으로 전개되는 상황은 연오랑·세오녀가 단순 권력자의 신분을 넘어선 최고의 신분이었음을 알게 한다.

 

연오랑·세오녀 흔적, 기나이(畿內) 나라분지에 지금도 남아

 
연오랑·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면 일본에 그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을까?  기나이(畿內) 나라분지에 그 흔적이 아직까지도 분명히 남아있으니, 이 일대에는 시로기(白木), 시라이시(白石) 마을이 있고『삼국유사』중의 ‘도기야(都祈野)’에서 파생된 것이 분명한 ‘都祈村(쓰게무라)’, ‘都介野(쓰게노)’라는 호칭이 남아 있다. 가도와키 테이지(門脇禎二) 등은 이 호칭이『삼국유사』‘도기야(都祈野)’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면서 고대 한·일 신교(神敎) 교류사 규명을 촉구한 바 있다.
또한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연오랑·세오녀와 일본 기록중에 등장하는 도래인들을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도래인의 비조격 인물인 신라신 스사노오(素盞嗚)를 연오랑으로 보는 설, 스이닌(垂仁) 천황대 도래한 신라왕자 천일창(天日槍)과 그 부인 아카루히메(赤玉女)를  연오랑·세오녀로 보는 설, 또 일본의 국조신 아마테라스(天照大神) 또는 3세기 야마타이국 여왕 히미코(卑彌呼)를 세오녀로 보는 설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었다.
실상 파편과 같은 기록들을 조합해 연오랑·세오녀를 특정 도래인으로 맞추어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연오랑·세오녀가 특정 도래인임을 확정하기 보다는 당시 연오랑·세오녀로 상징되는 수많은 연오랑·세오녀가 있었음을 이해하고 그들 도래세력의 출자나 도래 과정, 도래세력간의 관계, 일본 고대국가 형성에 기여한 역할, 후대인들의 인식 등을 살피는 일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간에 연오랑·세오녀의 대상 인물로 주목되어 왔던 3인의 인물을 모둠으로 살펴보았다. 신라신 스사노오(素戔鳴), 신라왕자 천일창, 또 천일창과 같은 계열로 묶이는 쓰누가아라시토(都怒我阿羅斯等)가 그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신라계로 분류되며 활동 지역 면에서도 신라와 가까운 동해안 산인(山陰) 및 호쿠리쿠(北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 일본 고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렇게 신라계로 묶이는 인물군에 대한 탐색은 비단 연오랑·세오녀 전승 연구의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곧 단군조선·부여에서 시작된 것이 분명한 고대 한·일 관계사에서 단군조선·부여를 대신하여 언제나 그 첫머리를 차지해온 신라계의 실체를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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